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로 드러난 국정원의 간첩증거조작 사건논란이 일파만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사과까지 나섰으나 숙질 조짐이 아니다. 해당 사안의 본질은 국가기관의 ‘국기문란’이다. 박 대통령과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과 및 쇄신 어필만으로 상쇄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팩트(fact)’다.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 침묵으로 일관 중인 여당과 재차 ‘특검’이란 기존 카드를 꺼낸 채 남 원장 경질을 요구 중인 야당의 빤한 전술적 접근은 국민들 피로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현 국면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지속돼 온 ‘국정원대선개입의혹’ 사안이 묘하게 재차 오버 랩 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2년차에 접어들어서도 ‘국정원’이 여전히 논란도마에 오른 채 ‘정치블랙홀’로 민생·경제 등 시급한 현안을 재차 뒷전에 제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개연이다. 여야 간 ‘정쟁’의 메인테마를 차지하면서 또 ‘자신들만의 리그’를 펼칠 조짐인 탓이다.
또 현 논란의 중심에서 국정원 문제가 워낙 크게 부각되면서 검찰이 다소 비켜서 있으나 역시 간과될 수 없다. 해당 사건 관련 검사들이 모두 무혐의 처분되면서 ‘제 식구 감싸기’ 인상을 짙게 풍긴 탓이다. 현 국정원 사태로 검찰개혁문제가 묘하게 희석되고 있는 것 역시 우려점이다.
심히 걱정되는 건 우리사회 ‘신뢰’ 기반의 붕괴다. 다양한 객체로 구성된 한 사회공동체의 중심을 견인하는 건 바로 ‘상호신뢰’다. 최고위 정무공무원인 대통령은 물론 국정원 등 정부기관과 여야 모두 국민들로부터 일정기간 권력을 위임받은 대의정치의 객체상징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법 위반 및 국기문란 사안이 불거져도 해당 객체들이 서로 대충 감싸 덮고 넘어가는 무대가 연출되면서 법의 공정성 및 객관성이 훼손되는 상황에 다다른 양태이다. 이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뒤틀린 법정서가 이젠 ‘유권무죄 무권유죄’로 까지 확산 전이되는 형국이다.
권력을 단기 위임받은 객체들이 오히려 권력주체인 국민들을 호도하는 ‘주객의 전도’ 그 단편적 무대가 작금의 대한민국에 팽배한 형국이 다름 아니다. 지난 정치인 시절 핵심이미지로 청와대 입성견인차였던 동시에 현 지지율의 중심기반인 ‘신뢰·원칙’이 모토인 박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생각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번에 대국민사과를 하면서도 남 원장에 대해선 ‘경고’만 했다. 현 정부 내 남 원장 ‘위상’을 새삼 보게 한 단초다. 한데 이번 사건은 사뭇 엄중하다. 국정원이 외국공문서까지 조작해 법원을 농락했다. 더욱이 중국정부가 지난 2월 문서조작사실을 통보한 후에도 거짓 해명으로 일관한 건 변명여지가 없는 국기문란행위인 탓이다.
정보·수사기관의 신뢰성과 특히 대공수사에 엄청난 타격을 준 사안의 성격상 남 원장의 지휘책임을 묻는 건 상식이다. 물론 남 원장의 직접개입 여부는 드러나진 않았다. 그러나 관련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 조직 장악력에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남 원장 스스로도 대국민사과에서 일말의 인정을 묻힌 부분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번에도 남 원장에 재차 ‘면죄부’를 준 이면엔 남 원장에 대한 남다른 무게감이 깔린 듯하다. 사실상 박 대통령 보좌의 상징적 양 날개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남 원장이 꼽히는 데 청와대나 여권 내부에서 조차 별 이견이 없다. 남 원장은 현 정부 안보라인의 핵심 축이다.
지난 2007년부터 박 대통령의 안보분야 특보를 지내며 두터운 인연을 맺어온 것 역시 한 몫을 한다. 확고한 안보태세를 기반으로 통일담론을 구사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남 원장의 교체는 치명타가 될 개연성도 있다. ‘남재준=박근혜 정권 안보 마지노선’이란 평이 나오는 탓이다.
현 국면에서 박 대통령의 딜레마도 엿 보인다. 남 원장을 대체할 마뜩한 이를 찾기 어려운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남 원장 경질은 곧 안보라인의 상당한 개편을 의미한다. 현 긴박한 남북관계 속에서 안보라인의 일시적 공백은 박 대통령으로선 부담이 크다.
현 정부 및 박 대통령 자신에 대한 중간평가성격을 띤 6·4지방선거가 목전인 상황도 부담이다. 남 원장 경질 시 후속인사·인사청문회 등에 따른 악재에 휘말릴 여지를 생각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남 원장의 거취여부는 핵심선거쟁점이 될 부담도 있다. 반면 보수지지층 결집을 위해 남 원장 ‘유임’ 쪽이 유리하단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남 원장·국정원이 줄곧 여야 대치정국의 핵심매개로 자리하는 자체가 박 대통령과 여권의 부담가중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 후 ‘정치실종·불통’ 논란에 휩싸인 채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차 ‘남재준 유임’에 나선 박 대통령의 딜레마가 악화일로의 여론 속에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우선해야할 건 정권동행자인 ‘남재준’이 아닌 주인인 ‘국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