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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신탁(神託)은 핵무기 완전 폐기하는 것”

김동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1/11 [11:37]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시인은 시로 말한다. 기자는 사회적인 문제점을 서로 간의 소통을 통해 사회적 평화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고 시인은 아름다운 질서의 세계인 절대선을 노래한다. 여기 정청광 시인(사진)의 절대 선의 세계를 들어보고자 한다. 시인의 자기구현! 시민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세계 시민이 한 형제라는 절창을 들어보고자 한다. 본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하는 정청광 시인과 2010년 신년 초대석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 대담은 지난 1월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됐다.

-히로시마 콤플렉스 (우리들의 시대에 신탁은 가능한가?) 제목에 대한 의미를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히로시마의 원폭은 핵무기에 의한 인류의 종말이 닥쳐오고 있음을 이성적으로 예감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나 칸트에서 시작된 대륙의 이성론자들이 자유 평등의 철학적 신앙도 히로시마에서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역사 철학 모든 인문과학을 동원해도 “히로시마 사건에 무엇이 가능하다”는 논리적 견해보다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직관으로 말하는 시인의 세계를 그리다 보니 오랜 세월을 숙고해야 했습니다. 신탁은 하나의 정답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시대에 신탁’ 그것은 핵무기를 완전 폐기하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탁의 의미는 자유의 소멸입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행동의 제약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영웅에 의한 역사 발전을 들었다. 나이로 보아 히로시마 사건을 경험한 일본인으로 영웅찬가를 쓴 그녀와 일본에 침탈당한 한국인 정 시인이 한 살(44년생)이 되던 해에 일어났는데 히로시마 사건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다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나 역시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지루한 장편 역사 소설입이다. 그녀는 영웅들의 머리에 왕관을 바치고 있지만 나는 영웅들의 이마에 먹물로 죄인의 낙인을 새기고자 합니다. 일본인은 두 번(임진왜란과 만주사변) 대륙의 정복을 꿈꾸었지만 한국인은 남의 나라를 침입해 본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한 자랑스런 민족의 아들인 나는 20세기를 혁명과 전쟁이란 광란의 세기로 규정지었습니다. 중세를 암흑시대라 사가들은 평하나 20세기가 암흑만도 못한 광란의 시대였습니다. 히로시마 사건을 인류적 경험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핵무기 제거에 인류적 운동을 전개했어야 했습니다.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배는 떠나고>에 대하여 한 말씀 한다면.

▲철학적 신앙, 즉 ‘진리는 하나’를 믿던 그리스 철학의 전통은 히로시마에서 끝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철학 역사학 문학 모두 끝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기독교 문명은 공허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자기확신도 없이 니체에 의해 신의 죽음을 선언한 짜라투스라 조로아스터 사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영생의 만찬을 차리게 하고 초대 손님으로 무루쇠(이방인) 아큐(아큐정전) 장발장(레미제라불) 구산스님(송광사 방장) 등 여러 손님들에게 만찬을 들게 하였습니다. 만찬을 들려는 순간 도스토옙스키 원작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에 나오는 대심문관이 만찬장을 포위하며 “인간의 자유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하늘에 양식은 극소수의 것이지 일반인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너희들은 만찬을 할 수 없다. 그때 서구 제국의 시조이며 문명을 시작한 아아네이 아스가 나타나 신 로마(아메리카)에서 어떠한 만찬도 차릴 수 있다고 선언하며 전쟁을 하였습니다. 양 진영이 샌프란시스코 상공에서 접전을 하는데 송광사 방장인 구산선사가 죽장을 던져 양 진영이 눈을 뜨지 못해 전쟁은 끝나고 배는 금문교를 통과해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배가 떠나는 데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서시에서 말한 대로입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들, 외로움에 목마르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으로 평화를 이루며 마음이 가난하여 슬퍼하는 사람들을 긍휼하게 살피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계를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세워보지도 않고서 떠나는 배를 향해 멈추어라! 멈추어라! 멈추어라! 이성론자들의 통곡 섞인 목소리도 듣지 않고 아니다! 아니다! 가면 아니 된다! 시인의 간곡한 절창도 거절하고 배는 개선문을 통과하여 떠나고 있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배는 단테의 서사시 <신곡>에서 트로이에서 출발한 로마의 문이며 신 로마인 아메리카의 문인 금문교를 통과 떠나는 배는 인류의 끝없는 방황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시대 즉 20세기를 건너 21세기에 도착한 우리는 철인 시대를 마감하고 시인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이성론자들의 주관하에 시공개념을 둠으로써 신의 죽음을 예고했고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와의 대화를 시도한 것이 배는 떠나는 데 에 대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가능하다”와 “해야 한다”의 차이에 대하여 말한다면.

▲가능하다는 철학에서 논리의 정답 외에 이율배반성을 인정하는 반면, 해야 한다는 자유의지가 소멸된 시학의 세계로 정답은 하나이며 차선책이 없다는 데서 비극이기도 한 것입니다. 히로시마 콤플렉스에 대처하는 정답은 하나 즉 핵무기의 완전 폐기라는 하나의 정답입니다. 하나의 정답 그것이 신탁이기도 합니다.

-산문시에 대하여 정의한다면.

▲산문시는 수필과 같다고 할 수 있으나 수필은 논픽션이고 산문시는 픽션입니다. 2권에 금문교 별곡(20곡)에서 문명비판을, 소노마 정담(25곡)에서 인디안의 비가를, 그랜드개니언(20곡)에서 시간개념에 대한 회의를, 911공화국(30곡)에서 예수의 재림을 노래했습니다. 911공화국은 유다교 원리주의 폐쇄성과 부시대통령의 재임 2년(2002~2004)간 군사적 평화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 재림을 통한 화해를 노래했습니다. 산문시 역시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문학 장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문학의 정점은 시·소설·수필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문학이 학문으로 존립하자면 다 함께 행복이라는 윤리적인 바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산문시는 문학의 한 장르로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논문집 중에 합일론(유가의 칸트적 변명)에 대하여 말한다면.

▲합일론은 제가 군대 제대 말년(1968년·24세)에 김신조 일당이 서울에 침입 제대가 4개월 늦어지자 유가의 이기론적 시공개념을 칸트의 시공개념으로 엮어낸 논문으로 광합성 혁명을 주장했습니다. 햇빛이 비치면 기계운동이 가능한 세계를 광합성 혁명 시대라 명했습니다.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유가의 반성문입니다. 반성은 자기혁신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래적인 충격을 소화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시를 의식적으로 쓰기 전에 썼으니까 시의 저변에 깔린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샌프란시스코 문학은 샌프란시스코 시민 정신의 구현이어야 합니다. 향수적인 문학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샌프란시스코 시민으로서, 또한 한국인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생의 재발견이어야 합니다. 나는 여기에다 굳건하고 높은 성을 쌓아보고 싶었습니다. 한국문학이 시도해보지 못한 것들을 서사시를 통한 세계시민이 한 형제라는 윤리성의 구현과 산문시를 통한 철학적 논리성의 허구를 타파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와 배를 한꺼번에 만드는 것을 보고 한국 시문학이 정립하지 못한 시가 어떻게 학문으로 정립할 수 있는지 서사시 산문시 계관시도 쓰고 시론도 정립해보자 그런 꿈을 꾸었고, 이 제 그 꿈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꿈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고 꿈이 있었기에 남의 눈치를 살피거나 남의 뒤에서 서성거리지도 않았습니다. 나를 외롭지 않게 보듬어준 이웃사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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