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그 무엇?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한다.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 무엇을 위한 묵상•••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의 치열한 수집미술 정신을 탐색해본다. 세계의 자물쇠를 수집, 쇳대 박물관을 걸립한 최 관장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 무엇의 하나를 성취해낸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 ▲ 최홍규 쇳대박물관 관장.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외관.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외관.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지붕.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마당. ©브레이크뉴스 |
서울 종로구 낙산성곽길 1길 26. 행정구역상 종로구 이화동은 한때 도시의 후미진 저개발 골목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여러 박물관 또는 아름다운 카페로 거듭난 현장이다. 버려졌던 쇳대를 모아 만든 ‘쇳대(자물통)박물관’은 과거의 자물통들(쇳대)을 감상할 수 있다. 잠그고 여는 비밀의 공간이다. 박물관 카페인 ‘개뿔’에서는 커피-각종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이화동 정상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시내 중심부가 모두 보인다. 광화문-청와대도 아주 가까이 보인다. 지난 5월2일 쇳대박물관 일대를 찾았다. 알기 쉽게, 이곳을 방문했던 권한수씨가 블로그에 올린 쇳대박물관을 소개하는 글을 인용한다.
![]() ▲쇳대박물관 소장품.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소장품.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소장품.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안쪽.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담벼락. ©브레이크뉴스 |
그는 이곳을 방문하고 나서 썼던 글에서 “서울 한양도성 낙산 성곽길 안쪽에 자리한 이화동은 벽화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과거 봉제공장의 정취가 남아있던 이화동 낙산길 일대 좁은 골목길에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관광지로 유명세를 탔다”면서 “1950년대 대한주택영단(한국토지주택공사 전신)이 국민주택단지로 건립한 147가구 규모의 연립주택단지다. 60년정도 된 낡은 주택을 개조한 찻집, 이스라떼로 더위를 식히며 찻집의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리는데 역시나 철제 조형물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몇 채의 주택이 서로 철제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이곳의 역사와 눈에 보이는 풍광을 그대로 소개한, 좋은 글이다.
5월2일, 방문하던 날, 앞치마 두른 최홍규 쇳대박물관 관장을 만났다. 최 관장과 인사를 나누며, 권한수씨가 쓴, 최 관장에 관한 글을 읽어나갔다. 인용한다.
“<최가철물점>의 철물디자이너 이며 불과 얼마 전까지 동숭동에서 쇳대박물관을 운영하던 최홍규 관장이다. 그는 동네의 일반 철물점과 달리 '퀄리티 ' '희소성' '소장가치'가 있는 예술품을 만드는 금속공예 예술가이다. 강남에서 잘 나가는 ‘최가철물점’ 대표였던 최 관장은 자신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박물관 자리를 알아보던 과정에서 이화동과 인연을 맺었다. 쇠를 다루던 장인인 그가 어떻게 동네를 만드는 장인이 됐을까. 그는 ‘박물관인’으로서의 사명을 든다. 철물을 만들다 보니 더 공부하고 싶어서 철물을 모으게 됐고, 옛것의 가치에 눈뜨다 보니 이화동이 보석처럼 보이더란다. 최가철물점이 그의 인생 1막이었다면 쇳대박물관은 인생 2막, 이화동 마을박물관은 인생 3막이다. 그는 이 골목 안에 다양한 박물관과 갤러리, 카페를 운영하며 마을 살리기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제법 긴 시간동안 자신의 이상과 지난 10년간 이 마을을 조성하게 된 과정들을 들려 주었고 일반인들이 잘 들여다 보지 않는 공간과 현재 상시 공개는 하지 않는 공간까지 쇳대를 가져다 잠긴 문을 열며 안내해 주었다.”
![]() ▲쇳대박물관 소장품.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소장품.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소장품. ©브레이크뉴스 |
필자도 위의 글을 쓴 이가 이 글에서 안내받은 것처럼, 최 관장으로부터 자상하게 안내를 받았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만 살다가 훤한 동굴 밖을 바라보게 된 느낌이었다.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운,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카페의 내부는 온통 아름다움-비밀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다.
최 관장의 과거 이력 보면, 철 사랑으로 축약된다. 그는 1957년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에서 나고 자랐다. 1975년 을지로에 있는 철물점에 취직,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철의 세계를 어느 정도 파악했던 그는 지난 1989년에 서울 논현동에 ‘최가철물점’을 냈다. 그는 그 때부터 세계를 다니며 쇳대(자물쇠)를 모았다. 당시 그가 모은 쇳대는 3.000여점에 달했다. 그 소장품으로 지난 2003년,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쇳대박물관을 건립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일본 등 해외 전시회도 성공시켰다.
서울신문은 그의 전시-수상 이력에 대해 “2000년 예맥화랑 초대전, 2008년 일본 도쿄 민예관 초대전, 2009년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초대전, 2010년 오사카 한국문화원 초대전,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참가, 2011년 9월 미국 와이오밍주립대학 미술관 초대전 등. 2012년 10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 ▲쇳대박물관 소장품.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전시실.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전시실. ©브레이크뉴스 |
그는 화려한 대학로를 떠나 한때 폐허처럼 보였던 '이화동'에 들어와 쇳대박물관-카페를 완성, 오늘에 이른다.
최 관장은 쇳대박물관의 이곳저곳을 관람시켜 줬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하게 만든다. 버려져, 없어졌음직한 과거의 상품-제품들이 최 관장의 미적감각을 거치면서, 거듭 태어났다.
최 관장은 “이곳에 들어와 개발을 시작한 지 15년쯤 됐다“고 소개했다. 박물관-카페 곳곳이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쇳대박물관-카페 '개뿔'을 둘러보면서, 한 인간(최홍규)의 뛰어난 미(美)에 대한 잠들지 않는 사랑,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이디어가 각기 다른 자물쇠라는 상품을 모으기 위해 집요한 발품을 팔았던 긴 인내(忍耐), 저 개발된 산꼭대기 마을에 올라와 산꼭대기에 박물관-카페를 차려 방문자들에게 서울시내의 웅장한 조망권을 선사할 수 있는 탁월한 안목(眼目)이 존경스러워 졌다.
![]() ▲쇳대박물관 앞뜰.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계단.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 마당. ©브레이크뉴스 |
현대. ‘쇳대’와 ‘개뿔’은 없음의 상징이 되었다. 현대사회의 자물쇠란 비밀번호-홍채인식으로 변환됐다. 과거의 쇳대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시중엔 아예 없어졌다. 소뿔을 있어도 ‘개뿔’은 아예 없는 존재이다. 최 관장은 ‘없음’에서 ‘있음’을 찾아냈다. 없음의 존재를 언제든 ‘있음’의 존재로 볼 수 있게 한 '쇳대발물관'과 공론의 장(場)인 '개뿔 카페'를 만들어 낸 사람이다.
최홍규 관장, 필자의 눈에는 그가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문화선지자 처럼 보였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의 쇳대박물관과 아름다운 카페들은 “대한민국 문화강국”의 한 모델로서의 자격에 손색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 무엇, 그 무엇, 그 무엇을 위한, 필자의 묵상과 탐색의 취재는•••계속된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 ▲쇳대박물관 정원. ©브레이크뉴스 |
![]() ▲담장이가 차지한 쇳대박물관 지붕. ©브레이크뉴스 |
![]() ▲ 최홍규-쇳대박물관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은 낙산성 정상 인근에 위치해 있다. ©브레이크뉴스 |
![]() ▲쇳대박물관에서 내려다 본 서울 시내. ©브레이크뉴스 |
![]() ▲낙산성. ©브레이크뉴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