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캠프 , 케어 아일랜드, 위로, 아픔, 상처, 스킨 쉽, 꿈, 희망 ,그리고 소울 프랜드,
그냥 한글발음 그대로 적어본다. 이미 통용단어처럼 쓰이고 있다.
이런 낱말들이 청소년과 청장년, 그리고 노년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감싸고 유행처럼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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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가?
모두 아픈가?
그렇다.
나름 다 아픔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아픔조차 근원을 직시하고 뛰어넘는 가없는 자각의 경지에 이르기가 힘들기 때문일까?
그러나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
신을 신앙하고 있는 거의 모든 곳이 모두가 신이 될 수 있다라고 한다면 무엄하다고 이단시 하겠지만 의외로 부처님은 모두가 부처님처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누가 꿈에 대해 여럿이 앉아 얘기했다고 한다.
나는 그냥 미소 지었다.
과연 꿈에 대해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어떤 꿈 ? 불교적인 꿈? 현실적인 꿈? 야망과 성공에 대한 꿈 ? 용량 미달로 자신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야말로 가여울 정도의 허황된 꿈? 그냥 인류 역사 내내 곳곳에 무수한 모래처럼 반짝이다 사라지는 그 꿈들? 그 모두가 실은 우리들의 세상에서 다 각각 무게를 나름 지니고 있다.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아직 생각한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불변의 진리, 모든 것은 다 변한다. 그리고 허무가 아닌 환상, 없기에 또한 채울 수 있는...
우선 그들이 얘기 했다는 꿈의 대화에서 무엇을 어떻게 짚어 주었을까?
어떤 꿈을 어떻게 짚어 어떤 해답을 그나마 깨닫게 해 줄 수 있는가가 여기에서 할 일이다.
꿈,
희망,
누구나 가진다.
인간의 일상, 수천 수 만년 쓰여지고 말해지고 경배조차 되는 낱말이다.
삶에서 더없이 아름답지만 때로 엄혹하기조차 한 , 그래서 유난히 이 시대의 유행화두처럼, 혹은 해답처럼 허공에 던져지는 이 낱말들,
그래서 또한 유행처럼 범람하는 아픔, 상처, 그리고 힐링과 케어 캠프들.
꿈,
어떻게 갈무리 하는가?
열정 ,그래서 성취하는가?
사람들은 그 답을 기대해서 간절함으로 이곳에 올 것이다.
산사의 청정한 공기, 범종의 더없이 은은한 울림, 풍경소리, 스님들의 독경소리 , 그리고 아득한 공적(空寂)함을 향한 이제 겨우 시작한 20분 ,30분간의 좌선, 장엄한 새벽, 그런 분위기만으로도 산사는 이방인들에게 일순 충만하다.
그러나 그런 그윽한 아름다움에 안겨 단순히 쉬러 왔다 해도 최소한 꿈이라던가, 내일이라던가, 희망이라던 가에 어느 한 곳 잡힐 듯한 답의 한 자락이라도, 근원의 힘을 찾아 자각하고 마음 밝게 산을 내려갈 수 있다면, 아니다 산사의 깊은 아름다움이 우리의 정신을 , 영혼의 범종 단 한끝이라도 뎅- 울릴 수 있다면, 더 없는 바람 아닐까?
꿈,
희망,
소년들에게 아픈 청춘들에게
좀 더 신선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짚어 주어야 한다.
또한 세계적인 석학이 온다 해도, 그가 열정 가득히 공격적으로 질문을 던져온다 해도 눈썹 한 자락 미동 없이, 근엄한 무게조차 다 덜어낸 눈동자로 그들조차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의 문제에서, 우주의 문제에서, 유난히 까다로움을 미덕으로 삼던 세상의 최상기준인 그들조차 이윽고는 수긍하고 미소 지을 수밖에 없는 깊이를 , 그릇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생의 한가운데에서 열정 가득한 남다른 크기의 삶의 경험도 필요하다.
우주를, 세계를 보는 눈이 있어야하고, 역사와 인간과 문화를 탐구해온 행적과, 사상과 안목과 판단의 정교함과, 경험의 한계조차 뛰어넘는 통찰과 성찰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참 진리의 바른 지혜가 육신을 이루는 물처럼 녹아 있어야 한다.
한 두 세기정도는 쉽게 훌쩍 뛰어넘는 지식적 무장의 그들에게 다시 세상을 보는 방식도 알려주어야 하고, 그런 가운데 불성의 힘으로 영혼과의 교감도 이룰 수 있어 참 지혜로 공적(空寂)한 정신의 새로움으로 정각하는 전환점을 느끼며 변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되도록 모든 생명력을 더욱 최상으로 끌어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고 본다. 이제 그런 정신과 영혼의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 될 준비를 하는 과정의 기도로 들어간다는 문수산 법륜사 주지 현암 스님의 꿈다운 꿈의 한 자락이 이심전심으로 언뜻 비치는듯하다.
언제나 아픔만을 호소하며 상처를 드러내고 힐링만을, 누군가의 케어만을, 그리고 위로만을 기다리며 필요로 하는 환자에 머물러있기에는 아무리 한낮 꿈이라도 모든 삶의 하루하루가 너무 아깝고도 고결한 시간이다.
잔뜩 건조해진 중년들과 노년들의 정신에서, 육신의 마른 뇌에서 활기찬 생동적 열정을 끌어내야한다.
생활의 방식을 보다 청신한 의미로 바꿔 진짜 꿈을 샘솟게 하는 매력적인 반전과 영겁을 관통하는 방법의 습관, 훈련도 필요하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최선과 건강한 행복감도 느끼며 에너지 넘치는 삶의 여정에서 정신의 기품과 조화로운 일상의 환희로운 절정의 교감도 함께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알고 그리고 또 겸허히 소박하게 다 내려놓을 줄도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곁을 내 줄 수 있는 봉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종교성, 혹은 영성, 불성을 깨우치도록 자극하는 숨은 철학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가 스쳐지나는 어리석음으로 몰랐던’ 을 끄집어내어 삶의 신선한 영감이 샘솟도록 해야 한다.
물론 북적거림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선방이 있고 기도가 있는 , 그리고 영혼의 정진이 치열하게 지속되는 산실, 정신의 태동, 그 원천이라면 궁극으로 이 곳을 떠 올릴 수 있는 그런 도량, 살아있는 적멸 보궁같은 산사라면 더욱 좋겠다.
이조차 지나친 욕심일까?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기적 게으름일 수 있다.
숨은 진리를, 참 지혜를 한사람이라도 더 알 필요가 있다.
후두둑
오전인데도 인적이 없는 산사의 숲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다.
돌아보니 까치가 깍깍 하고 울어준다.
아하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였구나
너였니? 까각! 아주 짤막하게 그렇다고 답해준다.
침 맞으러 용인으로 나가는 작은 버스가 오기에는 아직도 11분이나 남았다.
문수산 법륜사
다시 산골길은 적요로 돌아갔고 나는 숲 너머 산사의 청정한 하늘을 본다.
*필자/오정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