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時)’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배우 윤정희가 열연한 영화의 주인공 미자는 시를 배우고, 시를 쓰고, 시를 느낀다. 영화의 첫 시작은 물에 떠내려가는 여학생의 시체에 글자 시(時)가 쓰여지는 장면이다. 이창동 감독은 “아시다시피 이제 시(時)가 죽어가는 시대이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시 같은 건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고 읽는 사람도 있다.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관객들에게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가해자 혹은 피해자들은 오히려 죄의식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바라보는 입장인 ‘미자’의 가슴에는 참을 수 없는 응어리가 맺힌다. 66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속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미자’는 시를 통해 세상에 대한 외침을 강행한다. 영화처럼 현대 사회인들은 자신들이 잃고 있는 것인 진정 무엇인지, 그것이 아픔인지 슬픔인지 알지도 못하는 시대를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 아픔을 오롯이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시인이다. 시란 현대사회에서 유일하게 아픈 것을 위로하고, 진정 사람답게 행복하게 사는 길을 항상 묻고 있다. 그런 시를 보내지 못하고 떠돌았던 젊은 시인 신기섭이 있다.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었고 그의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들을 묶어놓은’ 첫 시집 ‘분홍색 흐느낌’도 5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눈이 크던 이 시인을 잊었을까. 시가 잊혀지는 세상에서 다시 한 번 그의 시와 그를 말한다.
신기섭 시인은 1979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을 다 보내고, 서울예술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시를 배워 문인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나무도마’가 당선돼 등단했다. 하지만 그 후 1년이 채 안 되어 그는 학교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북 영천의 만불사라는 절에 안치됐다.
시인으로 살았던 짧은 생애
“밥을 지어 먹고 앉았다가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옥상에 흰 눈이 쌓이고 있다. 눈이 많이 온다는데 새벽에 출장, 영천行-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운…옥상에 쌓이는 눈은 나 아니면 아무도 밟아줄 사람이 없는데. 그런 장소를 가지고 있는 내 생활이 좋다. 다녀와서 발자국 몇 개 꼭 남기리라. 옥상에 눈이 많이 쌓이고 있다.”
2005년 12월4일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신기섭 시인의 미니홈피에 올라온 글이다. 결국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고 마지막 길을 떠나고 말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그의 나이 겨우 만 스물여섯이었다. 신춘문예 등단이 공무원 합격과 같다는 할머니께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더니 그 때문일까, 너무 빨리 할머니 곁으로 가버렸다.
신 시인은 광산으로 화려했던 과거는 지나가고 이제는 ‘모두 돈을 내고 옛날을 구경하며 살아가고/살아가는 문경’에서 1979년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엄마이자 할머니였고, 할아버지는 폭력적인 아이였다. 그 사이에서 자란 시인은 할머니에게 소처럼 큰 눈으로 울기만 하는 아이였다. 세월이 흐르고 울기만 했던 아이는 어느덧 할머니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자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할아버지를 보낸 후 신춘문예 당선 몇 개월 전 할머니를 잃고 말았다. 시인은 할머니를 잃고 시를 썼고, 상처의 내막을 다 들여다본 몇 달 후 신춘문예에 등단할 수 있었다. ‘미친 듯이 기쁜’ 날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이 채 마르기도 전에 자신도 할머니를 따라 갔다.
그를 알던 지인들은 그가 가난했던 자신의 생을 한 번도 탓한 적이 없다고 한다. 도리어 자신들을 위로하고 항상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대했던 그를 기억한다. 그는 가난에 대해 시에서 ‘가난에 미치는 것은 사랑에 미치는 일과 같아,/ 언제나 가장 행복한 기억만을 쾅쾅쾅 두드리네.’라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들 중에 가장 두드러진 시인이었다. 젊은 시인들에 비해 진정성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을 쏟아냈다. 게다가 등단 후 그만큼 많은 시를 문예지에 실은 시인도 드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시에 태작이 없었다는 점이다. 신 시인은 꾸준히 고통과 상처에 대한 시를 썼고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고로 떠난 그는 이제 시의 진정성으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인정한 등단 시인으로서는 1년 남짓한 시간을 살았지만, 그의 삶이 온통 시의 원천지였던 것이다.
첫 시집 ‘분홍색 흐느낌’
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되어 버린 ‘분홍색 흐느낌’은 별다른 부의 구분 없이 모두 53편의 시가 실려 있다. 등단 후 문학동, 창작과 비평, 현대문학 등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시 20여 편과 평소 시집 출간을 염두에 둔 시인 스스로의 습작 및 미발표작들을 묶은 것이다. 편집에는 시인의 은사이었던 문학평론가 신수정, 소설가 윤성희를 비롯해 모교 서울예대의 문우들이 참여했다.
“옥탑에서 겨울을 맞는다.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들을 너무 오래 데리고 살았다. 그것들을 이곳에다 묶어놓는다. 첫 시집, 이 시집을 언제나 곁에 계신 할머니에게 바친다. 미친 듯이 기뻐 보이는, 눈이 내리고 있다. - 겨울 옥탑에서 신기섭
첫 시집 출간을 준비하며 시인이 미리 써놓은 자서다. ‘분홍색 흐느낌’(2006, 문학동네)은 오롯이 그가 ‘언제나 곁에 계신 할머니에게 바친’ 시집이다. 그러나 돌아가신 할머니는 이제 추억으로만 존재한다. 추억의 완성은 표제작 ‘분홍색 흐느낌’ 속에서 이루어진다. 할머니는 시인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으며, 그래서(처음부터 시인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단란한 가정의 유일한 구현자였다.
그가 할머니를 기억하는 것은 시의 전반적인 글에서 모두 살펴 볼 수 있다. 특히 시집의 제목인 ‘분홍색 흐느낌’의 시는 할머니를 잃고 유품을 태우며 할머니를 다시 기억하는 시인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분홍색 외투를 입은 수많은 할머니들이/나의 몸속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이제는 추억이 된 몸속의 흐느낌들이/검은 하늘 가득 분홍새을 죽죽 칠해나간다/ 값싼 외투에 깃들어 있는 석유 냄새처럼/ 비명의 냄새를 풍기는 흐느낌/ 확 질러버리려는 찰나! 나의 몸속으로/다시 돌아와 잠잠하게 잠기는 분홍색 흐느낌/분홍색 외투의 마지막 한 점 분홍이 타들어가고 있다’
하늘 가득 번진 할머니의 분홍색 외투를 마지막으로 여미며, 몸속에서 시작된 흐느낌이 저렇게 하늘에 가득하다. 그분은 마지막 흔적인 ‘한 점 분홍’마저 지상에서 거두어갔으나, 시인은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에서 할머니의 외투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그의 앞에서는 떠났지만, 언제나 그의 마음속에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 시집은 곪은 상처가 이제는 상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 말이 상처가 완전히 와해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등단작 ‘나무도마’에서 ‘그곳은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이라고 말했듯, 상처가 자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권혁웅 시인은 해설에서 그의 시 ‘극락조화( 極樂鳥花)’가 신기섭 시인의 시세계를 집약하는 가장 탁월한 상징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극락조화 시는 친구가 공장 기계에 코를 다친 후 다시 그곳에서 꽃이 피어나는 상상을 쓴 글이다. 해설에서 그것은 꽃이면서 새이고, 제 안에 극락과 상처를 함께 품은 것이라고 했다. 찢긴 얼굴에서 새가 날아올랐고 상처 자국에서 꽃이 자리를 잡았다. 친구의 들린 코끝에서 피가 터져 새가 날아오를 배경이 되었으며, 그 상처가 아물자 새가 날아와 앉아 꽃이 되었다. 고통의 자리 그곳이 바로 극락이었다. 거기에는 정주와 방황, 자유와 구속, 고통과 지복이 함께 있다.
시인은 극락조처럼 할머니의 분홍색 외투가 펼쳐놓은 하늘을 날아갔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꽃으로, 흉터 자국으로 우리에게 남았다. 이 중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극락조화라는 꽃이다. 극락조화는 남아프리카 희망봉이 원산지이며 크게는 2미터까지 자란다. 줄기는 땅 속에 묻혀서 땅 위로 나오지 못하고 뿌리에서 곧장 타원형 잎이 나온다. 잎대 한쪽에 홈이 있으며, 두 장의 꽃잎과 다섯 개의 수술이 돋는다. 한 번에 5~6송이가 피는데, 그 모습이 새가 날개를 편 것과 같다. 그 꽃의 꽃말은 ‘영구불변’곧 ‘불멸’이다.
고통의 품에 안긴 ‘대긍정’
신 시인은 이제 ‘분홍색 흐느낌’이라는 시집으로 우리에게 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영구불변’ 말해주고, 시로써 상처를 감싸주고 있다. 등단작 ‘나무도마’에서 볼 수 있듯 상처가 계속 잇닿으면 상처가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그의 상처를 엿보면서 우리의 상처를 볼 수 있고 위로 받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시에는 눈동자가 있다. 신기섭 시인이 생전에 쓴 시에는 눈동자들이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고 빛난다. 시집을 펼치거나 덮을 때 ‘투명한 발이 달린 눈물들이 기어나온다’. 읽는 사람에게도 통증이 온다. 그러나 그는 모든 상처와 아픔을 황홀하다고 담대하게 말한다. 고통의 품에 오래 안겨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대긍정이 그의 시에 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비와 바람에도 씻기지 않을 언어의 비석이 세상에 남았다.
다음은 신기섭 시인의 은사인 김혜순 시인의 글이다.
기스바! 네 할머니 톤으로 너 불러보자. 노래의 날개를 달고 이 세상에 와서는 이승을 저승처럼 살다가 노래의 나라로, 그 아득한 곳으로 가버렸구나. 네 시와 삶 속에 가득 들어찼던 죽음 버리고, 네가 그리 시 속에서 찾아 헤맸던 죽음 속에 깃든 삶의 나라로 날아가버렸구나. 거기선 기저귀 차고 목침 들어 할머니 얼굴 짓이기던 할아버지,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아버지, 모두 잊어버려라. 네가 이 세상에 혼자 남는 것 안타까워 너 불러가신, ‘엄마라고 부르면 늘 할머니 되던’ 할머니, ‘비명 같은 엄마’ 계시는 그곳에서 재미나게 살거라. 그곳에선 라이터로 변소 줄 태워 할머니께 혼나지 말고, 너 행생 나갔다 늦게 돌아와 할머니 기다리게도 말고, 네가 그리워하는 연인 속에서 글썽한 그 큰 눈으로 웃고 살거라. 노래의 나라에서 그렇게 살거라, 기스바! science1111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