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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시사저널’ 최신호 기고 글을 통해 현재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인 철도민영화 논란 및 노조파업사태와 관련해 재차 쓴 소리를 날렸다. 박 대통령의 대처인식과 대처 전 총리의 노선연계에 “아전인수식 해석측면이 많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교수는 ‘마거릿 대처를 제대로 아는 가’란 제하의 글에서 “철도민영화 논쟁과 노조파업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30년 전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영국이 떠오른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철도에도 경쟁논리를 도입하고 파업하는 노조에 강경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때 대처 총리를 언급하기도 한다”며 “박 대통령도 대처 총리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대처는 영국 국민과 야당의 전폭지지를 얻으며 탄광노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영국의 철도민영화 경우 대표적 실패작임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영국의 철도 민영화는 대처 후임자 존 메이저 총리 시절인 1995년 이뤄졌다”며 “철도사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취지였으나 인수하겠다는 업체가 한 곳밖에 없어 결국 그 한곳의 민간 기업이 영국철도(BP)를 인수하고 말았고, 철도민영화는 영국 보수당 정부가 취했던 민영화 정책 중 실패사례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처가 시대착오적 석탄 에너지를 볼모삼아 파업을 일삼는 노조를 제압한 건 집권 5년 차 때였다”며 “철의 여인이란 대처도 여론지지와 야당동조를 등에 업고서야 비로소 노조를 누를 수 있었다는 데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노조파업을 단순히 준법에 의존해 해결하긴 어렵다는 걸 대처는 잘 알고 있었다”며 “대처가 시작한 민영화 정책은 민간경쟁이 가능하고 그게 바람직한 항공·통신·석유 분야에선 성공을 거두었고, 국영 설탕·국자동차 회사 등 국영기업이 즐비했던 당시 영국에서 민영화는 당연한 개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하지만 철도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철도는 항공기 및 다른 도로 교통수단과 경쟁을 하지 철도끼리 경쟁하진 않는다”며 “철도를 포기한 멕시코와 칠레를 제외한 대다수 나라가 적정규모 적자를 감수하면서 철도를 운영하는 건 철도가 일정 수준 공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특성을 무시하고 단행한 영국철도 민영화는 민간투자와 서비스 향상이란 원래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며 “영국에서 철도 민영화가 실패한 건 철도특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영국 보수정권에서 있었던 일을 교훈 삼아 철도민영화 논란과 코레일 파업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면서 정부에 사실상 코레일 정책의 재고를 촉구했다.
지난 1979년 봄 집권에 성공한 대처는 취임 직후 정부조직 및 공무원 개혁을 강도 높게 단행했다. 대처는 거대 공무원 조직이 영국병의 근원으로 보고 반관반민조직을 만들어 비능률적 정부조직을 혁파했다.
관료제 개혁에 성공한 대처 정부는 방만한 국영항공(BA)·국영통신(BT)·국영석유(BP) 등을 민영화하면서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당시 영국민들은 파산한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정부가 인수해 더 큰 적자를 만든 걸 목격 후 정부조치를 지지했다.
지난 1983년 총선 당시 대처의 보수당은 397석을 차지하며 209석을 얻는 데 그친 노동당에 압승했는데 포클랜드 전쟁승리에 힘입은 것이었다. 1984년 말 사회주의자들이 이끄는 탄광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대처 정부는 강경 대응했다.
노조가 파업에 대비 석탄을 비축해놓은 정부를 이길 순 없었다. 영국민들은 노조가 벌이는 잦은 파업을 싫어했고, 전통적으로 노조를 지지해온 노동당마저 탄광노조에 등을 돌렸다. 결국 대처가 노조와 싸워 승리한 기저엔 민심의 지지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