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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독립운동가 김종백 선생을 추모한다"

항일운동을 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것을 추모

박관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8/11/12 [01:12]
                                                            
필자는 독립운동가의 후예로서 일제시대에 종조부와 재당숙이 독립운동을 한 점에 대하여 남다른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종조부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재당숙의 판결문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판결문을 찾게 된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결국은 잊혀진 독립운동가 두명을 발굴하여 금년 3.1절에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된 바 있다.
 
그 이후 또 다른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얼마전에 보훈처에 정식으로 신청서를 제출하여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심정으로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바로 본고에 소개하고자 하는 조선민족해방협동당(朝鮮民族解放協動黨)의 당수로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광복을 불과 몇달 앞두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김종백 선생의 자료를 정리하여 보훈처에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사실 원래 김종백 선생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사건에 연루된 독립운동가를 통하여 그 애절한 사연을 접하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얼마전부터 본격적인 추적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필자가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김종백 선생의 행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14년에 출생하였으며,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명치대학으로 유학을 갔으며,  대동아 학원에서 서기 겸 강사로 활동하고 있던 중, 1943년 여름에 뜻있는 동지들과 규합을 하여 일본에서 조선민족해방협동당(朝鮮民族解放協動黨)을 조직하게 된다.
 
그 이후 조직의 확대를 꾀하게 되면서 국내로 근거지를 옮기게 되며, 포천 백운동에 본부를 두고 이어서 전국적으로 조직을 확장하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급습에 의하여 1944년 12월 포천 백운동에서 당수인 김종백 선생을 비롯한 60명이 체포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그 이후 일제의 잔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국 서대문 형무소에서 그 이듬해인 1945년 4월에 광복을 불과 4개월여 남겨두고 장렬한 순국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국내의 관련 기관에 자문을 구하여도 김종백 선생의 인적사항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914년생이라는 것은 매우 신빙성이 큰데, 고향이 어디인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이 파악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심문조서가 발견이 된다면 이러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판단되는데, 현재까지는 발견이 안되고 있다
 
올해가 2008년이니, 어느 덧 선생이 순국한지 63주년이 지났건만, 거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끝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제에 저항하다가 그 젊은 나이인 32세에 순국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으며, 모든 정성을 다해서 관련 자료를 발굴하여 어쩌면 구천에서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 김종백 선생의 천추의 한을 풀어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박관우 북핵칼럼니스트 / pgu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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