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전에 무슨 텔리비젼 방송의 인생 상담 프로에 나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내 삶도 갈팡질팡하는 구석이 적지 않은데, 남의 인생 살이를 놓고 콩이야 팥이야, 감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게 아무래도 쑥스럽고 마음에 내키지 않는데요.저를 불러주신 것은 고맙지만 사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쪽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 프로에 나오셔서 송 선생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해 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못 이긴척 하고 나가마고 대답하고, 몇 번 나가게 되었다. 한 주일 뒤에 그 프로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사십대 주부가 나와서 얼굴을 가리고 사연을 풀어놓았다. 나는 방송 전에 그녀의 사연을 대충 구성 작가로 부터 들었다. <남편은 딴 여자가 생겨서 반년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시누이들이 여럿 있는데, 시누이들이 집단 폭행을 하고, 시어머니는 구박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고......>
줄거리를 듣고 나니 내 마음도 심란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보였다. 간단한 방법은 서로 헤어지는 것같았다. 그래서 내가 담당 pd에게 말했다. “이 사람의 경우 무슨 묘안이 없어보이는데요. 이혼 하는 길 말고 무슨 딴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그러니 간단하게 이혼하라고 하면 안 됩니까?” “그건 마지막 카드 아닙니까. 생방송에서 대뜸 이혼하라고 하시지 말고 긍정적으로 풀어나가보라고 잘 조언해 주십시오. 오늘 나온 주부는 그래도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면 혹시 위로를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무슨 좋은 방안이 없을까 하는 기대로 나왔는데, 대뜸 이혼하라고 하면 뭐가 됩니까.”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얼굴을 가린 주부의 사연을 듣고난 뒤 나와 정신과 전문의는 나름대로의 조언을 한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는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대부분의 문제가 저쪽에 있는 것 같은데, 왜 이쪽이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정신과 치료를 아무리 받아도 문제 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방송 끝 무렵에 진행자가 주부에게 “오늘 여기 나와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니 다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라고 묻자,“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정도면 방송은 무난하게 끝이 난 셈이지만 나는 마음이 찜찜했다. 솔직한 정답쪽으로 조언을 하지 못하고 방송용 모범답안에 가깝게 조언하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이 끝나고 나면 보통 출연자들과 전문가 그리고 제작진들이 구내 휴게실에 들러 둘러 앉아, 방송에서 다 못한 이야기, 아쉬운 점 등을 털어놓으면서 차를 한잔 마시고 헤어진다. 그날도 차를 마셨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 주부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아까는 차마 말하지 못하였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혼을 하시거나, 그럴 처지가 아니면, 외로울 때나 속상할 때 차도 한잔 마시면서 속엣말 털어놓을 수 있는 남자 친구라도 한명 사귀면서 좀 즐겁고 편하게 사시는 게 좋을 같습니다.” 그녀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듯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송선생님! 이게 바로 정답입니다! 정답! 아까는 방송이라서 저도 속엣말을 다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 지금 말씀이 정답입니다. 저도 이제 편하게 살아야 겠어요! 선생님 지금 하신 그 말씀이 제 마음에 쏙 들어와요!”
나는 피장 파장이란 말이 생각났다. 그녀도 방송에서는 모범적으로 말했고, 나도 방송에서 모범답안을 말했던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도 정답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나는 정답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대부분 경우 정답을 원하지 않고 모범답안을 원하고 있다. 지지난 핸가 무슨 라디오 생방송에 <송현칼럼>을 개설한 적이 있는데, 네 번 하고는 짤리고 말았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아마 내가 모범답을 말하지 않고 주로 정답을 말했기 때문이지 싶다.
우리네 삶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모범답안이 아니라 정답이다. 우리는 두 가지 답안을 가지고 살고 있다.두 가지 답안이란 두 가지 얼굴을 말한다. 대외용 답안과 대내용 답안이 서로 다른 것이다. 이러고 보니 우리 사회는 이중 구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두개의 얼굴로 서로 다른 두개의 답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부부가 살았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런대로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몇 해 가지 않아서 삐꺽삐걱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왜, 요즘에는 예전에 제게 구애할 때처럼 사랑해주지 않으세요?” 남편이 대답했다. “여보 지나간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그때는 당신도 나도 서로 유혹하느라 정신이 없었잖소. 지금 나는 그때 당신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소.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지 통 모르겠소. ” 아내가 말했다. “저도 당신에게 한 말을 모두 잊었어요.” 남편이 말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좀 솔직해 집시다!”
그렇다! 이제 우리 좀 솔직해져야 한다. 인생의 정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솔직해야 한다. 솔직하지 않고는 절대로 정답을 찾을 수가 없다. 모범답안으로 사는 삶과 정답으로 사는 삶 중에 그대는 선택해야 한다. (www.s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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