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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핵심은 상해망명 탈출사건과 단동회동 사건은 별도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같은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사실은 알려진 바와 같이 의친왕과 최진동 장군의 실제 회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 보다 구체적인 사항은 상해망명 탈출 사건의 전모(全貌)를 밝히는 과정에서 추가로 언급할 것이다.
이제 의친왕의 대표적인 항일운동으로 알려져 있는 상해망명 탈출사건의 전모를 “朝鮮獨立運動史”를 근거로 고찰한다.
3.1운동이 발생한지 6개월후가 되는 9월에 상해임정 요인(要人)이 경성으로 잠입하여 사동궁(寺洞宮)에 있는 의친왕의 처남인 김춘기를 만나 상해의 형세를 전하고 의친왕을 임정에서 옹립하고 대한제국의 귀족과 신망이 두터운 신하들을 가담시키면 대한제국의 독립은 틀림없으리라고 설득하니 김춘기는 이를 믿고 의친왕에게 그러한 상황을 보고하였다.
의친왕은 자금만 조달되면 뜻대로 응하겠다는 의향을 밝혔으며, 김가진과 전협 등은 다시 운동자금의 조달과 동지규합은 아무래도 대동단 본부를 상해로 옮기는 것이 안전하겠다고 상해임정 국무총리 안창호에게 편지를 하니 안창호는 크게 기뻐하여 상해임정 요인을 특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 요인(要人)을 만난 김가진은 곧 의친왕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당시 김가진과 의친왕은 실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의친왕의 딸과 김가진의 아들이 혼인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가진은 다시 김춘기를 통하여 의친왕에게 상해망명을 권유하니 의친왕은 10만원만 준비되면 결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가진은 의친왕의 이러한 의지를 전협에게 전달하고 망명문제는 그가 책임지기로 하고 김가진은 그해 10월 상순에 그 아들 김의한과 이종욱과 함께 상해로 망명하였다.
한편 전협은 10만원이란 거금은 아무래도 조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애초에 최초부터 어업권을 해결하면 의친왕은 반드시 마음을 움직일 것이요, 또 정운복은 이종욱의 신뢰를 바탕으로 정운복을 움직여 놓으면 일이 쉽게 성사될 것으로 생각하고 이재호로 하여금 정운복을 지나요리점(支那料理店)으로 불러내어 그가 의친왕에게 어업권을 얻기로 하면 3만원을 금주(金主)로부터 받아 내기로 교섭하도록 하였다.
이재호는 원래 예천(醴泉) 양반으로서 대한제국 시대에는 기사(技師)로 있었고 또 궁내부시종(宮內府侍從)을 역임한 바 있는데 3.1운동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되었으며, 이에 반하여 정운복은 전부터 이재호와 친분이 두터워서 이재호의 말이면 무엇이나 믿는 터이라 이번 일도 이재호의 말을 믿고 여러차례 의친왕에게 서면으로 이 일을 교섭하였다.
그 결과 교섭은 순탄하게 이루어져 의친왕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이르렀다.
원래 통영에 위치한 의친왕의 어장은 부산에 있는 일본인이 어업권을 얻어 어업을 경영하였는데 그 수익의 규모가 대단하였다.
그리하여 경남 연안의 어부들은 일본인을 배척하고 그 어업권을 얻고자 서울로 올라와 의친왕 사무소에 와서 청원도 했었고 어떤 사람은 제3자를 통하여 의친왕에게 직접 청원하였으나 계약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관계로 결국 어업권을 얻지 못하고 돌아간 일도 많았다.
그러하므로 전협은 의친왕에게 교섭하기를 현 권리자인 일본인과의 계약이 끝나는 대로 그 어업권을 이동하기로 하고 우선 그 어업권을 가지려고 하는 금주(金主)로 부터 3만원을 선불(先拂)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금주(金主)는 한석동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고 전협은 그 대리인(代理人) 이민하 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어장을 저당으로 하고 빚을 얻기는 어렵지 아니하나 이왕직(李王職) 사무관의 연서(連書)를 요하는 등 번잡한 일이 있으므로 어장문제는 별도로 처리하고 3만원을 차용하고 계약기간 만료 후는 반드시 정식계약서를 교환하기로 하자는 정운복의 통지를 받은 전협은 원래부터 목적이 어장권 문제에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의친왕 망명이 목적이었으므로 그러한 번잡한 수고를 할 필요없이 차금형식(差金形式)에 응하기로 하고 정운복에게 그 수고비로 1만 5천원을 사례키로 하였다.
그러나 1만 5천원은 금주(金主) 한 참판이 단 한번이라도 의친왕을 만나서 그에게서 확실한 대답을 듣고 그 자리에서 지불하겠다고 하였다.
정운복은 이 말을 확신하고 11월 8일 마침내 의친왕에게 이러한 사실을 편지로 보내어 9일밤 모처에서 만나기를 청하니 의친왕은 이것을 곧 허락하였다.
한편 정운복으로부터 의친왕이 허락한 사실의 내용을 편지로 받은 전협은 곧 이재호,정남용,한기동,양원,동창진,나여헌,김중옥 등의 단원과 협의하고 의친왕을 만나면 함께 상해로 가자고 결의하였다. pgu77@hanmail.net
*필자/박관우. 저술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