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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과 추석은 한해의 가장 큰 명절이니 조상님을 위해 상차림에 정성을 다해야겠기에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현실물가를 받아들인다. 연이은 태풍피해로 농사를 망친 농민들 입장이나 직장을 잃거나 오래도록 취업하지 못한 실업자들은 또 이번 추석을 맞는 마음이 과연 어떨까. 추석에 뜨는 달은 둥글어 모자람이 없지만 만월(滿月)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마음은 텅 비고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작년엔 밤하늘에 흰 구름이 많이 낀 사이로 아쉬운 대로 보름달을 볼 수 있었지만 올해엔 휘영청 밝은 달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즐라왓 태풍이 현재 중국 남부지역 쪽으로 북상하고 있고 방향을 틀어 일본으로 향한다고 한다. 이 태풍이 북상하게 되면 28일부터 태풍의 영향권에 진입하게 되는데, 29일은 제주도지역, 추석날인 30일은 남부지방쪽이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예고한다. 그렇지만 보름달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추석 태풍’하면 사라호가 떠오른다. 1959년도에 불어 닥친 초특급 태풍 사라호는 추석 하루 전인 9월 17일 새벽부터 당일 밤 12시까지 전남과 경남·북 지역을 통과하면서 특히 대구·경산·안동·영덕·영양 등 지역에 막대한 해를 입히고 이튿날 동해로 빠져나간 뒤 소멸하였다. 이 태풍으로 9백2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98만5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대단히 컸다. 태풍이 정통으로 지나간 경북 영양이 고향인 작가 이문열은 그의 소설 '변경'에서 '사라호의 추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라호가 찾아온 그날은 추석이었다. 당시 14세로 중2였던 나는 추석날 아침 할아버지를 따라 장대동에 있는 친척집의 차례를 지내기 위해 갔었다. 지난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폭풍까지 동반해서 차례를 지내는 대청마루에 창대같은 빗줄기를 퍼부었다. 항상 명절이면 망건에 갓을 쓰시고 두루마기까지 입으셨던 할아버지는 사정없이 몰아치는 빗줄기를 보며 몇 번이고 혀를 차셨다.” 이 글에서도 사라호 태풍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번 추석에는 휘영청 보름달을 바라보며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소원을 빌게끔 청명한 날씨를 기대해본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민족대이동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이번 추석에도 국민의 58%인 2925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이번 추석은 주말과 겹치는 등 연휴가 짧아 어느 해보다 교통전쟁이 예상되고 있어 걱정거리다. 지난 주말에 성묘하느라 지방에 다녀온 수도권 사람들은 심한 교통정체로 큰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후손된 당연한 도리기에 마음만은 뿌듯하였을 테지만 마음을 다급하게 만든다. 교통정체는 매년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니 누구라도 마음 느긋하게 갖고서 안전하게 고향을 다녀왔으면 한다.
추석이 가까워 그런지 지하철에도 승객들이 붐비긴 마찬가지다. 어제 시내 서점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은 퇴근시간과 맞물려 평소보다 복잡했는데, 2호선 대림역 문화공간에서 흐뭇한 광경을 보았다. 청년 두 명이 기타를 튕기며 노래하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너클밴드와 함께 유니세프 후원하기’ 행사를 하고 있었다. “사랑과 행복 나누세요”는 타이틀로 청년 듀엣은 임재범의 ‘비상’이란 노래를 열창했고, 지나던 행인들이 잠시 발을 멈추고서 호응하기도 했다.
“…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 더 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 줄 거야. / 힘겨웠던 방황은~.” 젊은 듀엣은 마치 실의에 빠진 세상 사람들에게 용기를 갖고 비상(飛上)해라는 듯이 열창했다. 한 곡을 마친 뒤에 신청곡을 받고는 다시 노래를 불렀는데 진지했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이 넘고 장년이 백수로 지내는 등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 때에, 제발 노래가사처럼 힘겨웠던 방황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이번 추석에는 보름달 같은 기대를 품고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rgjeong@naver.com
*필자/정라곤(시인․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