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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는 매우 추하지만 연인은 매우 신성하다

라즈니쉬와 송현 시인의 가상대화(17)

송현(시인. 본지 주필) | 기사입력 2009/03/04 [11:52]
▲ 송현(시인. 본지 주필)    © 브레이크뉴스
송현: 선생님 반갑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그 동안 별일 없었냐?
송현: 별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송현 : 제가 좋아하던 강아지가 가출을 했다가 근 열흘만에 돌아왔습니다.
라즈니쉬: 그대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진가?
송현: 아닙니다. 제 친구네 강아집니다. 이름은 공무라고 하는데, 아주 영리한 놈입니다.
라즈니쉬: 그래? 그 개를 아주 좋아한 모양이군.
송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강이집니다. 인터넷에서도 검색에 뜨는 유명한 강아집니다. “수석동 공무”라고 치면 검색이 될 정도입니다.

라즈니쉬: 그래? 오늘은 계속 개 이야기를 할 참인가?
송현: 아닙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오늘도 사랑에 대해서 질문 드릴 것입니다.
라즈니쉬: 내가 말하는 사랑은 그대가 말하는 사랑과 갈지 않다.
송현: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라즈니쉬: 그대가 사용하는 사랑이란 단어에는 항상 미움의 색채가 들어 있다. 그러나 내가 사랑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 사랑이란 단어 속에는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는 관계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때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랑이 솟아난다. 절대적인 사랑, 전체적인 사랑, 순수한 사랑, 결백한사랑, 초월적인 사랑... 그러므로 내가 사용하는 단어를 그대가 전적으로 다른 식으로 이해하는 일이 자꾸 되풀이 될 것이다.

송현: 그러면 제가 선생님 말씀을 잘못 알아듣게 되는 것인데요?
라즈니쉬: 염려하지 말라. 어쩔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러는 쪽이 자연스런 일이될 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송현: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두 가지 모두 즐겨라. 내게 사랑을 느낄 때 그것을 기뻐하고 즐겨라. 그리고 내게 미움을 느낄 때는 그 미움 또한 즐겨라. 그대의 분노를 즐겨라. 다만 진실한 마음 속에 존재하라.

송현: 진실한 마음 속에 존재하라구요?
라즈니쉬: 그래. 그대가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미움 속에 존재할 수 있다면 곧 그대는 사랑과 미움이 둘 다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송현: 왜 그런 것입니까? 선생님.
라즈니쉬: 진실함이 그 둘을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나를 그대가 사랑하고 진정으로 나를 미워할 수 있다면, 그때는 사랑이든 미움이든 한 가지 점에서 유사하다. 바로 진실함이다. 그 진실함이 둘 사이에 다리를 놓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그 다리 너머로 해가 솟아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나를 그저 순수한 공으로 보게 된다. 이 공을 통해서 신이 흐른다. 이 신은 신과 악마라는 구분을 넘어선다. 이 신은 선과 악, 죄와 덕을 초월한 신이다. 그래서 그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아니다. 

송현: 그게 무엇입니까 선생님.
라즈니쉬: 그대가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할 일은 그대 자신의 존재와 친숙해지는 것이다. 그대 안에 거주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대를 찾아온 이 손님을 주시하라. 그대의 몸은 주인이다. 몸 안에 누가 있는가? 누군가 그대 몸 안에 낯선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저 너머의 세계로부터 낯선 사람이 그대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이 바로 그대다! 이 사람을 주시해보라. 이에 대해 명상하고 자각하라.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버려라. 다만 그대 자신을 아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라. 그러면 그 앎을 통해서 성장이 이루어진다. 그 성장은 그대 진면목을 밝혀줄 것이다. 그대는 오직 그대 자신이 되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그대의 모습, 그 진면목이 되어야 한다.

송현: 선생님, 삶에는 많은 일들이 우연한 일들이 아닙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우연하다. 사랑 미움 적의 이 모든 것이 다 우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그만두라. 좀 더 의식적이 되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직시하라. 의식을 통해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내면에 엄청난 힘이 솟아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는 그대의 삶 전체가 전혀 다른 맛을 느낄 것이다.

송현: 선생님, 성자는 죄인에 대립되는 개념이 아닙니까?
라즈니쉬: 물론 그 두 말에는 대립되는 극단이 있다. 그러나 성자는 죄인이 아니다. 그는 악에 반대해서 덕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리고 죄인은 덕을 반대해서 악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들은 전기의 음극과 양극처럼 서로 반대되는 극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죄인이 없으면 성자가 존재할 수 없고 성자가 없으면 죄인이 존재할 수 없다.

송현: 그들은 일종의 동반자이군요. 선생님.

라즈니쉬: 그렇다. 동반자이다. 그들은 공존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성자가 없는 세상은 죄인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진실로 죄인이 사라지기를 원하면 먼저 성자가 없어지게 하라. 그러면 즉각 죄인도 사라질 것이다. 알고 보면 성자의 존재가 죄인을 만든다. 성자를 존경하면 할수록 죄인을 더 비난하게 된다. 그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진다. 그런데 아이로니칼한 일은 그 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는 것이다.

송현: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겠군요 선생님.
라즈니쉬: 당근이다. 그들 논리는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은 선택이 다를 뿐이다. 한 사람은 밤을 선택했고 한 사람은 낮을 선택했다. 그러나 삶은 낮과 밤 둘 다로 구성된다. 삶은 낮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밤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다. 남과 밤 둘 다 하나의 전제 중에 반쪽일 뿐이다. 그러므로 낮과 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송현: 선생님, 그래도 죄인들은 불행하지 않습니까?
라즈니쉬: 물론 불행하다. 그들은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 즉 덕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성자들 또한 불행하다. 그들은 절대로 파괴될 수 없는 부분, 그들의 존재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부분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자를 깊이 들여다 보면 그대는 그의 무의식 어딘가에 죄인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를 깊이 들여대 보면 그대는 죄인의 무의식 어딘가에 성자가 숨어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성자의 의식은 죄인의 무의식이요 죄인의 의식은 성자의 무의식이다.

송현: 그렇다면 현자의 의미는요?
라즈니쉬: 그래서 현자는 이도 저도 아니다.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자이다. 그는 자신의 전체성을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낮과 밤이 똑 같다. 그는 끊임없이 선택하는 에고를 버렸다. 그는 실재하는 사실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그는 철저하게 그 진실에 따라 산다. 그는 삶의 흐름에 끼여 들 일이 없다. 현자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은 그의 전체성에서 비롯된다. 그는 완벽한 원이다. 그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아무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 현자는 전체이다. 그는 죄인과 성자 양자를 포괄한다. 

송현: 지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선생님.
라즈니쉬: 지혜는 지식이 아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유사하다. 지식은 마치 지혜인 것처럼 행세한다. 사실 지식은 지혜와 정반대이다. 지식은 빌려온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그리고 빌혀 온 것은 기본적으로 진실이 될 수 없다. 지혜는 그대 내면에 떠오르는 것이다. 지혜는 그대 내면에 피어나는 꽂이다. 그대의 향기다. 지혜는 그대 자신에 대한 앎이며 이해이다. 이때 그대 내면 환하게 빛난다. 그대는 확고한 현존을 얻는다. 그대는 중심을 갖게 되며 견고한 뿌리와 통합성을 느낀다. 그대는 더 이상 여러 조각으로 분열되어 있지 않다. 그대는 하나의 단일체로 통합된다. 그래서 지혜란 그대 내면에 일어나는 일대 혁명이다. 

송현: 그러나 지식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까?라즈니쉬: 그래, 지식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식이라는 쓰레기를 긁어온다. 지식은 그대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수집해도 그대는 여전히 똑 갈은 사람이다. 물론 그대는 지식을 통해 자신을 훌륭하게 장식한다. 그대의 여러 가지 아름다운 가면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대의 본 얼굴은 변함이 없다. 그대는 계속해서 축적해가고 머릿속에는 더 많은 기억이 쌓이게 된다. 그러나 그대의 존재는 예전과 변함없이 궁핍하다. 

송현: 지식을 지혜처럼 꾸밀 수 있지 않습니까?
라즈니쉬: 물론 지식을 지혜처럼 가장하고 행세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많다. 왜냐면 그들은 똑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것은 오직 경험에 의해서 실존적인 경험에 의해서 성취된다. 깨달음에 의해서 성취된다. 그래서 지혜는 그 내면에서 피는 꽃이다. 이 꽃은 외부에서 빌려올 수 없다. 이 내밀한 지혜는 지식이나 정보와 아무상관이 없다. 경전, 교리. 사상 체계와 전혀 무관하다. 지혜는 그대만의 개인적이고 진실한 경험이다. 

송현: 선생님, 진리는 논리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라즈니쉬: 아니다! 진리는 논리에 의해 발명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사랑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다. 진리로 가는 길은 논리가 아니라 사랑이다. 그리고 지식은 논리지만 지혜는 사랑이다. 지식은 지적이지만 지혜는 직관적이다. 지식은 머리에 속하지만 지혜는 가슴에 속한다. 

송현: 그러므로 지혜는 사랑이겠군요. 선생님.
라즈니쉬: 그렇다. 지혜는 사랑이다. 논리가 아니라 사랑이다. 계산이 아니라 순진무구함이며 영민함이 아니라 지성이다. 지적 능력이 아니라 지성이다. 그래서 그대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자.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경험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는 무궁한 진리와 고양의 향기, 은총이 깃들어 있다. 이것은 삶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신비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창녀를 찾아가는 것은 다르다. 육체적으로 같은지 모르나 영적으로 전혀 다르다. 창녀는 매우추하지만 연인은 신성하다.
송현: 선생님, 오늘 밤 저는 한 여인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잘 해봐라. 오늘은 여기까지!
송현: 선생님, 감사합니다. (www.s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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