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가 칠십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노인이 있었다. 왜냐면 완벽한 아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아직도 여자를 찾아 헤매고 있나, 자네 언제쯤이나 자리를 잡을 건가?” ”나는 아직도 완벽한 아내를 찾지 못했어” “아니, 여보게, 칩십 년 동안이나 헤맸으면 됐지.이제 죽을날이 멀지 않았는데 언제까지 찾아 헤맬텐가. 그러지 말고 이제 자리 잡게나!” 그는 말했다. “난들 어떻게 해. 완벽한 아내가 없이는 행복해질 수가 없을 게 뻔한데.” 친구가 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찾아 헤맸는데 완벽한 여자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나?” “아니야 꼭 한 번 있었어.” 그러자 친구가 물었다. “그러면 왜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어?” 그러자 칠십 넘은 노인은 매우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매우 어려웠어. 그 여자 역시 완벽한 남편을 찾고 있었지 뭐야.” 2.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존재 자체가 수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그래서 삶이란 실수 혹은 실패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에 있는 국보급 도자기는 수많은 실패작 끝에 피어난 꽃이다. 몇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서 시인은 수많은 파지를 버리면서 고뇌한다. 명의도 마찬가지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날부터 명의가 될 수 없다. 수많은 실수 즉 오진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후회하고, 반성하고 노력하고 신중하게 하는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어 마침내 명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실수 즉 오진 등을 하지 않고는 진정한 명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재판관도 마찬가지이다. 실수 즉, 오판을 통해서 고뇌하고, 후회하면서 다음 판결을 더 신중하게 내릴 것이다. 3. 나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학교는 부산으로 유학을 갔다. 중학교 1학년 때 난생 처음으로 목욕탕에 갔다. 처음 가는 곳이라 무척 어리둥절하였다. 같이 간 동네 형이 하는 대로 따라 하면서도 시종 불안하였다. 온탕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도 모르게 오줌이 나오고 말았다. 누가 눈치 채지 않나 싶어 불안했다. 그러나 모른 체 하고 시침을 뚝 따고 있었다. 끝내 아무에게도 들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기분이 찜찜하였다. 탕 안에서 오줌을 눈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날 것이라는 짐작은 되었지만, 나도 몰래 탕 안에서 오줌을 누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내가 나중에 고등학교 국어선생 노릇을 할 때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 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혹시 나처럼 온탕 안에서 오줌을 누는 실수를 한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손들어 보려므나.” 그러자 학생들은 하나 둘 손을 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모두 다 손을 들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네 이놈들! 나야 그때 시골 촌놈이라 난생 처음 목욕탕에 가서 그런 실수를 하였지만, 서울특별시에 사는 너희들이 목욕 온탕 안에서 오줌을 누다니! 이 나쁜 놈들!” 교실 안은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다. 다만 그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과 감추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4. 호수에서 노를 젓는 사람은 유능한 어부가 될 수 없다. 유능한 어부가 되려면 바다에서 노를 저어야 한다. 파도와 싸워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삼킬 듯한 파도와 폭풍과 싸우기도 해야 한다. 그런 투쟁에서 살아 남아야 강한 어부가 될 수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잘 발전할 수 없다.실수가 없다면 성공이 있을 수 없다. 성공과 실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의 눈에 있는 티는 잘도 보면서 제 눈에 있는 대들보는 못 본다. 이게 인간의 본성 중의 일면이다. 특히 실력 없는 치들이 상사가 되면 이런 형이 되기 쉽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부하의 실수에 대해서는 냉혹하고 잔인하게 처리한다. 시쳇말로 골 때리는 상사이다. 물론 이런 형의 부하도 골 때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실수 하지 않는 사람은 아예 일을 않았거나,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교묘히 뒤집어 씌웠거나, 아니면 교묘하게 변명을 했거나,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대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수하지 않는 사람을 보려면 망우리 공동묘지로 가 보아라! 거기 공동묘지에 누워 있는 시체들은 실수 하지 않는다. 죽은 자는 실수 하지 않는다. 그대가 실수 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일을 하였다는 증거이다. 실수 한다는 것은 성공으로 한발 한발 다가간다는 증거이다. 실수를 통하지 않고는 성공으로 절대로 갈 수 없다. 실수를 통하지 않은 성공은 오래가지 못하고 또 무너지기 쉽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자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않겠다는 사람과 같다. 아무리 구데기가 끓어도 장을 담궈 먹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이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란다고 실수를 밥 먹듯이 해서는 곤란하다.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고, 실수를 거울삼아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특히 직장에서 상사는 부하 직원의 실수를 관대하게 처리할 때 부하직원은 마음껏 자기 능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것이다. 만약 실수에 관대하지 않으면 부하직원은 좀처럼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모험에 따르는 위험 부담 때문에 안일한 쪽을 택하고 말 것이다. 상사가 부하 직원의 실수에 관대하지 않은 집단에서는 창의력을 기대할 수 없고,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한가지 강조할 것은 실수한 사람보다 실수를 감추는 사람이 더 나쁘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실수를 감추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가 한다는 사실이다. 실수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할 줄 모르는 비겁함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가장 실수를 많이 한 사람이 일도 가장 많이 하였다는 증거이다. 가장 실수를 적게 한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거나 무사안일하게 일을 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실수를 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실수를 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은 무사안일하게 일하는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발전은 무사안일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실수를 통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공으로 향해 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러니 그대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서 열심이 밀어부쳐야 한다. 실수하는 사람이 더 발전 가능성이 많고, 인간적이다. 실수 하지 않는 사람은 길게 보면 절대로 발전하지 않는다. 특히 젊은 날의 실수는 좋은 공부가 된다.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래서 완벽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은 상사 밑에는 위선자와 무사안일한 사람들이 득실거릴 가능성이 높다. 칠십이 넘어 까지 완벽한 여자를 찾아 헤매는 한심한 할아버지는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www.songhyu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