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사랑하면 분노와 불화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

라즈니쉬와 송현 시인과 가상대화(23)

송현(시인. 본지 주필) | 기사입력 2009/04/16 [16:29]
▲ 송현(시인.본지 주필)    © 브레이크뉴스
송현: 선생님, 반갑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반갑다.
송현: 오늘은 사랑과 불화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라즈니쉬: 얼마 전에 한 여인이 내게 와서 말했다. “저는 어떤 남자와 십년 동안이나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결코 불화를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그가 저를 떠났습니다.” 이 여자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한 번도 다투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깊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게 문제다. 

송현: 그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발상이다. 이 여인에게는 철저한 논리가 있다. 그녀는 “우리는 십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불화를 일으키지 않았다..우리는 서로 다투지도 않았다”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우리 사이에는 아무 것도 다툴 것이 없었을 정도로 그토록 사랑이 깊었다. 우리는 결코 한 순간도 불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가 갑자기 떠나고 말다니."라고 생각한다.

송현: 선생님, 사랑이 깊다면 불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바로 그점이다. 만약에 사랑이 깊었다면 그때에는 거기에 불화가 꼭 있기 마련이다. 때때로 그대는 부부 싸움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부부싸움으로 사랑이 금 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만야 사랑이 거기에 있다면 사랑은 투쟁으로 하여 풍요로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사랑이 거기에 없다면 그때 그대는 투쟁을 단념하고 별거를 하게 된다. 십년이란 긴 세월이다. 24 시간조차 하나의 마음의 상태를 유지해도 너무나도 길다. 

송현: 왜 그렇습니까, 선생님.
라즈니쉬: 왜냐면 마음은 그 반대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때때로 그대는 화도 난다. 정말로 그대가 사랑하기에 화를 낸다. 그리고 때때로 그대는 증오하기도 한다. 때때로 그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대는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 싶어 한다. 바로 이 양면성을 지닌 것이 그대이다. 그래서 만약 그대가 결코 십년 동안이나 불화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는 거기에 사랑이 조금도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사랑에 아무 연고관계도 없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대는 어떤 노여움이나 투쟁 그리고 사소한 다툼 같은 것이 전체의 사랑을 깨트려 버릴까 몹시 두려워하였다. 

송현: 선생님, 너무나 두려워하기에 불화를 일으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그대는 결코 사랑이 순간적인 불화보다 깊다는 것을, 그리고 다툼이 있은 후에 서로 서로의 품속으로 더욱 더 깊이 들어간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대는 결코 불화 속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대가 싸우지 않고 쥐여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남자가가 떠나갔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러고도 그대의 남편이 그대와 10년이나 함께 살았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하고 말해주었다.

송현: 그 여자가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던가요?
라즈니쉬: 글쎄다. 표정이 멍한 것으로 보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송현: 선생님, 남자의 경우도 다를 바가 없겠습니다.
라즈니쉬: 당근.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갑자기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제 자식이 무언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십년 동안이나 그 아이를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항상 복종적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와 같이 좋은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 아이는 결코 나에게 불복종하지도 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아이가 갑자기 히피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 아이가 제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마치 남처럼 바라봅니다. 그 아이가 이제 와서는 저를 이방인 취급합니다. 그러나 지난 이십년 동안 그 아이는 저를 잘 따랐습니다. 선생님, 제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송현: 그 애 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선생님.
라즈니쉬: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 당연히 예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면 만약 아들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그는 또한 아버지를 거역한다. 그렇지 않고는 아들이 다른 누구를 거역하겠는가? 만약 아들이 아버지를 진정으로사랑하고 신뢰한다면 그는 또한 아버지를 떠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면 그는 그가 아버지에게 불복함으로써 혈연관계가 깨어지지 않는 깊이 있는 것임을 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 혈연관계는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항상 반대는 풍요롭다. 반대는 반대가 아니다. 반대는 하나의 주기성이다. 그대는 복종하기도 거역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주기이다. 단조로와 지루해지다가 죽어버리게 된다. 단조로움은 죽음의 본성이다. 

송현: 왜냐면 죽음에는 반대가 없기 때문인가요?
라즈니쉬: 그래. 죽음에는 반대가 없다. 삶은 살아 생동하는 것이다. 거기에 반대가 하나의 주기성이 있는 것이다. 그대는 운동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그대는 떠나기도 하고 도착하기도 한다. 그대는 또한 따르기도 하고 거역하기도 한다. 그대는 사랑하다가 증오한다. 바로 이것이 논리가 아닌 삶이다. 논리는 만약 그대가 사랑한다면 미워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만약 그대가 논리적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증오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대가 이와 갈이 논리적인 방식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증오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대가 이와 같이 논리적인 방식으로 사랑한다면, 그대는 단조로운 방법으로 고정된 위치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 그대는 긴장한다. 그렇다면 휴식이 불가능하다. 

송현: 선생님, 논리는 일직선상의 현상을 믿기 때문에 그런가요?
라즈니쉬: 하나의 직선 안에서 그대는 움직이는 것이다. 삶은 순환을 믿는다. 똑 같은 선이 오르락 내리락 하여 하나의 원이 된다. 그대는 중국의 음양환을 보았어야 한다.
송현: 봤습니다. 선생님.
라즈니쉬: 다행이다. 그것은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음양환 속에서는 반대되는 것이 만나고 있다. 음양환은 반은 하얗고 반은 검다. 거기에 하양 속에는 검은 모퉁이가 있고 검정 속에는 하얀 모퉁이가 있다. 하양은 까망으로 움직여 들어가고 까망은 하양 속으로 들어간다. 

송현: 선생님, 하나의 고리란 겁니까?
라즈니쉬: 그래, 이는 하나의 환(고리)이다. 여성이 남성 속으로 들어가고, 남성이 여성 속으로 움직여 들어간다. 바로 이것이 삶이다. 따라서 만약 그대가 잠시 동안 관찰하여 본다면 음양환 속에 그대가 들어 있음을 이해할 것이다. 남자는 24시간동안 남자가 아니다. 남자는 24시간동안 남성이 될 수 없다. 때때로 그는 여자인 것이다. 여자도 하루 종일 여성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여자 또한 때때로 남성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반대로 운동한다. 여자가 화를 낼 때 그녀는 이미 여성이 아니다. 왜냐면 그녀의 남성의 성질은 순결하여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성의 숨겨진 성질을 사용할 때의 그 강렬함이란 어떤 남자도 이에 필적하여 맞설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여러 해 동안 사용하지 않고 버려두었단 땅의 흙과 같다. 그리하려 그대가 그 흙에 씨를 뿌리면 대풍작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송현: 선생님, 그러면 여자도 때때로 남성이 된다는 의미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그러나 여자가 남성이 되었을 때에는 그 어떤 남자도 그녀와 필적하여 맞설 수 없다. 그때 그녀는 매우 위험하다. 그때에는 차라리 남자가 굴복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게 한다. 그들은 공처가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남자가 여성으로 변하기 시작하지 않으면 거기에서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두개의 단검이 마주하고 있으면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여자가 남성이 되면 만약 그녀가 배역을 바꾼다면 즉시로 남자는 여성이 된다. 이제 모든 것이 재정립되는 것이다. 다시 원은 완벽해진다. 따라서 남자가 유순하게 복종 할 때마다 그 복종은 어떤 여자도 필적하여 맞설 수 없을 정도의 순수성을 지닌다. 왜냐면 평상시에 남자는 그런 복종의 자세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그는 투쟁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평상시에 그는 굴복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굴복할 때마다 그 어떤 여자와도 바꿀 수 없는 순수성이 있다. 

송현: 선생님,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꼭 어린아이 같아지는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군요.
라즈니쉬: 그래. 삶은 바로 이렇게 운동한다. 따라서 만약 그대가 이를 깨우친다면 그때 그대는 전혀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대는 그대의 사랑하는 이가 떠너갔다 해도 곧 돌아올 것을 안다. 사랑하는 이가 화를 냈지만 그녀는 곧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인내심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대로 하여금 어떤 인내심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왜냐면 만약 사랑하는 이가 떠나갔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상 그대의 사랑하는 이가 일직선선상의 여행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는 원이 아니라 직선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원의 한 순환을 믿는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직선을 믿는다. 

송현: 선생님, 서양의 마음은 선형이고 동양의 마음은 원형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군요.
라즈니쉬: 그래.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에서는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 해도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이미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벌써 후회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녀는 틀림없이 돌아오고 있다. 늦든 이르든 그녀는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라. 왜냐면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의 그 반대쪽이 거기에 항상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가 화를 내고 다시 돌아올 때마다 사랑도 다시금 신선해진다. 이제 사랑은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다. 분노의 틈으로 하여 과거가 파괴되었다. 이제 그녀는 어린 처녀로 되돌아갔다. 다시금 그녀는 사랑에 빠진다.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다. 

송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는 아무 것에도 반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라즈니쉬: 그러면 더 풍요롭게 될 것이다. 그대는 분노나 불화조차 삶의 여기 저기에서 아름다운 색상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삶을 풍요롭게 돕는다. 그때는 그대는 삶을 받아들인다. 보다 깊은 인내심으로 그대는 삶을 받아들인다. 그때 거기에 아무런 강박관념이나 허둥대며 서둘 것이 없다. 그때 그대는 기도하며 기다릴 수 있으며 희망찬 꿈도 꿀 수 있다. 그러나 삶이 아리스토텔레스나 버트란트 럿셀 같은 의미라면 그때 삶은 조급해진다. 아무도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대는 항상 두려움으로 떨어야 한다. 그때 그대는 모든 사실을 은폐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대는 한 여자의 곁에서 십년 또는 열 번의 생 동안 체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체류는 한 사람의 이방인으로서이다. 

송현: 서로 억제 할 경우는 어찌 됩니까, 선생님.
라즈니쉬: 그대는 그대 자신을 억제하고 그녀는 그녀 자신을 억제한다면 거기에 만남이란 없다. 삶은 논리가 아니다. 논리는 단지 하나의 부분일 뿐이다. 물론 논리는 아주 명확하게 범위를 선정하며 구분한다. 그러나 삶은 뒤죽박죽이다. 그러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삶은 그토록 엉망진창이다. 그것은 명확하게 범위를 선정할 수도 없고 구분지을 수도 없다. 

송현: 삶은 하나의 혼돈이라서 그런 겁니까?
라즈니쉬: 그대, 말 잘했다. 혼돈이다. 논리는 죽은 것이고, 삶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리의 일관성을 택하든 삶을 택하든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아무 모순도 없는 일관성에만 치우친 다면 그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왜냐면 일관성이란 반대쪽을 완전하게 배격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대는 사랑하고 오직 사랑만 한다. 따라서 오직 복종하고 복종만 한다. 그대는 결코 거역하거나 반발하거나 떠나 갈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것에서 생기를 잃고 또한 모든 관계가 해독이 된다. 그때에는 복종이 모두를 죽이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송현: 감사합니다. 선생님.(www.songhyun.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