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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대학 후배가 내 공부방으로 찾와왔다.결혼 한지 삼년 쯤 되었다 싶어 이렇게 물었다.
" 요즘 한창 깨가 쏟아지겠구나! "
" 말씀 마십시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을 걸 그랬어요."
나는 뜻밖의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연애 할 때는 서로 죽고 못살던 사이 아니었나? "
" ........."
그는 대답을 않고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에 어두운 그늘이 잠시 스쳤다. 한참 동안 나도 뭐라고 말을 붙이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다른 불편은 얼마든지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감수 할 수 없는 것이 딱 한가지 있습니다."
" 그게 뭔데?"
" 제 어머니 문제입니다. 선배님 아시다피시피, 제가 2대 독자 아닙니까.어머니에게 제가 어떤 존재입니까.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며느리 또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겠습니까. 그 동안 어머니께서 서울 저희 집에 몇번 오셨는데, 울지 않고 돌아 가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오늘도 어머니께서 다시는 네놈의 집에 오나 봐라! 하고 울면서 시골로 내려 가셨어요.어머니가 우리 집에 와 계시는 며칠 동안 저는 그야말로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온통 신경이 집에 가 있어요. 혹시 지금 어머니와 와이프와 싸우지 않나 하고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제 와이프가 조금만 양보를 를 하면 좋겠는데,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따지고 대드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 아시다시피 저희 어머니는 시골에서 자랐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분 아닙니까.그런데 제 와이프는 대학에서 가정과까지 나온 여자 아닙니까! 많이 배운 것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여자는 학벌도 외모도 사 용없고, 첫째는 품성이고 둘째는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시골에서 콩밭 매던 여자와 결혼할 걸 하고 후회가 막심해요.어머니니 생각만 하면 당장 이혼을 하고 싶지만 벌써 얽히고 설킨게 많아서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군요. 정말이지, 내 와이프가 그렇게 가슴이 매마르고 품성이 좋지 않은 여자인줄 알았더라면 하늘이 두쪽이 나도 그녀와 결혼하지 않는 건데 말입니다.연애할 땐 그야 말로 눈이 삔다는 말이 명언이더군요.선배님, 이제 와서 어쩌면 좋겠습니까? 당장 이혼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제 애새끼까지 있으니, 이거 참 빼도 박도 못하고 고민입니다. 선배님, 오늘 쏘주나 한 잔 사주십시오."
그는 그동 안 속에 쌓였던 것을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었다가, 때마침 임자 만났다는듯이 술술 풀어내는데, 듣고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내 처지도 그와 비슷한 대목이 적지 않아, 우리는 죽이 맞아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면서 아내를 성토하고, 가슴이 식은 수많은 며느리들을 성토하였다.
한 번은 이런 소송이 법정에서 있었다. 판사까지도 놀랐던 것이, 법정에 선 두 남자는 아주 막역한 친구로 도시 전체에 소문이 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서로 때리고 머리를 부딪쳐 피가 흐르기까지 하였다. 판사는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당신들은 이 도시에서 우정의 상징으로 여겨져 오지 않았습니까?"
두 사람은 부끄러워하며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마침내 한 남자가 말했다.
"우리는 그때 해변가에 앉아 있었는데,내가 이 친구에게, 나는 물소 한마리를 사고 싶다 고 말했습니다."
그가 물소를 실제로 산 것이 아니었다. 사고싶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는 아름다운 땅을 사서 농사를 지을 거야. 그렇게 되면 너의 물소가 내 땅으로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거야. 우리의 우정은 우정이지만, 너의 물소가 내 곡식들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그놈을 당장 총으로 쏘아 죽여 버릴 거야."
이야기가 이렇게 되자, 처음에 이야기를 꺼낸 친구가 소리쳤다.
"뭐야? 내 물소를 죽여 버리겠다구? 어디 한 번 해보자! "
그는 모래 사장에 손가락으로 금을 그어 작은 땅을 표시한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 이것이 네가 농사 짓는 땅이다."
다른 친구가 말했다.
"좋아. 이제 네 물소가 그곳으로 들어오게 해봐."
금을 그은 친구가 역시 같은 손가락으로 모래밭에 금을 그으면서 말했다.
"내 물소가 지금 너의 밭으로 들어가고 있다. 자, 네 맘대로 해봐! 내 물소 건드리기만 해봐!"
이 지경에 이르자 그들은 물소와 밭따위는 잊어버리고 서로 엉겨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로 치고 박기 시작했으며, 결국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나는 물소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이 바보 녀석도 밭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서로의 우정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어리석음까지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할말이 없습니다.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판사가 말했다.
"좋습니다. 실제의 문제에서 생겨난 것이든 상상의 문제에서 생겨난 것이든 모든 싸움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구실로도 당신들이 싸웠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구실로도 싸움은 성립 될 수 있습니다. "
그렇다,고부 사이의 갈등이나 다툼도 이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내 말 들으면 어머니가 잘못한 것 같고, 어머니 말 들으면 아내가 잘못한 것 같을 때가 많다.제 3자가 보면 정말 사소한 일들이지만,서로의 견해차이로, 가치관의 차이로, 생활 습관의 차이로, 자란 환경의 차이 때문에 갈등과 다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의 근본은 어디서 풀어야 할까?
어떤 이는 핵가족제도의 측면에서, 어떤 이는 산업 자본주의 시대와 이기주의적 측면에서, 어떤이는 경로효친 사상의 붕괴에서, 진단하고,그 대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그 나름의 설득력과 타당성이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진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부 갈등의 근본 문제를 책임이냐, 의무냐하는 것으로 압축해서 살표보고자 한다.
2.책임이냐, 의무이냐
어느 마을에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따금 손자에게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했다. 그는 자기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이면 아무나에게 다리를 좀 주물러 달라고 하였다. 어느 날 손자에게 말했다.
" 내 다리를 좀 주물러 주지 않겠니?"
손자가 대답했다.
"네."
손자는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그런데 손자는 어떤 때는 상냥하게 네 하고 대답하고 어떤 때는 싫어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싫어요 라고하는 날에는 할아버지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왜, 무슨 일이 있니? 너는 곧잘 내 다리를 주물러 주지 않았니? 내 다리를 너만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가끔 싫다고 대답하니?"
손자가 대답했다.
"내가 싫다고 대답할 때는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이예요. 그리고 그것이 책임일 때 나는 기꺼이 주물러 드려요. "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 둘이 어떻게 다르니? "
" 그것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어요. 내가 사랑을 느낄 때, 할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싶을 때,나는 기꺼이 그렇게 해요.그건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리 주물러드리는 것이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라고 느낄 때--즉 할아버지가 주물러 달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고 느낄 때--아이들이 밖에서 놀며 나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여기에 없어요.....그때 나는 할아버지 곁에 있지 않아요. 그것은 의무라고 생각해요.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이따금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실 때 어떤 때는 싫다고 말하고, 어떤 때는 기분 좋게 주물러 드리기도 하는 거예요."
이 글에서는 이땅의 며느리들과 예비 며느리들에게 감히 부탁한다.
그대는 책임과 의무 중에서 그대는 어느 한 쪽에 똑바로 서야 한다. 가능하면, 책임 쪽에 서기 바란다. 의무에는 책임감이 없다! 의무는 일종의 사회적 관습이고, 공식에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의무는 외향적이고, 타인지향적이다. 그러나 책임은 의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책임은 관심에서 나오며, 보살핌에서 나오며,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의무가 차가운 머리의 영역이라면 책임은 따스한 가슴의 영역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극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고부갈등을 일으키는 일차적인 책임은 며느리쪽에 있다고 본다.왜냐면, 그런 며느리의 공통적인 사고 방식은 서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이다! 시부무님 모시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는 한 고분 갈등은 끝이 없고,이 갈등은 마침내 서로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는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우리 주위에 많이 배우고 지적으로 보이는 여자들일수록 시부모 모시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들은 시부모님 모시는 것을 단순히 의무로 생각하기 때문에 차가운 가슴으로 시부모를 대하는 것이다. 의무가 머리쪽이라면 책임은 가슴쪽이다.머리는 계산하는 것이 우선한다.
이런 여자들일수록 머린로 계산하는 것이 뛰어나기 때문에 남에게 욕 먹지 않을만치, 외형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그래서 이런 여자들 말을 들어보면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모두 시어른들 잘못이다. 논리로나 분석으로나 말로나 늙은이들이 이런 여자들을 당할 제간이 없다.이런 며느리들이 아무리 진수성찬과 용돈을 풍족하게 바쳐도 시어머니는 바늘 방석에 앉아서 모래를 씹는 기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며느리들은 시어른 대하는 것을 의무 방어전으로 생각한다. 의무로 하는 행위에는 사랑이 묻어나오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가슴에 가닿을 수가 없다. 시어머니가 그리운 것은 진수성찬도 아니고, 비단 옷이 아니라, 며느리따뜻한 가슴으로 끓인 된장국이고, 며느니의 사랑의 손길로 기운 양말 한켤레이다!
3.파고다 공원에 가 보아라
나는 이땅의 며느리들이 이따금 파고다 공원에 견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연인들이 결혼 하기 전에서 반드시 파고다 공원에서 자주 테이트를 하고, 결혼한 뒤라도 자주 거기서 데이트를 해야 한다.내가 파고다 공원을 추천하는 이유는 역사 공부하라는 게 아니다.파고다 공원을 가보면, 넓게는 늙은이들 좁게는 시부모님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거기 가면 할아버지들 우글우글 한다.(거기라도 나올 처지도 못되는 할머니들 사정은 더 비참할 것이다.)자세히 보면 참으로 불쌍한 할아버지들이 많다. 늙은 개처럼 비참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자기 친정 아버지와 친정 어머니를 상상할 일이다.여기 오는 할아버지들 중에는 의외로 며느리 때문에 집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온종일 여기 와서 해가 질때까지 앉아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하는 이가 많다.
며느리들이 그금만 양보를 하고,조금만 이해해 주고, 불쌍하게 생각하고, 조금만 인간적으로 굴면, 저 불쌍한 노인네들 중에는 온종일 늙은 개처럼 파고다 공원에 쓸쓸히 비참하게 앉아 있지 앉아도 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기 친정 아버지 어머니 생각을 해서라도 시부모님에게 인간적으로 불쌍하게 생각하고 잘 대해야 할 것이다.(이 대목에서는 물론 시부모들은 며느리를 자기 딸자식 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날 후배가 술에 취해서 이런 말을 했다.
" 선배님! 시보무님을 잘 모시는 여자들에게는 나라에서 매달 용돈도 듬뿍 주고, 아파트 청약 순위도 영 순위를 주고, 음악회나 미술 전람회, 박물관의 입장료로 절반으로 할인해 주고,항공 철도 요금도 할인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www.songhy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