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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어도는 명백한 우리 땅이라는 목소리가 굉장히 드세게 일고 있습니다. 이어도 관할 해양영토 규모는 우리나라 면적의 몇 십 배, 거기에다 세계 3대 유전지대로 꼽힌다면 문제는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최남단 영토는 이젠 마라도가 아니라 이어도(離於島)라야 합니다!”라는 소리가 높은 것이죠.
저의 아내 사랑초 정타원(正陀圓)이 제주도 사람입니다. 제가 몇 십 년 전 혼인(婚姻)해서 처갓집에 갈 때마다 ‘이어도 사나 아아아~ 이어도 사나 으샤 으샤’하는 아낙네들이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주 사람들에게는 이어도의 실체가 확인되기 이전부터 이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온 이상향(理想鄕)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척박한 현실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이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는 ‘환상의 섬’이었죠.
이어도는 옛 제주사람들이 바람 많고 돌이 많은 땅에서 생활해 나가며 키워왔던 꿈, 해녀들이 물질을 하며 그리던 곳, 그곳이 바로 이어도인 것입니다.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과, 반대로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함께 만들어낸 이상향, 바로 이어도이었죠.
이어도는 제주지역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 민요 등에서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 속에는 ‘남편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돌아올 줄을 몰랐다. 이 배는 풍랑을 만나 한 섬에 표류하게 됐다. 그 섬이 다름 아닌 이어도이다.’ 또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이어도로 떠났다는 전설도 있고, 그 남편을 그리며 이어도를 노래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설화(說話) ‘남 선비 이야기’도 비슷한 줄거리입니다. 곡식을 구하러 바다로 나간 아버지 ‘남 선비’가 돌아오지 않자 그의 일곱 아들과 아내가 뗏목을 만들어 그를 찾으러 나선 것입니다. 그러다가 거친 파도와 싸우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이어도에 표류해 있는 아버지를 찾는다는 이야기이죠. 이처럼 신화와 전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제주도로부터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이어도에 가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어도는 한 결 같이 꿈속의 낙원 같은 살기 좋은 곳이자 떠나기 싫은 현실적인 생활의 터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해양활동을 해온 제주도민에게는 생활의 터전이자 현실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이상향으로 함께해온 것이죠.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이어도는 수심 40m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북으로 약 600m, 동서로 약 750m에 이른다고 합니다. 정상부(頂上部)를 기준으로 남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고 하네요. 문학작품 속에서도 이어도는 제주 사람들을 넘어 이상향을 동경하는 모든 이들에게 다가서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부에서도 1951년 이어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첫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어도의 실체가 제주 사람들 마음속에서 나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언제일까요?
이어도는 우리 고문헌과 지도 속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1700년대 초기의 ‘제주지도’, 1750년(영조26년) 쯤에 제작된 ‘해동지도 중 제주삼현도’, 1770년대의 ‘제주삼읍도총지도’, 1822년 ‘환영지중 탐라도’, 1841년 이원조가 제작된 ‘탐라지도병지’ 등의 지도와 ‘탐라순력도’ ‘남환박물’ ‘일본서기’ 등 고문헌에 ‘여인국’ ‘여도’ ‘제여도’ ‘유여도’ 등의 이름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어도는 ‘하멜표류기’에도 등장합니다. 하멜은 1653년 7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무역선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타고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도중 태풍을 만납니다. 그래서 제주도 서귀포 인근 해안에 표착한 인물이죠. 그가 제작한 동아시아 해역 항해도에는 이어도로 짐작되는 섬이 ‘Oost’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이 지점을 보면 그 위치가 현재의 이어도와 일치한다고 하네요.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이어도가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조명된 것은 1900년 영국 상선인 소코트라(Socotra)호에 의해 발견되면서였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이 선박의 이름을 따서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10년 영국 해군 측량선 워터 위치(Water Witch)호에 의해 확인되었죠.
1938년에는 일제가 이어도에 직경 15m, 높이 35m 규모의 해저전선 중계시설과 등대시설을 설치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실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와 해양영토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하면서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이어도에 대한 실재론이 등장한 것은 1951년 9월10일의 일입니다. 당시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서 높은 파도 속에 실체를 드러낸 이어도 섬 꼭지 점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죠.
당시 탐사 팀은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라고 새긴 동판 표지를 수면 속 이어도에 가라앉히고 돌아왔습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 당시 1952년 1월 18일 국무원 고시 제14호로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을 선언한 평화선 선포수역 내에 있어 우리나라의 해양관할권에 속한 것입니다.
이렇게 명백한 우리나라 땅인 이어도를 어찌 중국과 일본은 자기네 관할이라고 억지 생떼를 부리는 것일까요? 그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이 그 지역에 분포된 자원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 보다는 정부의 무관심과 약자라서 목소리를 못내는 패배의식 때문은 아닌지요!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위정자들이 정쟁에 골몰하고 나랏돈으로 잇속이나 차릴 때가 아닙니다.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어쩌면 또다시 중국과 일본에 침략을 당하는 수모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환상의 섬 이어도’는 제주 인들은 물론 우리들의 영원한 마음고향 아닌지요!
duksan4037@daum.net
*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