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가 없던 당시 박스컵의 축구대회는 우리들에게 가장 큰 볼거리였다.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과 함께 벌어진 아웅산테러 사건은 무시무시한 사건이 되었다.
미얀마는 국호도 미얀마로 바꾸고 군인들의 정권장악으로 한동안 우리에게 멀어진 국가였다. 작년에 군부정권은 직선제로 선거제도를 바꾸고 새로운 국가로 탄생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에 가까운 미얀마는 관계가 멀어진 미국을 위시해서 서방국가들과 문호를 개방하고 미국의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얀마를 방문하여 아웅산 수치여사를 만나는 것을 허락 받을 정도로 개혁, 개방에 미얀마는 적극적인 모습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도 미얀마를 전격적으로 방문하고 양국의 경제원조와 자원외교에 물꼬를 트고 정부특사 까지도 보내는 정책을 쓰고 있다.
미얀마는 어떤 국가일까? 개방정책으로 한국의 사람들이 미얀마를 ‘희망의 땅’으로 생각하고 직항 노선도 없는 그곳을 하루 온종일 걸려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금년 초까지 천여명에 불과했던 교민숫자도 이천명 수준까지 늘어나고 있다.
국내 항공사에서는 올해 태국을 경유하지 않고 미얀마 양곤 공항으로 직행하는 항공기를 띄우는것도 준비중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경제발전이 낙후한 미얀마를 희망과 신기루가 있고 노다지가 있는 땅으로 생각하고 너도나도 희망을 품고 미얀마행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땅이 아니다. 외국인들이 마음먹은 대로 노다지를 캐갈 수 있는 그러한 곳이 절대로 아니었다.
아직까지 현금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큰 돈을 가지고 들어가기도 까다롭고 복잡하다. 미얀마에서 돈을 번다 해도 ‘환치기’라는 부정한 방법 외에는 가지고 나올 수 도 없는 상황이다.
투자나 사업 부분에서 외국인을 보호해주는 법령도 없다. 미얀마 내에 회사를 설립 하기 위해선 현지인을 대표로 내세우고 외국인은 돈을 투자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현지인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미얀마 사람들은 대체로 불교국가 국민답게 선하고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개혁개방이 크게 이루어지고 경제가 크게 일어난다면 그들 역시 정말 믿어도 될지를 걱정해야 한다.
미얀마의 지금 현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에 북한에 투자사업을 하려는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
미얀마는 절대로 희망의 땅이 아니라 ‘아차’ 하면 크게 손해를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불안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몇 년 전, 한 한국인은 더운 미얀마에 시원한 음식을 파는 곳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거금을 들여 시원한 냉면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냉면 사업은 얼마 못가서 실패하고 말았다. 시원하게 말아먹은 것이다.
그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미얀마 시장조사와 그들의 음식문화를 살펴보지 못하고, 단순히 외국인의 입장에서, 더운 나라이니 시원한 음식을 좋아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했기 대문에 사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동남아 국가 사람들은 시원한 음식을 기피하고 아무리 더워도 뜨거운 음식을 먹는 이열치열의 음식문화가 있었던 것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들의 음식문화를 이해했다면 ‘라면’ 같은 뜨거운 음식을 파는 사업을 했다면 그는 분명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미얀마에는 여러 가지 지하자원이 풍부한 국가이다. 석유, 가스, 보석, 구리, 옥광산, 등..아직 개발되지 않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를 우습게 보고 겁 없이 자원 개발사업에 도전했다가는 이 역시 실패할 확률이 100%다.
미얀마는 일찍이 영국의 식민지 였다. 미얀마의 상류층은 영국에서 현대식 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우리보다 더 우수한 경제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추진하는 미얀마가 외국인에게 희망을 팔고 절망을 줄 수 있는 무서운 함정이 있다는 것을 미얀마 진출을 꿈꾸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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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난을 벗어나고자 제과점에서 빵 만드는 종업원으로 시작하여 부산에서 제빵점을 운영할 때, 한국으로 돈 벌러온 미얀마 청년을 제과점의 종업원으로 채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미얀마 청년은 상류층의 자녀로서 한국이 좋아서 근로자로 입국을 했는데 청년의 아버지가 당시 미얀마 실력자의 아들이었다.
이 청년의 소개로 한국을 사업차 방문한 미얀마 사업가를 만나게 된 박씨는 그들의 설득으로 2년간은 고민하다가 가게를 정리하고 미얀마행 비행기를 탄 것이라고 했다.
당시 40대의 박구영씨는 그들과 사업 파트너가 되어 제빵가게를 열고 미얀마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빵을 현지에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행복을 주는 빵, 배부른 빵을 만들기 위해 박 씨는 손이 터지고 피로가 겹쳐 쓰러지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성공을 위해서 한걸음씩 걸어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장벽, ‘문화장벽’이 허물어 지면서 그는 어느새 미얀마 사람과 섞여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돼 있었다.
물론 박씨의 모습은 여전히 한국인 이지만, 행동이나 습관은 완전 미얀마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불모의 땅에서 기적을 만든 것이다. 박씨는 8년만에 여덟 개의 빵 매장을 운영하고, 미얀마 항공사에 기내식으로 빵을 공급하는 등 사업가로 큰 성공을 했다. 그리고, 한국식당이 아니라 현지인들을 상대로 하는 대형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무려 14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한국인 CEO가 된 것이다. 박 씨 가게의 미얀마 종업원들은 친절한 그를 한국말로 ‘아빠’라고 부른다.
그는 최근 제2의 사업도 시작했다. 8만평의 땅을 정부로부터 사용허가를 받고 미얀마 승마협회와 합작으로 국제적 규격인 승마장과 한국식당, 현지인식당, 사우나 호텔과 어린이 동산 건립을 진행 중에 있다. 금년 말이면 위락단지가 영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박씨는 미얀마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절대 서두르면 안된다고 말한다. 특히 박씨는 미얀마를 호락호락하게 생각하면 실패한다고 거듭 말했다. 박구영의 성공신화는 기술이 있었고 좋은 현지 파트너를 만났다는 것이다. 무조건 미얀마에서 시작하면 성공 하겠지하는 생각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