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부잣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천재가 되려면 투쟁이 필요하다. 투쟁을 통해서 점점 강해지고 자기를 지킬 힘을 기르게 된다. 부잣집 애들은 부모 돈과 끗발로 엔간한 것은 다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투쟁씩이나 할 일이 없고 투쟁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투쟁할 일이 생겨도 투쟁할 줄도 모르고 스스로 투쟁할 힘이 없거나 약할 가능성이 많다.
"부잣집 애들은 참고 기다릴 줄을 모른다?"
왜냐면 부모 돈과 끗발로 엔간한 것은 다 해결되는데 참을 이유도 없고 기다릴 필요도 없다. 내가 초등학교 때 어머니에게 운동화 사 달라고 6개월 쯤 계속 졸랐다. 어머니는 “집 구석에 땡전 한 잎 없는 줄 뻔히 알면서 운동화는 무신 얼어 죽을 운동화냐! 중학교 가면 사 준다고 했는데 왜 귀찮게 계속 사람을 쪼오나.”며 부지깽이로 나를 개 패듯이 때렸다. 내가 운동화를 신은 것은 그로부터 또 6개월 뒤 중학생이 되어서 난생 처음 운동화를 신을 수 있었다.
"부잣집 애들은 세상 일이 다 자기 맘대로 되는 줄 안다?"
왜냐면 엔간한 것은 다 부모 돈과 끗발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부모 돈과 끗발로 해결 안 되는 것이 별로 없는 요즘 세상에는 더욱 그렇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여행하는 것, 무엇 하나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없다.
"부잣집 애들은 남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어려움 없이 오냐 오냐 자라서 제가 최고인줄 안다. 이런 애가 남의 사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 그런지 부잣집 애들은 가난한 집 애들을 깔보거나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다. 왜냐면 가난한 집 애들은 입고 다니는 행색도 구질구질하고 폼 나게 한턱 쏠 줄도 모르고 째째해 보이고 공부도 자기보다 못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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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에서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매년 농사를 잘 지어 소출이 늘면 몇 년 지나 쬐끄만 땅뙤기 하나 사고 계속 열심히 해서 또 하나 사고 해서 점점 부자가 되었고, 게으른 사람은 맨날 배짱이짓 하며 농사를 잘못 지어 피농이 되고 점점 가난해졌다. 이런 시절에는 부자와 가난이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크게 좌우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최근에 칠레 앞 바다의 홍어가 씨가 말랐다고 한다. "맨맨한 것이 홍어x"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홍어사랑이 칠레 앞바다의 홍어 씨를 말렸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서울서 칠레까지 몇 리가 되는데 한국 사람들의 홍어사랑이 칠레 앞바다의 홍어 씨를 말렸다는 말일까? 칠레 정부가 뒤늦게 홍어 함부로 못 잡는 법을 왜 만들었을까? 요즘은 이렇게 세상이 복잡해졌다!
대부분 부자들은 가난한 자는 평소에 게으르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 가난하다고 말하고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하지 못한다고 단정한다. 그래, 백보 양보해서 가난한 것은 전적으로 가난한 사람 본인 탓이라고 치자! 그런데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애들은 무슨 죄가 있나! 그것은 걔 팔자라고 단정 짓고 말면 그만일까, 걔 운명이라고 단정하고 말면 그만일까?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못쓴다!
그 불쌍한 애들이 유치원 때부터 불공평하게 공부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걔 팔자니 내가 알 바 아니라 생각하고, 제 자식만 고급 과외 시키고 외국 유학이니 어학연수 보내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세금만 다 내고 법만 다 지키면 자기 할 일 다 한 것일까?
그래서 노무현 어린이가 부잣집 애들 책가방을 칼로 찢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부자들 중에는 노무현 어린이의 “성격이 비뚤어졌다”고 간단하게 해석하고 별 것 아닌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는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문제의 본질도 보지 못한 것이다. 노 무현 어린이의 가슴 속에 적개심을 키우게 한 책임이 전적으로 노무현 어린이와 그 가족에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땅에는 드러나지 않아 그러지, 제 2 제 3의 노무현 어린이가 수 없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노무현 어린이가 부잣집 애들 가방을 찢은 행위를 노무현 어린이 비뚤어진 성격 탓으로만 돌리면, 제 2 제 3의 노무현 어린이는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2."과자라도 먹으면 될텐데?"
프랑스 혁명 때 바스티유 감옥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리의 군중들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몰려갔다. 성난 군중들은 궁전 밖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궁전 안에 있던 앙뜨완느 왕비는 앙가슴이 다 보일만큼 앞이 푹 패인 화려하고 멋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아무래도 밖이 소란스러운 것 같아 무슨 일인가 하고 드레스를 질질 끌며 창 쪽으로 걸어갔다. 드레스 속에 입은 망사 속치마 때문에 부풀대로 부풀려진 드레스 자락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아함과 호사스러움의 극에 달했다. 몸에 걸친 것은 모조리 명품이었고, 분위기도 완전 최고급이었다. 앙뜨완느 왕비는 시쳇말로 럭셔리 그 자체였다. 마침내 그녀가 창가에서 걸음을 멈추고 창 밖을 쳐다보았다. 성난 군중들이 주먹 쥔 손을 치켜들면서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녀는 군중들이 외치는 말을 가까스로 알아들었다.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머!? 빵이 없으면 과자라도 먹으면 될텐데..”
그녀는 혁명재판을 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살아 생전 그녀가 누린 호사의 극치 중에 하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을 석고로 떠 만든 황금 술잔인데, 그녀의 매력적인 가슴 선이 고대로 살아있는 그 황금술잔은 지금 루브르 박물관에서 잘 전시되어 있다.
위의 이야기는 가진 자들이 없는 사람 사정을 모른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사람 사정을 안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의식주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사람이 민중들의 땀과 눈물과 한숨과 좌절과 절망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는 마치 맹인들이 빛을 짐작이나 상상은 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직접 몸으로 경험한 가난과 머리로 상상한 가난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가난은 몸서리나는 것이다. 의식주 문제를 걱정 하는 사람들에게 가난은 몸서리나는 것이라서 악몽이고 저주이다. 간디는 남의 것을 훔치는 자만 도둑이 아니라 너무 많이 가진 자도 도둑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왕들이 너무 잘 먹고 세상 보약이란 보약은 다 챙겨 먹고 비단 요이불에서 잤다. 그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산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단명했다. 평균 수명이 50도 못 넘겼지 싶다. 요즘 부잣집 애들은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다.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추고 원 없이 사는데 따로 걱정할 것이 없다. 좋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밥 먹고 학교 가고, 학교 마치면 학원가고 하는 일 밖에 할 게 없다. 그런데 이런 애들이 어찌 정신적으로 올바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온실 화초로 자란 애들이 어른이 되면 과연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가령,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치자. 잘 보살피기 위해서 방안에 들여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방안에 들어온 나무는 밖에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도 끄떡하지 않는다. 걱정해야 할 것도 없다.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 밖에 있는 나무가 비바람과 눈보라와 싸우면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동안 이 나무에게는 아무 긴장도 없고 어떤 도전도 없기 때문에 살만 찌는 수밖에 없다. 주인의 지나친 보호 속에 안전하게 있기 때문에 먹고 살이 안 찔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시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싱싱하지 않고 시들시들해진다. 그것은 그 나무 안에 있는 도전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삶을 실현시키려는 어떤 도전도 없기 때문이다. 건강 세계에서도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세찬 바람은 알고 보면 적이 아니다. 그것은 나무를 성장하게 하고 마침내 완성시켜준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각성제 역할을 한다. 바람이 불면 나무는 더욱 뿌리를 내린다. 태양이 내리쬐면 나무는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인다. 나무는 더욱 푸르고 싱그러워진다.
이렇듯 자연이 선사하는 투쟁을 통해서 나무는 하루하루 성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잣집 애들은 방안에서 왔다갔다하는 애완견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걔들은 멱사리를 풀어서 밖에 내보내면 혼자 온전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비실비실 하다가 명대로 못살고 죽는다. 그래서 애완견은 개는 개지만 개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움직이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나무가 제대로 자라고 곡식이 제대로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고 버터내야 하는 것처럼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서도 적당한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고 그것을 버텨야 한다. 그런데 부잣집 애들은 비바람 맞을 일이 없다. 부잣집의 부모들은 애들이 비바람을 쬐끔만 맞아도 큰일 나는 줄 안다. 심지어 감기만 걸려도 죽는 줄 알고 요란 법석을 떤다. 한심한 부모들은 죽는 줄 안다. 자랄 때 비바람을 좀 맞으면서 자라야 삶을 알고, 세상을 안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 나중에 올바른 인간이 된다. 사는 게 힘들지 않으면 삶의 깊이를 알 수 없고, 삶의 깊이를 모르면 세상을 제대로 모르고, 세상을 모르면 올바른 인간이 절대로 될 수 없다. 이런 인간이 자라서 일류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면 내 자식과 내 마누라 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한심한 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3.어느 교수와 어느 신부
어떤 교수가 바다 여행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늙은 선원에게 자신을 소개한 후 물었다.
“당신은 해양학을 압니까?”
늙은 선원이 모른다고 하자 교수는 놀라면서 말했다.
“쯧쯧, 당신은 인생의 사분의 일을 허비했소!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는데 해양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다니오?.”
다음 날 밤 교수는 늙은 선원에게 물었다.
“당신은 기상학은 압니까?”
늙은 선원은 고개를 가로젖자 교수가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반을 허비했소!”
다음 날 밤 교수는 늙은 선원에게 물었다.
“당신은 천문학에 대해서 압니까?”
“모르오.”
“쯧쯧, 당신은 바다 한가운데 항해하려면 별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천문학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이오? 당신은 당신 인생을 거의 다 허비했소!”
다음 날 밤, 바다에 폭풍이 일었다. 늙은 선원이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 양반, 당신은 헤엄칠 줄 알아요?”
교수가 대답했다.
“수영에 관한 책은 많이 읽었지만 정작 헤엄 칠 줄은 몰라요.”
늙은 선원이 말했다.
“쯧쯧, 참 안됐군요! 지금 배에 물이 새어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당신은 곧 물에 빠져 죽을 것입니다. 당신은 한심하게도 삶의 전부를 허비했구려, 나는 헤엄쳐 뭍으로 나가야겠소. 그럼 안녕히!”
저 한심한 또라이 교수 말마따나 해양학도 좋고, 기상학도 좋고, 천문학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헤엄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저런 또라이 교수와 같은 꽈의 인간들이 많다! 그들은 매 순간 순간 인생이라는 배에 물이 새어 점점 가라앉고 있는 줄 모르고 있다.
언젠가 어떤 유명인사가 텔레비전 대담 프로에 나와서 “행복”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행복을 잘 모르면서 행복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시청자들 중에는 자기보다 더 백전노장의 고수가 보고 있는 줄 모르고 겁도 없이 어설프게 썰을 풀고 있었다. 그가 행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엉터리 약장수가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는 것만 같았다. 요즘 엉터리 약장수 같은 유명인사가 한 둘이 아니고, 그들의 엉터리 만병통치약 선전을 곧이듣는 순진한 동포들 또한 적지 않다.
알고 보니 그는 제법 이름난 신부였다. 그가 아무리 유명인사라 해도 신부라는 직업 특성상 아무래도 행복이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요즘 신부라면 의식주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완전 무지 좋은 직업이지 싶다. 의식주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사의 깊이를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다. 가령, 잘 곳 걱정 없고, 입을 것 걱정 없고, 먹을 것 걱정 없다면 시쳇말로 “만고땡”이 아니고 무엇인가? 의식주가 해결되면 팔자 늘어진 것 아닌가? 이보다 좋은 팔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사람이 춥고 배고프고 힘겨운 것은 대부분 의식주 때문이다. 삶을 고상하게 말하지 말고 좀 거칠고 단순하게 말하면 사는 게 뭐 별건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울고 웃고, 싸우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하라는 대로 말없이 따라 하면 의식주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삶의 바닥과 깊이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해양학도 좋고, 기상학도 좋고 천문학도 좋다. 그런데 그보다 더 절박하고 사람 피눈물 나게 하는 것은 그딴 것이 아니고 당장 먹고 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해양학, 기상학, 천문학이 아니라 의식주 문제로 고통당하고 있다! 그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당장 마실 깨끗한 물도 없다!
4.정규군 훈련과 게릴라 훈련
얼마 전에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물었다.
“기사님 무슨 걱정이 그리도 많습니까?”
“예에? 어떻게 압니까?”
“저는 글 쓰는 사람인데, 책도 제법 읽고 이것저것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얼추 무당입니다.”
운전기사가 빽밀러로 나를 훑어보더니 머뭇머뭇하다 말고 말했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좋은 대학도 못 나오고, 가락동 시장에서 막일 하고 있습니다.”
“그게 왜 어때서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하는데 좋은 대학 못 나와서 가락동 시장에서 막일 하고 있으니 애비로서 어찌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아드님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건강은 해요.”
“그러면 축복입니다. 축복.”
운전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제 말을 정확하게 아드님께 전해 주셔요. 아드님이 일류 대학을 못 나오고 좋은 회사에 취직 못하고 가락동 시장에서 막일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운전기사는 다시 한 번 빽 밀러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규군과 게릴라를 비교해 봅시다. 정규군은 기상나팔 불면 일어나면 되고, 연병장에 집합하라 하면 집합하면 되고, 식사하라 하면 식사하면 되고, 구보하라면 구보하면 되고, 사격 하라면 사격하면 되고, 일석점호 하자면 하면 되고, 취침하라면 취침하면 됩니다. 그러면 잠잘 걱정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총도 주고 실탄도 주고 건빵도 주고 화랑담배도 주고 워카도 주고 내복 팬티까지 다 줍니다. 높은 놈이 시키는 대로 하면 아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게릴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일어나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밥 주는 사람도 없고, 워카 주는 사람도 없고, 재워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침 한 끼 겨우 먹고나면 점심은 어디서 뭘 먹을지 기약이 없고, 저녁에 잠잘 곳도 기약이 없습니다. 그때 가봐야 하고, 그때 상황 봐야 합니다. 먹을 게 없으면 풀뿌리라도 캐 먹거나 아니면 남의 것을 훔치거나 적군에게 빼앗아야 하고, 입을 게 없으면 적군을 죽이고 뺐거나 민가에 내려가서 훔치기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게릴라는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고 24시간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규군 3년 한 놈과 게릴라 3년 한 놈 중에 어느 놈이 더 강하고 어느 놈이 더 끈질기고 어느 놈이 더 용감하겠습니까? 두 놈이 서로 한판 붙으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운전기사는 다시 한 번 빽 밀러로 나를 훑어보았다. 내가 결론을 지었다.
“아드님이 지금 가락동 시장에서 막일을 하는 것은 거의 게릴라 훈련과 다름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일류회사에 취직한 애들을 정규군이라면 가락동 시장에서 막일 하는 애들은 게릴라입니다. 만약 아드님께서 가락동 전투에서 한 3년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기만 하면 나중에 세상을 살아가면서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정규군이 트럭으로 몰려와도 눈 하나 까딱 안하고 다 무찔러 낼 것 입니다. 아드님이 가락동 전투에서 지금 현역으로 전투하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단한 일인지 이제 알겠습니까?”
“선생님, 말뜻을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제가 기운이 나고 용기가 납니다. 오늘 한 시간 일찍 시마이하여 아들에게 빨리 이 말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들 녀석도 아마 큰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차가 사당동에 닿았다. 택시비가 1만 4천원이 나왔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선생님, 오늘 귀한 말씀해준 것으로 봐서 차비를 받지 않아야 하는데,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천원만 빼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5.알렉산더대왕이 죽기 전에 한 부탁
알렉산더 대왕이 죽기 전의 일이다. 대왕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제 나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대들에게 부탁이 있다.”
그러자 신하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알렉산더 대왕이 말했다.
“그대들이 내 시체를 거리로 운반할 때 내 양손이 나오도록 하라!”
이 말은 신하들에게 너무나 뜻밖의 말이었다. 신하들은 눈이 뚱그레졌다. 알렉산더 대왕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내 두 손을 결코 덮지 마라!”
대왕의 이 주문은 너무 뜻밖의 것이었다. 그러자 신하들에게 약간의 혼란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아무도 죽은 뒤에 그런 식으로 운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하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하 중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무슨 말씀입니까? 이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신하 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지금까지 관례가 몸 전체를 덮는 것이 보통이다. 왜 하필 두 어수가 나오기를 바라십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대답했다.
“내가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그런다. 누구나 이것을 보아야 하며, 아무도 다시는 알렉산더처럼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많은 것을 얻었으나, 사실은 아직 아무 것도 얻지 못했으며, 내 왕국은 거대하지만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
알렉산드 대왕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의 삶이라도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명성도 부도 다 헛된 것이다.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매순간 어떻게 살았느냐이다. 매순간을 기쁨으로 채웠는가? 매순간 삶을 찬미했는가? 매순간 작은 일들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꼈는가? 목욕하고, 차 마시고, 청소 하고, 정원 산책하고, 꽃 심고, 사랑하는 이와 마주 보고 앉아서 달을 바라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는가? 순간을 행복의 시간으로 변형시켰는가? 매순간을 기쁨으로 가득 채웠는가? 이런 것들이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부잣집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가정교사 두고 열심히 공부하여 일류대학 들어가고, 마침내 졸업 후에 좋은 직장 취직하거나 사자 붙은 자격증 따서 개업하면 출세한 줄 알고 그러면 성공한 줄 알고, 그러면 행복한 줄 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삶의 진정한 고수가 되면 그런 "눈에 보이는 성공은 가장 확실한 실패"라는 사실을 죽을 때 쯤에는 아는 게 보통이다. 인생사에는 철저한 성공이 철저한 실패인 수가 의외로 많다.
세속적 성공으로 물질적 풍요는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은 별게의 문제이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의 부산물이 아니다. 행복은 어떤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고, 자세이다. 그래서 아무리 부자라도 이를 모르면 행복할 수 없고, 아무리 가난해도 이를 알고 실천하면 금세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서 세속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부잣집에 가면 최고급 침대가 있다. 그런데 그 최고급 침대에 자는 사람들은 얼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노숙자들은 공원 풀밭이나 지하철 바닥이나 아무 데서나 잔다. 대가리만 처박으면 금세 골아떨어진다. 그들의 침대는 빵점인데 수면의 질은 최상이다. 만점이다!
부자들은 매일 무엇을 먹을까 끼니 때만 되면 걱정한다. 쌈빡하게 입맛 돋게 할 맛이 있는 것이 어디 가면 있을까 궁리하는 것이 일과이다. 그들은 항상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에 뭘 먹어도 맛이 없다. 맛은 배고픔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먹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부자들에게는 배고픔이란 있을 수 없다. 배고픈 줄 모르는 사람은 산해진미를 먹어도 맛있지 않고 배고픈 거지나 노숙자들은 뭘 먹어도 꿀맛이다! 부자가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는 만큼 그러지 못하는 사람보다 결코 열배 백배 행복한 것은 아니다!
6."행복한 사람의 팬티를 찾아라!"
인도의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다. 왕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부와 힘 그리고 건강까지 가지고 있었다. 왕비를 사랑하고 또 왕자를 사랑했다. 그러나 행복은 갖지 못했다. 그래서 왕은 왕좌에 앉는 것이 싫었고, 슬펐다. 왕은 불행했다. 그래서 왕은 반드시 행복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전의를 호출했다. 왕이 말했다.
“나는 행복을 원한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라. 그러면 나는 그대에게 굉장한 부를 주겠다. 그러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그대의 머리를 내게 바쳐야 할 것이다.”
전의는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왕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전의가 말했다.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전하. 경전들을 뒤져보도록 내일 아침까지 말미를 주십시오.”
그는 밤새도록 경전들을 뒤졌지만, 어떤 경전에도 해답은 없었다. 고심 끝에 그는 한 가지 묘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왕에게 가서 말했다.
“아주 간단합니다. 전하께서는 행복한 사람을 찾아서 그의 팬티를 입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전하께서는 행복하게 되고,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왕은 기뻤다. 행복한 사람의 팬티를 구해서 입는다는 것은 아주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왕은 신하에게 명령했다. 신하는 부잣집 사람이면 행복하지 싶어서 어느 부잣집에 가서 연유를 말하고 그의 팬티를 요구하자 부잣집 사람이 말했다.
“팬티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저도 하인들을 내보낼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밤마다 저 강가에서 피리를 붑니다. 그는 매일 밤에 강가에 옵니다.”
그날 밤 그들은 그를 찾아 강가로 갔다. 누군가 피리를 불고 있었다. 피리소리는 너무 아름다웠고, 행복에 넘쳐 있었다. 신하가 가까이 가서 말했다.
“당신은 행복하지요?”
“나는 행복하오.”
“당신의 팬티를 주셔야겠어요. 왕이 필요로 하오”
그 사람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그건 불가능하오. 왜냐면 나는 아무 것도 입지 않았소. 왕을 위해서 내 목숨을 달라면 줄 수도 있지만, 팬티는 없소.”
신하가 물었다.
“팬티조차도 없다면서 어떻게 행복하다고 합니까?”
“나는 모두 잃었소. 속옷까지도. 모든 것을 잃었소. 내가 모두 잃어버리자 나는 행복하게 되었소..”
7. "우리집은 너무 가난합니다."
무슨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난”이란 주제로 글을 써 오라고 글짓기 숙제를 냈다. 한 여자 어린이가 다음과 같은 글을 써 왔다고 한다.
--우리 집은 엄청 가난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 사람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우리 가족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 운전사도 가난하고, 우리 집 파출부도 가난하고, 우리 집 정원사도 가난합니다. 정말 우리 집은 가난합니다.....
정원사까지 있는 부잣집에서 자란 애가 가난을 알 수 있을까? 이렇게 자란 애가 가난한 사람들 사정을 알 수 있을까? 춥고 배고픈 서러움을 알 수 있을까? 이런 애가 아는 가난은 몸으로 체득한 가난이 아니고 머리로 상상한 가난이다. 가난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행복을 알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다. 이는 마치 배 고파 보지 않은 사람이 음식 고마운 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치와 꼭 같다.
요즘 인기가 높다는 무슨 텔레비전 연속극에 나오는 주인공 남학생을 보자. 걔는 집은 가난하다. 그런데 윗사람 대하는 태도나 말투가 영 시건방지고 싸가지 없어 보인다. 이런 애는 가난해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애가 열심히 공부해서 천하대학을 합격할지는 모른다.(극의 전개상 나중에 합격할 것같다) 그런 싸가지가 졸업할 때까지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천하대를 나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애는 천하대 떨어져도 문제고, 합격해도 문제고, 일류 회사에 취직해도 문제고, 교수가 되어도 문제고, 법관이 되어도 문제고, 의사가 되어도 문제고, 뭐가 되어도 문제고 뭐가 안 되어도 문제다. 이런 애가 나중에 높은 자리에라도 오르면 그때는 문제가 아주 복잡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가난한 집 애라고 무조건 장땡은 아니다.
삶에서는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위험하고 죽은 것은 다 안전하다. 그래서 위험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절대로 위대한 일과 가치 있는 일과 만날 수가 없다. 많은 것을 잃을 각오하고 위험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를 위해 소중한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진실한 삶은 살수 없다. 오직 위험 속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위험 속에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진정한 삶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위험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면 전체를 사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삶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가령, 안전하기로만 원하면 종합병원 침대에서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종합병원에는 의사도 많고 시설도 좋고 간호사도 많고 약도 많다! 그러나 그딴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시체 같은 삶이다. 가장 안전한 것은 죽은 시체들이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항상 위험하다!
만약, 부자로 안전하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면 붓다가 굳이 아내와 아들과 아버지와 왕관까지 포기하고 왕궁을 뛰쳐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붓다는 이미 2500년 전에 보여주었다. 거기다가 예수는 2000년 전에 에이스 침대 위가 아니라 아예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아름다운 세상은 새우와 고래가 함께 숨 쉬는 바다, 토끼와 사자가 함께 뛰노는 초원, 장미꽃과 패랭이꽃이 함께 피는 초원이다.그러자면 부잣집에서 자린 애들이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올바로 가르치는 것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우리사회가 해야 할 몫이라고 본다.(www.songhyum.com)
**(주) 이 글은 무향자연학교 고수과정에서 강의한 것을 정리한 글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