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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낙엽이 떨어진다”는 따위의 글은 사양한다.“
낙엽이 떨어지고, 촛불을 켜고 기도 운운하는 따위의 글은 게나 고동이나 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 뭐뮈 하자!” “뭐뭐 해야 한다”는 훈화조 내지는 설교조의 글도 사양한다.
이런 글도 어중이 떠중이 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나 고동이나 다 쓸 수 있는 글을 굳이 잡지에 실을 이야가 없다. 뿐 아니라 실어서도 안된다.
나는 그 광고를 보고는 그 동안 우리나라에 발표된 많은 글들이 “낙엽이 떨어진다” 류의 소녀적 감상을 적은 글과 「뭐뭐 하자」는 「뭐뭐하면 안 된다」는 훈화조 혹은 설교조의 글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뒤부터 낙엽 떨어진다는 소녀적 감상의 글이나 「뭐뭐하자」 혹은 「뭐뭐하지 말자」는 훈화 내지는 설교조의 글은 쓰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2.
남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정직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그 말을 해야 하고, 그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그 글을 써야 한다.
군중 앞에서 “나라를 사랑하자”는 말을 유관순 누나가 하면 말이 되고, 아주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나라를 사랑하자”는 말을 이완용이가 하면 말이 되지 않고, 설득력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듣는 사람 열 받게 할 것이다.
똑 같은 의미의 말인데도, 유 관순 누나가 하면 박수가 터져 나올 것이고, 이 완용이가 하면 돌맹이가 날아갈 것이다. 말에 동원된 단어도 꼭 같고, 문법적 구조도 꼭 같은 말인데, 왜 이렇게 상반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것은 말이나 글은 도나 개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할 자격과 그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3.
이런 면에서 말과 글은 수표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수표는 아무나 발행할 수도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 수표는 은행 자기 계좌에 잔고가 있는 사람이라야 할 수 있다. 잔고도 없는 놈이 수표를 발행하면 그게 부도수표가 되고, 부도 수표를 발행한 놈은 쇠고랑을 채워서 잡아 가두어 벌을 준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잔고가 있다고 해서 수표를 마구 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잔고가 있어도 잔고의 범위 안에서 수표를 끊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잔고가 100만원이 있으면 100만원 안에서 수표를 끊어야 하고, 잔고가 1억원이 있으면 1억원 안에서 수표를 끊어야 한다. 잔고가 100만원 밖에 없으면서 백 만원 이상 끊어도 안 되고, 잔고가 1억 밖에 없으면서 일억 이상 끊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잔고가 한 푼도 없는 놈이 수표를 마구 끊는 것도 사기지만, 잔고가 100만원 밖에 안되는 놈이 천 만원 짜리를 끊어도 역시 사기란 점이다.
4,
말과 글을 쓰는 것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자기의 담보가 있는 범위 안에서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자기 담보 이상의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부도수표가 남발하는 사회는 사기꾼들의 사회이고, 사기꾼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억울하게 피해보는 이들이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통한다. 양화가 앉아 있을 자리에 악화가 버티고 앉아 있고, 양화가 마이크를 잡아야 할 순간에 악화가 마이크를 잡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금융통화 질서와 경제 질서를 근본에서 파괴시키는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자는 법에 따라 엄하게 다스려야 하듯이, 말과 글도 그래야 한다. 수표를 받기 전에 은행에 조회를 해야 하듯이, 말과 글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부도 수표를 마구 발행하는 놈도 나쁘지만, 그것이 부도수표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덥석 받는 쪽도 문제가 있다. 수표를 받기 전에 은행에 전화를 해서 부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한다.
이처럼 말을 들을 때나 글을 읽을 때도 그 말할 자격이 있는 인간이 말하는 것인지, 그 글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 쓴 글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듣는 이나 독자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말을 듣고 글을 읽는다면 「악화가 양화를 몰아낼」 것이다. 이런 과정을 독자에게만 맡기는 것은 무리가 많다. 이런 기능을 전문적으로 맡아야할 쪽이 비평가들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잔고 한 푼도 없는 놈이 부도 수표를 남발하면 무슨 법 위반으로 잡아 가두는데, 말 할 자격도 없는 것이, 글 쓸 자격도 없는 것이 글을 마구 써도, 누구 하나 꾸짖지도 않고 잡아 가서 벌금을 내게 하거나 구류를 살게 하지 않으니, 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불량식품을 만들거나 파는 것도 단속하는데, 말과 글을 함부로 하고, 할 자격도 쓸 자격도 없는 것들이 마구 하는 것은 왜 단속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니나라는 삶의 담보는 쥐뿔도 없는 것들이 게나 고동이나 여기 저기 글을 마구 써서 발표하고 책을 찍어내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말을 마구 해대는 문화사기꾼들이 너무 많아, 한마디로 문화사기꾼들의 천군이라고 할 수 있다.
5.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글짓기 교육의 가장 큰 잘못은 글을 쓸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글을 쓸 자격도 없는 것들이 책임지지도 못하고 또 담보도 없는 글들을 마구 써 갈긴 것이다. 이는 일생동안 저축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는 늙은 거지가 「저축의 필요성과 노후의 행복」이란 주제로 설교하고 논문 쓰는 것이나 다름없는 웃기는 짓이다.
지금까지 글쓰는 어른들이 이 모양이었고, 학교 글짓기 교육이 이 모양이었으니, 아이들도 이런 잘못된 것을 보고 배웠으니, 커서 어른이 되어서 삶과 동떨어진 담보도 없는 글이나, 낙엽이 떨어진다는 식의 말장난 하는 엉터리 글을 마구 써 갈기는 것이다. 남 앞에서 말을 하고 글을 쓸려면 말과 글에 대한 담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오덕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과 운동을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전개하여, 그 동안 적지 않은 열매를 맺은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자는 운동을 하는 이들은 기본부터 제대로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말과 글로 떠들고 외쳐야 설득력이 없으니, 시끄럽기만 하고, 종이 값만 올리는 꼴이 되고 말지 싶다.
이상적인 말과 글은 삶과 일치해야 한다. 글 속에 진실한 삶이 묻어 있어야 한다. 삶과 괴리된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삶과 괴리된 글은 거짓된 글이다. 삶과 괴리된 글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그 글 속에 담긴 내용과 자기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글 속에 담긴 내용과 자기의 삶과는 동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경우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이는 거짓스런 글이요, 거짓스런 말이다.
6.
“..하자!” 따위의 훈화적 말을 하고, 설교적 글을 쓰는 사람보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하는 사람이 더 많아야 한다.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일상 생활에서 실천하고 그 범위 안에서 정직하게 말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하자!”형의 글보다, “ 나는 뭐뭐를 이렇게 했다.”형의 글이 대우 받는 세상이 되어야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가 "낙엽이 떨어진다"류의 글과 "..하자" "..햐야 한다"류의 글들이 판을 치게 된 책임의 일부는 독자들에게 있다. 독자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짝퉁이 판을 치는 원인 중에는 소비자가 진품과 짝퉁을 구별할 안목이 없는데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는 것과 같다.
짝퉁을 몰아내려면 진품과 짝퉁을 구별하는 안목 있는 소비자가 늘어나야 한다. 이처럼 이 땅의 독자들이 담보 있는 글과 담보 없는 글을 쓰는 필자와 담보 없는 글로 책을 찍는 출판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출판사의 안목도 높아져야 한다. 담보 있는 글과 담보 없는 글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도, 담보 없는 글을 쓰는 필자와 담보 있는 글을 쓰는 필자를 고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담보 없는 글을 찍어서 돈만 많이 벌겠다는 상혼이 뿌리 깊게 깔려 있는 한 이 땅은 문화 사기꾼들의 천국은 계속 될 것이다.(www.songhy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