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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상 서랍 안에는 별의별 잡동사니가 다 들어있다. 그 잡동사니 중에 중요한 것이 두가지 있다.
이 두가지도 남들이 보면 하잘 것 없는 것일텐데, 내게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그 하나가 거울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유서이다. 거울은 나의 외양을 보는데 필요해서 넣어둔 것이고, 유서는 나의 삶의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서 넣어둔 것이다.
아마 내 모르긴 해도 책상서랍에 거울을 넣어둔 사람은 많을 테지만, 자기의 유서를 미리 써 넣어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고, 또 유서를 서랍에 넣어두고 매일 꺼내보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 아다시피 유서란 아무 때나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마감할 때, 딱 한번 쓰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평소에 생각도 않는 것이다. 물론 재산이 많아서 사후에 복잡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유서를 미리 써두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이와는 다르기 때문에 좀 색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거울은 하루에도 몇번씩 본다. 거울을 보면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이빨 사이에 고추가루가 끼었는지, 넥타이가 비뚤어졌는지 따위를 금새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네 삶에서 보잘 것 없는 거울이 매우 요긴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도 거울을 보고, 욕실에서 보고, 화장실에서도 보고, 어떤 이는 손거울을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 꺼내도 본다. 그런데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세계는 사물의 외형이나 현상의 세계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본질이나 내면의 세계는 거울을 통해서는 결코 볼수가 없다. 본질이나 내면의 세계를 보는데는 사람에 따라서 그의 정도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나는 평소에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혹은 내면을 닦기 위해서 별의별 궁리를 다 해보았다.
내가 교직을 떠나서 공병우 한글 기계화 연구소에 부소장으로 간 뒤, 마침내 공병우 타자기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되어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처 장관과 타자기 글자판 문제로 한창 싸움을 할 때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때 나는 뜻밖에 유서를 생각한 것이다. 좋다! 유서를 미리 써 두고, 매일 이를 꺼내보면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고, 내 삶이 흐트러지지 않게 귀하고 아픈 채찍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 유서를 미리 써야지!
나의 가족의 삶이 그 다음에는 내 회사의 수십명 직원의 생계가 내 손끝에, 내 두 어깨에 달려 있었고, 한글 기계화 글자판 싸움에서 나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하루도
마음이 홀가분한 날이 없었다. 거기다가 나는 그때 박정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움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박과 위협 속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유서를 몰래 꺼내 볼 경우는 대부분 다음과 같은 경우였다. 주로 내 마음이 약해졌을 때, 내가 안일해졌다고 생각될 때, 나에게 주어진 일이 힘겹고, 어렵다고 생각될 때, 내가 지나치게 욕심에 사로 잡혀 있다고 생각될 때는 남몰래 유서를 꺼내놓고 정독하곤 했다.
내가 남몰래 유서를 꺼내놓고 한줄 한줄 정독을 할라치면, 나도 몰래 내 마음이 숙연해지곤 했다. 나는 남몰래 유서를 꺼내 볼 때마다 삶을 숙연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럴라면 신기하게도 나는 새로운 힘이 샘솟는듯하고, 또 아무리 작은 일도 성실하고 진지하게 처리해야지 하는 긍적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추스리곤 했다. 그리고 유서를 꺼내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새로운 용기가 솟아났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무렵에 나는 은행의 당좌거래를 트고, 어음과 당좌수표를 끊으면서 사업을 했다. 어음이나 당좌를 끊을 때는 경리부서 책임자의 자금 수급 보고를 참고하고, 수금될 돈을 염두에 두고 적절하게 조절하지만, 막상 그 계획들이 이쪽 뜻대로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받을 돈은 하루 이틀 심지어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늦어지는 것이 예사인데, 내가 끊어놓은 당좌나 어음은 하루도 어김없이 제날짜에 돌아오니, 이거 정말 사람의 피를 말리는 일과 같았다. 나는 사장실에 혼자 앉아서 매일 매일 어음이 돌아오는 것만 생각하면 당장 다 팽게치고 어디론지 달아나고
싶은 생각이 들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게 말이 쉽지 정작은 그럴 수가 도저히 없었다. 한창 다급할 때는 어디 돈 많은 과부에게 일주일에 몇번이나 한달에 몇번이나 수청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하고 몇억원이나 받고 몸이라도 팔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다급하고 절실한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살면서 내가 터득한 것이 유서일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신기하고도 유서를 눈앞에 놓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럴수 없이 마음이 편안해 진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삶이 끝난다고 가정하면, 우리네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정작 중요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충 구분하는 판단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아둥바둥하던 것도, 조금 전까지 마음이 상했던 것도 유서를 펴 놓고 생각하면 부질없는 티끌이 되기도 하고, 그 전에 부질없는 티끌로 보였던 것이 엄청나게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는 묘한 경험을 나는 수없이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나처럼 용기가 없고, 의지가 약한 사람일수록 유서를 미리 써 놓고 서랍에 넣어두고, 이따금 한번 꺼내보면서 스스로를 다짐하고 추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www.songhy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