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훌륭한 정원사였던 선사(禪師)가 있었다.선사의 정원은 너무나 유명했다. 왕도 그 정원을 탐낼 정도였다. 왕은 그 선사를 불러서 꽃과 정원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보고 싶었다. 하루는 왕이 신하를 선사에게 보내어 이렇게 말을 전했다.
“오늘 당신은 나를 만나러 와야 한다.”
그 신하는 돌아와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선사의 정원을 보고 경탄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꽃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선사의 정원에 있는 꽃은 수만송이도 더 되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가 너무나 아름다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그곳에 가셔서 그 광경을 직접 보셔야 합니다.”
왕이 직접 가난한 선사의 절에 가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왕은 훨씬 큰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원은 수만평이나 되었고, 정원사도 수백명이 넘었다. 그러나 그 신하는 이렇게 보고했던 것이다.
“그것은 다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직접 가서 그 정원을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내일 아침에 그곳으로 가겠다고 신하를 시켜 선사에게 전갈을 급히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왕은 선사의 절로 찾아갔다. 왕은 장군들과 왕비와 왕자들을 데리고 거기에 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 절에 모여 들었다. 왕은 주위를 둘러 보며 이렇게 말했다.
“수만 송이의 꽃이 있다더니, 왜 정원에는 한 송이 나팔꽃 밖에는 볼 수가 없구나.(주:일본사람들은 나팔꽃을 특히 좋아한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러자 선사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수만송이의 꽃이 었었지만 어젯밤 우리는 그 꽃들을 모두 치웠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만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꽃 한 송이는 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꽃이 많으면 당신과 당신 일행들은 이것을 놓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꽃들은 모두 치워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 꽃 한송이만을 남겨 두었습니다.”
왕은 약간 슬퍼졌다. 그는 말했다.
“그것은 너무 외롭게 보인다.”
선사가 말했다.
“그것은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홀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2.
많은 사람들은 홀로 있으면 외롭다고 생각한다. 외로움 때문에 친구를 사귀고, 이웃을 사귀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으로 간다. 심지어 외로움 때문에 교회나 절간에 가는 사람도 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쓸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말할 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같이 놀아 줄 동무가 필요한 것이다.혼자 있으면 외로울 뿐 아니라 심심하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회만 있으면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작은 핑계만 있으면 밖으로 나가려 한다. 밖으로 나가 별 하릴 없이도 돌아다니는 것이다. 별 볼일도 없는데 여기저기 기웃기웃 빈동빈둥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낮의 고급 레스토랑의 주고객이 되고, 이런 사람이 백화점 매장을 비좁게 하는 인력이 되고, 이런 사람들이 대낮에 서울 근교의 러브 호텔을 메우는데 큰몫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차를 몰고 돌아다니면 교통 체증을 가중시키는데도 한 몫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사람들은 더 많이 나돌아다닐 것이고, 여기저기 기웃기웃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친구를 사귀고, 쇼핑을 하고, 러브 호텔에 가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왜냐면 근본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근본이 잘못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외로움에서 벗어날려고 발악을 하고, 외로움을 잊어보려고 발광을 해도 다 그 순간 뿐이고,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3.
어떻게 하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앞의 이야기에 나오는 선사가 “홀로 존재해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홀로 있는 대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그 하나가 자기 내면의 중심에 도달한 상태에서 홀로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내면의 중심에 도달하지 못하고 홀로 있는 것이다. 내면의 중심에 도달한 사람은 텅빈 충만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내면의 중심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냥 텅빈 상태에 있는 것이다.
내면의 중심에 도달한 사람들은 홀로 있는 것이 조금도 외롭지가 않다. 왜냐면 홀로 있음은 모자라거나 텅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완전한 충만, 가득참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중심에 있으면서 홀로 있는 것은 가득찰 뿐 아니라 심지어 흘러넘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의 중심에 가 닿지 못한 사람은 삶의 본질과 자기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의 외형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물리적인 것 가시적인 것 밖에는 보지 않고 또 그런 것 외에는 별 관심도 없다. 이런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봉우리 높이 보다 더 깊은 내면의 세계가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다이아몬드 보다 더 귀한 아니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손에 쥐어줘도 모른다.이런 사람은 일생동안 외롭게 아둥바둥 추악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끝으로 한가지 덧붙여 둘 것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상태,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경지는 일이 너무 많거나 바빠서 외롭지 않은 것과 혼동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일이 바빠 외롭지 않다거나 너무 많은 사람은 일벌레일 가능성이 많다. 적어도 일벌레 따위의 인간이라면 이 고급스런 논의에 오를 가치도 없다. 삶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를 캐는데 ,일벌레 따위는 끼일 자격이 조금도 없다! 일벌레는 애초에 태어나길 잘못 태어난 사람이다.차라리 일개미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일개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법한 사람이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
“그것은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홀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되어야 한다.이것이 바로 내가 이 글을 통해서 그대에게 던지는 화두이다.(www.songhy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