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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에서 다시 꾸는 땅끝마을 소년의 꿈

민병덕 법무법인 민본 대표변호사, 지역밀착형 법률 서비스 실현

허성수 기자 | 기사입력 2015/04/13 [14:32]

 

흔히 ‘땅끝마을’로 잘 알려진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나 자라던 중 초교 4학년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10대 중반에는 고향의 홀어머니 곁을 떠나 광주로 나와 유학하고 서울대에 들어가 정치학을 공부한 후 변호사가 된 사람, 바로 민병덕(44) 변호사 이야기다.

 

서초동에서 관양동으로 ‘민본’ 이사
최근 그는 그 동안 활동했던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을 떠나 안양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옮겼다. 그가 대표변호사를 맡아 이끌고 있는 ‘법무법인 민본’이 지난 2월 9일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관악대로 298 도명빌딩 401호)으로 이사를 왔다. 민 변호사는 그 날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며 좋은 징조라는 해석도 했다.


“지역주민과 밀착해서 안양지역의 문제를 듣고 해결하기 위해 가까이 오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법률고객이 많은 서초동을 떠나 굳이 안양으로 옮긴 까닭은 내년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고백도 솔직하게 했다.
자그마한 키의 아담해 보이는 체격에 짧게 손질한 머리카락을 빗어 넘겨 단정한 양복차림과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까지 그에게서는 남도의 땅끝마을 소년의 흔적을 조금도 찾아보기 힘든 전형적인 도시형 엘리트의 모습이었다.


한국 최고의 수재들이 몰려드는 서울대학교라는 이름만으로도 졸업 후 그의 길은 형통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 90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정치학도로서 가만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꿈꿨던 정치가가 되기 위해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현실 정치는 도무지 모순덩어리였고, 희망이 없었다. 그는 3당 합당을 반대하며 적극 시위에 참여했고, 철거민촌에 들어가 야학을 하며 대책 없는 강제철거 반대와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앞장서 싸우기도 했다.


“1990년 5월 집시법 위반혐의로 구속돼 3개월간 감옥생활을 하고 나오기도 했죠.”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바로 장래희망을 정치가로 정했다고 했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청상이 된 어머니는 행상을 하며 자녀들을 길렀다. 새벽에 토종닭을 잡아 5일장을 다니며 팔아서 어렵게 번 돈으로 공부를 시킨 것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저에게 학교 선생님이 통일의 꿈을 심어줬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역할로서 정치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목표했던 서울대 정치학과를 한 번 낙방하고 재수해서 그 다음해에 들어갔다. 막상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의 꿈이 변호사로 바뀌었다. 그래도 정치는 정치를 통해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지만 철거민촌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을 보며 변호사가 되어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집시법 위반으로 잠깐 감옥생활을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전과자로 낙인 찍혀 행정고시를 통해 관직에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출구는 오직 사법시험밖에 없었다.

 

남들 월드컵 볼 때 공부 집중 합격
그는 한 학기 휴학도 하면서 5년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뒤늦게 군대 문제를 해결했다. 전과기록 때문에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대신 방위병으로 근무했다. 병역 의무를 마친 후 그는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국사봉 꼭대기에 올라가 혼자 자취하며 공부를 시작했죠. 하지만 장난이 아니더군요.”
서울대 출신인 그에게도 사법시험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청춘을 홀로 독방에서 매일 책과 싸움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학시절 철거민촌에서 야학 교사로 만나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던 후배 김민영과 서둘러 결혼부터 하자고 요청했다.


1998년 결혼식을 올리고 다소 안정된 가운데 그는 계속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아내는 이미 졸업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계를 책임지고 남편을 뒷바라지를 해줬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는 1999년 사법고시에 1차 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2차 시험의 관문을 넘기지는 못했다. 그 다음해 2000년, 2001년에도 연거푸 떨어졌다.

 

반전은 2002년에 일어났다. 한·일월드컵 축구로 온 나라가 거의 광란에 빠져 있던 그 해에 한국축구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그의 꿈도 마침내 이뤄졌다. 2002년도는 사법고시 남자 합격률이 굉장히 낮았던 해로 알려져 있는데 고시생들조차 축구를 보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민병덕 변호사도 남자로서 보고 싶었던 축구였지만 더 미룰 수 없었기에 엄청난 유혹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뤄냈다. 제44회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34기)을 거쳐 2005년부터 변호사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법무법인 한결, 법무법인 길상, 법무법인 로텍 등의 로펌에서 활동하다가 지난해 8월 자신이 주도해서 법무법인 민본(民本)을 출범하고 강경석·박지웅·황희·이지형·김미숙 등 모두 6명의 변호사가 함께 꾸려 나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법률지원단장 맡아
안양은 2005년 3월 가족이 이사를 하면서 지금까지 삶의 터전이 되었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생활이 점차 안정을 되찾게 되자 다시 어릴 때 가졌던 정치가의 꿈도 되살아났다. 오히려 아내가 현재의 생활에 안주하는 그에게 대학생 시절 사회정의와 소외된 민중들을 위해 싸우며 가졌던 정치가의 꿈을 이제 실현할 때라고 일깨워주곤 한다고 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그는 안양동안갑에 첫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당 내 5명의 예비후보군에 속했지만 마지막 2명의 경선 후보로 살아남을 정도로 선전했다. 그러나 5선에 도전하는 4선의 현역 국회의원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는 내년 총선에서 젊음과 패기로 개혁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간 박원순 후보 법률지원단장으로 활약했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박 시장의 재선을 위해 같은 일을 맡았다. 그 외에도 마포구청, 한국도로공사, 서울시도시철도공사, 서울시시설관리공단의 고문변호사를 역임했고, 지금은 구리시청 고문변호사로 활약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가진 그는 공인중개사 수험서 ‘쉽따 민법 및 민사특별법’과 민생관련 사례집 ‘법, 공익을 말한다’ 등의 저서를 펴냈고, 공저로 ‘변호사가 풀어주는 공정거래법’이 있다. 현재 동국대에서 공인중개사협회 실무교육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원본 기사 보기:경기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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