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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자랑하는 한(漢)나라도만 하여도 건국초기에 ‘동이족이 세운 나라에게 조공을 바치고 신하로 복종하며 겨우 나라를 유지했다.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와 명제(明帝)는 남흉노에게 금. 은화 9천만 냥을 주었고, 선비 부족장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연간 2억 7000만 냥을 바쳤다. 이렇게 창피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인데 중국학자들은 요즈음은 천하에 없는 망발을 쏟아놓고 있다.
허다한 역사 가운데 자기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만을 모아다가 아전인수식으로 논리를 전개하여 동북공정이라는 괴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국사학자들 보다 더 못난 한국의 사학계는 만년을 이어온 동이족의 참으로 단단한 역사의 방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사학계가 한다는 짓이 고구려니, 신라니, 백제니 하는 거대한 삼국을 한반도로 안으로 끌어와 지지고 볶아대어 달걀만큼 작은 역사를 꾸며 놓았다. 그러다보니 가락과 일본 열도, 요동, 만주와 몽골은 증발해 버리고 우리의 장구한 역사가 조롱박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중 가장 애석한 것은 동이족의 역사인 후금의 후신인 청나라의 역사가 증발해 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할 일이다.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사학자들의 발상을 보면 “예전에 내가 살던 땅도 내 땅이고 예전에 네가 살던 땅도 내 땅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장을 사실화하려고 기고만장이다.
하지만 요동과 만주가 중국 땅에 귀속된 것은 아주 최근세의 청나라 때의 일이고 중국사에서 그 비중은 미미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깊이 따져보면 중국은 실질적으로 요동과 만주를 제대로 통치한 적이 없는 것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식의 논리는 그야말로 억지 주장이다. 그런 강변은 사실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다.
고구려는 여러 문헌에 나타나는 것을 종합해 보면 8백년 가까이 국체를 유지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요동과 만주 그리고 한반도의 북단에서 웅거하였다. 모든 동이족을 하나로 규합하여 크게 발전한 나라였다. 그런 거대하고 광활하고 장구했던 고구려는 한반도 방향으로 역사의 흐름이 쏠려있는 것이 아니라 칭기즈칸의 몽골민족(동이족)과도 직접적인 연계관계를 가지고 발전했다는 기록이 많다.
그런 관점에서 고구려를 살펴보면 고구려를 달리 표현하는 구려(句麗)라는 말은 고을 또는 나라를 뜻하는 고구려어 ‘구루(GuLu)’에서 나왔다. 구루와 유사한 말로는 ‘몽골(GoL)’, ‘말갈(GaL)’, ‘돌궐(GuaL)’, ‘위구르(GuL)’ 등이 있으며 몽골, 맥골, 맥고구려 라는 말도 있다.
강원대학교 주채혁 교수는 몽골이라는 말을 연구한 결과 이는 맥고구려에서 나온 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1998년 발표하며 몽골비사를 다음과 같이 예를 들었다.
‘몽골비사’에 의하면 몽골의 시조인 알랑고아의 아들은 보돈차르이다. 그리고 코릴라르타이 메르겐(고주몽)이 보돈차르의 외조부이다. 그러므로 몽골족은 코리족의 외손(外孫)이 된다. 또 몽올(蒙兀)이라는 말은 보돈차르의 4대조 때에 나온 말이다. 몽골은 성모(聖母) 알랑고아(고주몽=코릴라르타이 메르겐의 따님)를 중심으로 세상에 태어난 종족으로 맥고구려(貊高句麗) → 貊(맥)고올리 → 貊(맥)골 → 몽골(?) 등의 순서로 음이 전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것이 강원대학교 주채혁 교수의 연구 결과다. 그리고 ‘몽골’에서 ‘몽’은 씨족의 이름이다. 지금도 동몽골에서는 한국을 부르기를 ‘고올리’라고 부른다. 이 ‘고올리’에 ‘몽’을 합하여 몽고올리, 즉 몽족의 고올리 라는 것이거나 맥고올리(맥족의 고올리)가 몽골로 전화되었을 것이다. 라고 주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밝혔다.
하지만 몽골이라는 명칭이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몽골학에 깊은 연구가 있는 박원길 교수는 몽골이라는 명칭의 기원을 ‘주몽신화’에서 찾고 있다.
‘주몽신화’에 보면 주몽이 어느 날 모둔곡에 이르러 세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마의(麻衣)를 입고, 한 사람은 납의(衲衣: 장삼)를 입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수조의(水藻衣: 水草衣)를 입었다. 이 세 사람에게 주몽이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그리고 이름은 무엇이오?”
그러자 한 사람이 셋을 대표하여 대답하기를
“마의를 입은 사람은 재사(再思)이고, 납의를 입은 사람은 무골(武骨)이며, 수조의를 입은 사람은 묵거(?居)입니다.”
삼국사기 중의 고구려본기에 나오는 내용을 필자가 이렇게 각색해 보았다. 박 교수에 의하면 위의 사료에서 재사(再思)는 지혜를 뜻하거나 귀인(貴人)을 의미하고 ‘무골과 묵거’는 이 두 개의 글자가 몽골이라는 용어가 되지 않았을까? 라고 추정하였다. 즉 무골(武骨)은 mogol(모골) > monggol(몽골) 의 음역으로 보이며 묵거(?居) 역시 무거(moggo)의 음역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몽골전문가들이 몽골을 분석하는데 있어 고구려와 연관지어서 언어학적 혹은 역사학적으로 고증하려고 애를 쓰나 확실한 것은 아직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몽골과 고구려는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고구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오래 전부터 우리 역사를 가지런히 하여 바르게 세우는 노력을 하였다면 동북공정과 같은 중화족의 동이족을 말살하는 시도는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은 요동ㆍ만주 지역에 대하여 어떠한 권리도 내어 세울만한 역사적 사실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동북공정이라는 말 자체도 오늘날의 중국정부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불가피한 방패막이가 정도가 아닌가 싶다.
중국 정부는 사실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이 아직은 불안정하므로 동북공정이라는 괴물을 내세워 요동과 만주를 장악하려는 책동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공정을 한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자기 땅이 아닌 땅을 억지로 자기 땅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2차 대전 이후 그 많은 한족(漢族)들을 만주로 이주시켜 한족의 영유지로 삼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중국정부는 잽싼 식민지작업(植民作業)을 통하여 만주를 완전하게 지배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사학계는 영토와 동족이 멀리멀리 사라지는데도 먼 산 불구경이나 하듯이 외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동북공정의 올가미에 완전하게 걸려들고 만 느낌이다.
지구의 역사상 민족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하나의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제일 먼저 시도하는 작업이 그 나라의 역사(歷史)를 말살시키는 일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동이족에 대한 말살을 주도면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동이족의 영토는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 전체를 말살하는 노력을 쉬지 않고 있다. 이제는 해 뜨는 땅 대륙 끝에 마지막 남은 한반도를 노리고 있다. 티벹과 한국 그리고 몽고가 남아 있는데 그것을 입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티벹은 자치주가 되었으며 몽골은 3백만 불과한 인구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그래도 한반도에 7천만의 동이족이 남았는데 한국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다. 원통하게도 그들은 삼국사기니, 삼국유사를 신주단지처럼 여기고 한단고기와 같은 소중한 고서들을 위서라고 낙인을 찍어가며 팔짱을 끼고 구경이나 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세상에 제 조상이 남긴 역사서를 위서라고 하고 사대주의에 찌든 잡것들이 쓴 사서는 옳다고 하는 민족이 한국민족 말고 또 이 세상에 더 있을까!’
이렇게 한국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더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잠에서 깨어나서 보면 대한민국의 서울(Seoul)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쭝후아런민꿍허꾸어(中華人民共和國) 한씽(韓省)의 한청(漢城)’으로 중국화 될지도 모른다. 모처럼 중국말로 표현해 보았는데 알맞은 표현인지 모르겠다.
고구려는 동이족의 텃밭이다. 못자리판이었다. 그리고 호수(湖水)이며 바다였다. 대부분의 동이족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고구려와 연관관계를 맺으며 역사를 만들고 꾸미며 살아 왔다.
저 위대한 칭기즈칸이 있으므로 해서 오늘날까지 소수이지만 몽골이 남아 있듯이 고구려라는 거대한 역사가 있었기에 동이족이 존재성을 잃지 않고 버티어 온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동이족의 역사서 고구려가 가지는 최대의 강점인 것이다.
이제 알겠는가? 동이족이라는 단어가 왜 그리도 중요하며 고구려라는 나라가 왜 그리도 중요한 것인지 알겠는가? 그리고 또 몽골과 만주 그리고 일본열도와 한반도가 뭉쳐야 한다는 역사적인 소명을 알겠는가? 그래야만 잊혀져가는 요동에서 만주에서 살아남아 있는 동이족의 뼈와 피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원시반본 한다고 한다. 역사가 처음 시작했던 그 영광이 재현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 옛날 고구려의 영광을 위하여 동이족의 피와 뼈를 다시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동이족이 다시 역사 앞에 크게 살아날 것이다. 필자는 믿는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뼈는 살보다 강강하여 동이족이 반드시 역사의 주인이 될 날이 온다고...
*필자/이순복. 작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