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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민주당 정권 무너지면서 한국흔적 지우는 작업 본격화
‘그 거짓’ 증명하려 일본 속 한국문화 기록물 찍어 남기는 중
지난 3월19일 지하철 공덕역 인근. 갑작스럽게 잡힌 인터뷰 장소로 가기까지 30여 분의 여유밖에 없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어느새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드니 낯익은 얼굴이 점차 또렷해진다.
유재순(57) 대표다. 일본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현직 르포작가이자 기자, 인터넷 매체 <JP뉴스> <KR뉴스> 대표로 명성을 떨치는 그와의 인터뷰는 자칫 무산될 수도 있었다. 일본으로 출국을 하루 앞둔 상황. 저녁식사를 겸한 인터뷰는 그렇게 마련됐다.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사이 인터넷에 ‘유재순’이란 이름을 검색하자 위키백과에 그의 이력이 주르륵 뜬다.
▲한국 주간지 <토요신문> 일본 특파원 ▲TV 아사히 <아침까지 생방송> 토론회 2회 ▲규슈 NHK 주최 <세계여성 8개국 여성 저널리스트 토론회> 참석 ▲일본 고단샤 발행 <주간현대> 북한담당 기자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까마득한 후배 기자는 더욱 긴장이 됐다. 인터뷰이인 유 대표는 거침이 없었고, 인터뷰어인 기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소주가 두 순배 돌자 그제야 말문이 트였다.
일본 속 한국문화 기록 남길 것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들었다.
▲일본 속의 한국 문화를 기록하고자 시작했다. 일본 내 한국 문화의 현장을 다 찍었다.
작년 3월에 시작해서 오늘(3월19일) DVD가 나왔다. 30여 분 분량. 수정하다 보니까 돈은 떨어지고 빌릴 곳도 없더라. 비용이 모자라 남이 하다 빈 시간을 기다려서 편집했다.
따져보면 일본의 고대사가 곧 한국의 그것이다. 한국을 제외한다? 그러면 일본의 성립이 안 된다.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면서 한국을 지우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사실 1980년대부터 그런 조짐은 있었다. 백제에 딴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일본에 30년째 살면서 보니 그런 일이 너무 많았다. 지금이라도 기록을 남겨놔야 우리가 주장을 할 수 있다. 일본이 미리 손을 다 써놓았는데, 우리 것이라고 말만 하면 뭐 하나.
이번에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지상파 방영은 안 한다. 기록으로 남길 작정이다. 방송을 염두에 두면 진솔한 내용이 나올 수 없다. 정석대로 찍었다.
현재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에서 한국을 지우려 한다. 아베 총리가 관방장관 시절 그와 정면으로 싸운 적이 있었다. 일본 <주간현대>시절의 일화다. 내 기사를 바탕으로 일본 민주당에서 아베 총리에게 문제제기를 했다. 북한과 관련된 사안이었다.
‘팩트’로 대항했지만 잡아떼더라.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주간지 기자의 기사로 이러느냐’는 것이었다. 연달아 보도했다. 협박도 받고. 같은 취재를 한 <아사히신문>은 압력에 굴복했고, <주간현대>는 끝까지 버텼다.
내가 독한 여자로 사는 이유
-고생을 사서 하는 스타일인가.
▲취재하다가 쓰러졌는데 병원비가 없었다. 세금을 못 내니까 통장을 차압당했다. 엊그저께 기자친구가 와서 그 얘기를 하더라. 참 경이롭다고. 왜 경이롭냐고 하니까, 버티는 게 경이롭단다. 왜 이렇게 독한지, 자기는 태어나서 이렇게 독한 여자 처음 봤다고 하더라.
-저널리스트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홍보나 협박기사를 안 쓴다. 단 한 번도 없다. 사실 의뢰는 많이 들어왔다. 언론을 하다 보면 자의반 타의반 해야 할 때도 있는 것, 안다.
(옆에 있던 유 대표의 친구가 말을 잘랐다. “사람이 왜 그러니? 의식주부터 해결하고 나서 뭘 해도 해야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 대표가 대답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해.” 유 대표는 언론계의 비리를 너무 많이 봤다고 말했다. 일본보다 한국이 더 많다는 그의 말.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차마 웃을 순 없었다.)
-사명감 때문인가.
▲성격이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참기자’가 없다.
-참기자란 어떤 기자인가.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기사에 사심과 욕망, 야망이 들어가면 안 된다.
-편하게 살고픈 마음도 들 텐데.
▲사실 지난주에 흔들렸다. 통장 차압당하고 병원비는 편집감독이 카드로 긁어줬다. 나도 타협을 해볼까…. 방법은 수십 가지도 넘는다. 그날 밤 일기에 썼다. ‘한 번 더럽혀진 영혼은 두 번 다시 원상복구가 안 된다’고.
돈은 꿨다가도 갚으면 그만이다. 흉이 아니다. 조금 부끄러울 뿐이다. 굴욕적이긴 해도 영혼을 파는 짓은 아니다.
그런데 홍보기사 아니면 협박기사를 쓰면? 영혼이 더럽혀진다. 그건 더 이상 복구가 안 된다. 물론 그 다음 날 또 갈등을 했다(웃음).
아베 총리 관방장관이던 시절 북한 관련 문제로 대판 싸운 적도
일본에선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없다…그저 살기 위한 선택일 뿐
-대안언론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뉴스타파는 본다. 잘하는 것도 있고, 과한 것도 있더라.
-대안언론의 아쉬운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약자)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 일을 하는 느낌이랄까? 할리우드에서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
인터뷰를 요청하더라. 피했다. ‘내가 뭘 하고 있소’라고 하는 게 싫다. 정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다면 밥 한 번 대접 해줘봤나. 나? 취재하러 갔다가 밥을 챙겨드렸다.
일본,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
-일본이 북한에 스킨십을 하려고 하는데.
▲김정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일본은 모든 준비를 이미 다 끝내놓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를 말이다.
-재일교포 현안은 무엇인가. 혐한이나 헤이트스피치인가.
▲과거 재일교포 1·2세대들은 극심한 차별을 받고 살았다. 돌아가신 재일교포 1세 할머니 얘기다. 해방 직후 일본에 상수도가 변변치 않을 때였단다. 물을 길러 가면 왜 줄을 서지 않나. 그러면 ‘너, 조센징이니까 빠져.’ 기다리다가 어두컴컴해지면 그제야 물을 길었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차별을 받았다. 지금의 차별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재일교포의 귀화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인가.
▲정대세의 아버지는 한국 국적, 엄마는 조선 국적이다. 일본에 그런 일이 많다. 결혼식에 가보면 부부가 국적이 다르다. 일본에서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없다. 살기 위한 선택일 뿐이다.
-영미권의 재외동포는 그 나라에 귀화하고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에 개의치 않지만, 과거 일본과의 관계를 차치해서일까.
▲한국정부는 일본 귀화를 ‘재외동포 이탈’의 개념으로 본다. 나는 귀화하거나 영주권을 딸 생각이 없다. 물론 한일 관계라는 있긴 하다. 그게 어때서? 식민지 시절 귀화를 한 것도 아니지 않나.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은 축하할 일이고, 일본에서 취득하면 문제인가. 모순이다.
-한국사회에서 재일교포는 ‘반쪽발이’라고 더 차별을 받기도 한다.
▲재일교포 관련 단체장에 있는 사람의 귀화는 안 된다고 본다. 대한민국을 대표하겠다는 사람 아닌가. 정체성의 문제다. 다만 일반인으로서 귀화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
-본인은 기자라서 귀화하지 않은 것인가.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징용을 끌려갔었다. 강제로 끌려가서 올 때 미역 두 줄기만 갖고 돌아왔다더라. 내가 그 나라 국민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단지 그뿐이다. 아버지에 대한 예의.
특종은 ‘한 사람’만 쓰는 것
-르포란 무엇인가. 한국기자들도 해외취재를 많이 한다.
▲3박4일 있을까? 이틀 아니면 당일치기다. 그러면서 거창하게는 쓴다. <JP뉴스>는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에서 일주일 동안 취재를 했지만 결국 쫓겨났다. 책임지지 못하겠다더라.
(후쿠시마의 경우) 진짜 속살을 쓴 사람이 없다. 속살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지인의 어머니가 후쿠시마에 산다. 하루에 한 번 안내방송이 나온다고 한다. ‘창문을 열라’는 방송이 나오면 15분 동안 창문을 열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에는 닫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라. 감옥도 아니고 그 느낌과 기분은 살아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어떤 특파원도 그런 걸 쓴 적이 없다.
1980년대에 잡지사에서 관련 기사를 쓸 때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보안사령관인 시절이었다. 기무사에서 기사를 가져갔다.
죽어라 취재를 하는데 기사를 안 실어주더라. 우연히 <동아일보> 기자가 난지도에 취재 간다길래 따라갔다. 쇼크였다.
쓰레기더미에서 사는 사람이 있구나. 이후 몇 번 취재를 가서 기사를 썼다. 그 기사 때문에 조사를 받았다. 쓴 이유가 뭐냐고.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기사가 나온 적이 없었다.
나도 농사꾼 딸이지만 신기했다. 어떻게 여기서 먹고살까. 쌀만 빼놓고 쓰레기에서 다 해결하더라. 다 주워 먹더라.
중학교 때부터 검정 옷을 즐겨 입었는데, 난지도 사람들이 (쓰레기를 뒤져서)검정 속옷과 옷이 나오면 다 나한테 가져오는 것이다.
기자가 정부 빨아주는 기사만 써야 하냐고 편집장과 대판 싸웠다. 짐 싸들고 나왔다. 집에는 친구에게 간다고 하고 쓰레기 매립지에 있는 교회에서 3개월 살다가 나와서 글을 썼다. <여성동아>에 기고했다.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적인 여기자보다 더 현장성 있다고.
외부에서는 칭찬을 하는데, 정작 난지도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썼다고 욕을 했다. 부끄러웠다. 다시 들어가서 1년 8개월을 살았다. 그러니까 소설을 쓸 수가 있었다. <난지도 사람들>(1985·장편소설), <쓰레기섬에서 살다>(1986·르포집)가 그렇게 해서 나왔다.
-특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나운서 출신 백지연씨의 자서전을 읽어본 적이 있다. 말레이시아 수상을 6개월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고, 몇 십 페이지에 걸쳐 썼더라.
당연한 것 아닌가? 특종이라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 사람’만 보도하는 것이다. 먼저 보도했다고 특종이 아니다.
내가 일본의 역대 수상을 다 인터뷰했다. 이건 자랑 아니다. 내가 일본에 사는데 당연히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한국의 다른 특파원은 수상과의 인터뷰를 한 명도 못했다. <동아일보>는 70주년 기념으로 시도했는데 섭외도 못했다. 기자가 프리랜서는 인터뷰 해주면서 왜 ‘대’동아일보 기자는 안 해주냐고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총리공관 수석비서실에서 나한테 전화가 왔다. 이렇게 항의가 왔다고. 서울대 출신인 기자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이런 것은 특종이 아니다. 당연히 하는 것이다. 그 수상 인터뷰를 나 혼자 한 것인가? 수십 명이 했다. 한국기자만 못나서 못한 것뿐이다. 백지연씨는 그 말레이시아 수상을 6개월에 걸쳐서 인터뷰했다고 자랑을 한다. 그걸 보면서 ‘이 사람, 겉멋이 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인터뷰 후 유 대표는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JP뉴스>를 다시 정상화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왜 그렇게 고생스럽게 사느냐’며 힐난하던 지인에게 유 대표는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은 밝았지만, 무거웠다. 유 대표는 ‘대작’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머지않아 그의 대작을 읽을 수 있게 될 것만 같아 가슴이 뛰었다.
ykkim1999@nate.com
원본 기사 보기:sagunin_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