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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한벌뿐인 옷같은 존재인 인생이여

충일한 우주에너지와 만나면서 건진, 詩가있는 나만의 순례지 창촌

문일석 시인 | 기사입력 2011/01/30 [16:56]
필자는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에 걸쳐 나만의 순례지를 개척(?)했다. 청평댐 주변이다. 댐의 상류와 하류 일대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청평리-대성리 일대이다. 나만의 순례지라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유명한 종교적 성자의 고행 길을 뒤따라서 가는 행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걸어 들어와 스스로 만든 나의 사유-순례지인 창촌에서 필자는 몇 편의 시를 건져 올렸다. 내가 썼던 몇 편의 시는 내 묵상의 결실이다. 자연과의 교유로 얻은 작은 사유의 열매이기도 하다. 필자의 근작시 “세월 자네, 섭섭하네!” “귀 밝은 개” “그대, 삶을 살면서 빨간색 눈을 보았는가?” “자화상” “바람과의 대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리” 등은 창촌에서 쓰여졌다. 이 글에 인용되는 필자의 시는 시의 전문임을 밝힌다. 시 전체를 읽는 게 시상(詩想)의 뿌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걷기 취미꾼이다. 걸으면서 사유한다. 걷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한다. 걸으면서 시상(詩想)도 떠올린다. 틈만나면  청평리-대성리 일대의 걷기에 나선다. 창촌(倉村)마을의  한자 이름을 풀면 곳간 마을이다. 역사적으로 이 마을 이름에 무엇을 담아놓았는지 모르나, 지명에 곳간 창(倉)을 사용, 거대한 창고임을 말해주고  있다. 
 
▲ 창촌     ©브레이크뉴스
▲ 창촌 눈     ©브레이크뉴스
창촌 마을에는 청평댐이 있다. 이 댐이 마을과 맞붙어 있다. 청평댐은 1943년 7월 완공된 댐으로 전기발전과 서울-경기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거대한 담수댐이다. 특히 댐이 안고 있는 수량은 서울 사람들의 물 걱정을 항구적으로 덜어줄 정도이다.
 
창촌마을 걷기에 나선다. 댐은 우람한 모습으로 길손을 맞이했다. 댐의 뼈대는 건재해 보였다. 그 건재함으로 댐 안의 수압에 의한 무게를 버티고 있을 것이다. 댐에는 24개의 수문이 있다. 밤이면 댐을 향한 훤한 조명에 따라 아름다운 야경이 연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댐 주변을 걷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창촌 마을의 이름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창촌마을 부근은 다광다풍다수(多光多風多水), 3다의 곳이었다. 그리고 미지(美地), 아름다운 땅이었다.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북한강 가의 갈대 잎들은 서로의 마른 어깨를 부딪치면서 서걱대고 있었다. 
 
강안 풍경은 물이 많은 곳임을 알게 해준다. 비가 오지 않은 겨울이라 시집가기 전 처녀들의 들떠있는 마음처럼 넓은 강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강변이 넓다는 것은 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기철인 여름이면 그 곳에 물이 가득해질 것이다. 물론 바로 눈앞에 보이는 댐의 위쪽은 물 천지이다.
 
올 겨울엔 창촌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강안에 하얀 눈이 가득 쌓였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눈이 수북이 쌓여 있는 날, 이 강변을 걷는 맛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긴 듯 포근했다.
 
“겨울,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빨간색일 때를 보지 못했다.//파란색 눈도, 검정색 눈도/보지를 못했다.//해마다 내리는 눈은/언제나 하얀색//나풀나풀 내리는 눈을 보며/좋아하는 이유는/눈이 항상 하얗기 때문이겠지.//사람이란/눈처럼, 한 색깔을 지키기가 어렵나니//산야를 온통 뒤덮은 흰 눈을 바라보며/언제 보아도 하얀/순진한 그 마음/그러면서도, 포근한 그 품에 안긴다.(문일석 시 '그대, 삶을 살면서 빨간색 눈을 보았는가?'의 전문)”
 
창촌 일대는 전후좌우로는 낮지 않은, 그러면서도 악산이 아닌, 여러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분지 형태이다. 그 분지에, 맑은 날이면 하루 종일 햇볕이 가득하다. 남쪽 강으로부터 불어오는 강 바람 또한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그 공간에 가득함을 느낄 수 있다. 많은 햇볕, 많은 바람, 많은 물이 있는, 아름다운 땅이다. 향토 사학가들은 창촌 마을에 대해 역사적인 사료를 들어 말하겠지만, 필자가 이곳을 걸으면서 느끼는 마을 이름과 연관된 영감이 주는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 창촌 눈     ©브레이크뉴스
▲ 창촌 눈     ©브레이크뉴스
 
“창촌 강바람 맞으며/길을 걷고 있으면/어디서 불어왔는지 모를 바람이/귓전에서 소곤댄다.//바람같이 온 그대/바람처럼 어디론가 쉬이 떠나갈 것이라고.//눈에 보이지 않는/스쳐가는 바람이/연이어 물결을 만들어내듯//삶은 늘 허상을 붙들고 살지//삶이란/바람과 같은 거지.(문일석 시 '바람과의 대화'의 전문)”
 
창촌 마을 앞 북한강 가를 거닐고 있을 때, 강을 스치고 온 겨울 찬바람이 얼굴로 불어왔을 때, 싸늘한 촉감으로 느껴졌다. 연이어 바람이 몰려왔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다? 삶이란 바람과 같은 거다? 나는 실상이지만 허상을 붙들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시를 쓰는 지금, 내 마음은 나에게 조차 보이지 않으나, 몹시 차갑다. 겨울 찬바람처럼.

누군가 자주 걸었을 강변 산책로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창촌의 겨울 강변은 외로웠다. 창촌 마을에서 대성리 방향으로 걸었다. 걷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아 강변 전체를 전세 얻은 심정이었다. 이 강가를 거닐다가 보물 하나를 건져 올렸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비경과 접했다.
 
“구름낀 하늘과/눈 내린 산/봉우리 봉우리들이/소리도 없이/북한강 창촌 앞, 강물로 내려와//석류즙 빛  물속에/내가 몹시도 흠모하던 여인처럼 내려앉아/내 마음을 낚아 갔다.//산과 강, 환상의 어울림에 취해/아, 탄성을 질렀네//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그 무엇, 그 환희를/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리//한 순간, 번개와 같이 나에게 다가온/이 아름다움을.//한번 지나가면 영영 오지 못할/생의 찬란한 이 순간을./꼭꼭 감춰두리.(문일석 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리'의 전문)”
 
하늘을 쳐다봤다. 맑디맑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들 사이로 하늘이 자리하고 있다. 그때 먼 하늘로 제트기 한 대가 지나갔다. 나의 시상 낚아채기는 이때도 발동했다.
 
“하늘을 나는 제트기의 꽁무니에서/긴 줄로 이어진 흰 연기 자욱처럼//나는 나의 결점들을 꼬리에 꼬리를/드러내 보이며//평생 동안 기자생활로/소란스럽게/세상을 살고 있다.//죽으면 기자귀신이 되겠지.//그땐 얌전한/귀신이 돼야할텐데, 큰일이네. (문일석 시 '자화상'의 전문)”
 
창촌 일대는 여름이면 보트를 타거나 물 위에서 뱃놀이를 하는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그러나 겨울이 오면 이 일대는 외로운 곳이다. 혼자서 강변을 걷는 맛은 일품이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쓸쓸함을 뜻한다. 또는 외롭다. 고독스럽다. 그러나 인간은 어차피 철저하게 혼자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혼자서 걷는 맛이 얼마나 감칠맛이 있는지를 안다면, 혼자서 걷는 산책길이 따뜻한 산책길이 될 수도 있다. 걷는 가운데 낚시터와 조우했다. 뱃놀이를 즐기는 장소에는 프로 낚시꾼들만이 잠시잠시 머물다 떠난다. 일본에서 온 낚시꾼도 있었다. 이곳 강은 그만큼 유명한 낚시터임을 말해준다.
 
북한강변 일대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과 기꺼이 대화를 해줄 자세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우직하게 생긴, 건장한  뼈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인 댐은 남성스러워보였다. 그 우람함으로 창촌 일대의 겨울 광풍지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일석 시인     ©브레이크뉴스
겨울의 매서운 찬바람이 친구를 해준다. 겨울에 강가의 찬바람을 맞는다는 것도 싫지는 않았다. 살이 시릴 정도의 차가움의 세월이 내 곁에 있다면, 따뜻함을 가져다줄 춘풍도 쉬이 내 곁으로 다가올 테니까. 이런 여유를 부리니 찬 겨울 바람도 친구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예수의 산상 기도와 부처의 광야기도도 걷기의 산물이다. 그 성인들도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걸음 그 자체가, 아니 걷는 게 곧 구도의 길이었다. 그 성인들 역시 홀로 걸어야만이 기도처로 갈수 있었을테니까. 그런저런 상상을 즐기며, 창촌 마을 부근의 북한강 강변을 걷고 또 걸었다. 마을에서 개짓는 소리가 강의 멀리까지도 들려온다.
 
“컹컹 짖어대는/코코라는 이름을 붙여준 우리 집 개는/나보다 귀가 밝다.//내 귀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데/개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먼저 알아듣고/컹컹 짖어댄다.//귀 밝은 개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한 소식 앞서가는/선각자//'나'라는 존재는/개귀보다 못한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개 주인이라는 이유로/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아둔한 존재다. (문일석 시 '귀 밝은 개'의 전문)”
 
필자는 이 순례지에서 충일한 우주 에너지와 만나고 있다. 걷기가 취미이기 때문이다. 고행은 뒷말이다. 하지만, 작은 고행일 수는 있다. 걸으면서 사고(思考)한다. 사유(思惟)한다. 그리하여 영적 에너지를 몸 안에 받아들인다. 체감한다. 생사에 대한 고민도 해본다. 필자는 최근 이빨 하나를 빼냈다. 이빨을 빼고나서 “세월 자네, 섭섭하네!”라는 시를 썼다.

“오른쪽 윗 어금니 하나가 흔들거리더니/혀끝으로 밀어도 밀리었다//세상에 나아가 활동할 수 있는/힘을 만들어주고//단단한 것들을 야금야금 씹어주고/말이 곱게 나오도록 소리곳간 역할을 해주고/안면을 보호해 주었던//어금니 하나를/어찌할 수 없이 빼내고 말았네/혀를 대보니 빈 공간이 너무 컸네.//오랜 세월 나와 함께 했던 이빨이/그 무엇 가리지 않고/힘든 일 마다 않더니//나보다 먼저 내 곁을 떠나는 걸 보니/미안한 맘뿐이었네.//의사 선생의 이발 빼는 집게에 집힌 채/내 곁을 떠나가는 이빨이여/잘 가게나, 이젠 편히 쉬게나.//하지만, 나도 할 말이 있네/세월 자네, 정말 섭섭하네 그려.(문일석 시'세월 자네, 섭섭하네!'의 전문)”
 
▲ 창촌     ©브레이크뉴스
인간끼리의 사랑은 한번 가면 결코 오지 않겠지만, 자연은 아니올시다! 그래서 자연이 위대한 게 아닐까?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창촌 마을에는 사랑으로 온몸이 충전된 선남선녀들이 찾아들 것이다. 그래서 겨울 강변걷기는 외롭거나 고독스런 것만은 결코 아니다. 혼자서라도, 지치더라도 걸으면, 그 가운데 기다림을 상상하면서 영감(靈感)을 건져 올리면 된다. 창촌은 자연이 만들어준 건강의 보고이다. 이 마을로 몸 아픈 이들이 모여들고 있어서이다. 그리하여 건강서 좋아졌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공기가 맑은 곳이다. 
 
▲ 청평 북한강 가의 갈대     ©브레이크뉴스
인생을 옷가지의 수에 비유한다면, 단 한 벌뿐인 옷과 같은 게 인생이 아닌가? 걸으면서,  사유 속에서, 이를 기정사실로 확인하기도 한다. 또는 위대한 선각자 또는 종교인들의 메시지를 음미하기도 한다. 필자는 창촌을 걸으면서 자작시 '손수건'을 읊조렸다. 겨울 북한강은 지나간 사랑을 애태워하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준비한 손수건 같은 땅이었다.
 
“다시는 못 볼 사람을 사모하여 흘린 눈물을 닦던/구겨지고 또 구겨진 올올 사이로/그리움의 냄새가 솔솔 피어오른다.//보고 싶어 잠 못 이루다/커피 잔에 마지막 남은 한 방울마저 입술에 적시며/밑바닥에 말라붙은 그리움까지 훔쳐내는/애틋한 사연을 주섬주섬 안고 있다.//젖은 천 조각이 무슨 죄인가//떠나보낸 사람 생각에/가을 갈대 잎처럼 소리 없는 바람에도 흔들리며/마른 눈물을 흘리지나 말지.//잊지 못하게 하는 절절함을/시도 때도 없이 흘려보내는 그 무엇,/정들었음이 죄라면 죄지.//그래도 산자의 그리움 때문에/눈물에 젖은 손수건을/세월의 깊이만큼 힘줄 굵어진 손에 쥔채/훌쩍거리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문일석 시 '손수건' 전문)
 
창촌 강가의 넓은 잔디공원에 눈이 가득 쌓였다. 한낮, 그 길을 걷다가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훈풍에 눈이 녹아 형체조차 없어져 버렸다. 삶도 그런 게 아닐까?  사라져버린 눈사람  뒤에서 시 한편을 건졌다. 장사로치면, 그래도 남는 장사였다.
 
“눈이 쌓인 창촌 들판에서/눈을 굴려굴려/눈사람을 만들었지//눈도 붙이고 코도 붙이고/입도 만들고/두 팔도 만들었지//거창했던 그 눈사람, 으스대던 그 눈사람/날씨가 풀린 날/형체도 없이 사라졌어.//훈풍에 사라지는 눈사람을/그 누가 막을 수 있어//삶도 그런 거지.//녹을 땐 녹더라도/눈사람을/크게크게 만드는 거지(문일석 시 '삶도 그런 거지' 전문)”
 
“삶도 그런 거지”라고 되뇌이며, 강가를 거닐고 또 거닐었다.
 
눈사람은 자신을 만들어준 시인에게 고백을 했다. 바라다 보이는 것이라곤 하얀 눈 뿐인 설원에서 분명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가 시인에게 들려준 메시지를 시로 옮겼다.

“나도 사람이 돼 봤는데/사람, 별거 아니더라.//눈 녹자 내 인생도 끝나버렸어.//진짜 사람아, 그대 인생살이도/눈사람 닮았지.//자연이 그대를 붙들어주고 있을 때/알고 지내는/모든 이에게 잘해주게나.//많은 사람을/사랑하는 일이 어렵다면/이 세상의/오직 한 사람에게라도/정말, 정말로 잘해 주게나.<문일석의 시 '눈사람의 고백' 전문>”
 
눈사람 말이 맞지. 그래 사람 별거 아니지. 사랑만 빼고는.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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