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정했어. 자기랑 헤어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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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5년차 부부의 “우린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이윤기식 담백멜로, 그와 그녀의 3시간 ‘지켜보기
노개런티·롱테이크 서로 향한 신뢰 그대로 묻어나
일상느낌 물씬, 까도남과 cf스타 기대했다간 실망
대형스타 임수정과 현빈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가 베일을 벗었다. 메가폰을 잡은 이윤기 감독은 이번에도 그 특유의 감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두 배우의 색다른 매력을 발현시켰다. 3월3일 개봉.
“나, 나갈 거야.”
“저기…. 나, 나갈 거야. 마음 정했어.” “다시 생각해볼 순 없어?” 어느 날과 다르지 않았던 평범한 하루, 일본으로 출장을 떠나는 아내를 공항으로 데려다 주는 차 안, 그녀가 이별을 고했다. 5년을 함께한 아내는 마치 ‘차가 막히니까 돌아오는 길은 마중 나오지 않아도 좋아’, ‘커피랑 과일 주스 중에 뭐 마실래?’ 같은 대화의 연장선인 것마냥 툭하고 자신의 결정을 전했다. ‘차가 막혀도 데리러 올게. 괜찮아’, ‘달콤한 커피는 즐기지 않지만, 커피로 마실게. 괜찮아’라던 그는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편집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롱테이크로 105분간의 느린 걸음을 시작한다. 출판 기획 일을 하는 결혼 5년차 그녀는 날씨 얘기라도 되는 듯 ‘쿨하게’ 남자가 생겼으니 집에서 나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가 집을 나가기 위해 짐을 싸던 날, 그는 그녀가 아끼던 찻잔과 그릇을 조심스럽게 포장하고 마지막이 될 식사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던 식당을 예약한다.
영화는 늦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후 4시부터 그들의 저녁 식사 예정시간인 7시까지, 3시간 동안의 이야기다. 그들이 함께 살았던 5년의 시간은 두 사람의 대화에서, 그녀가 급하게 때로는 최대한 느릿느릿 해내는 짐 정리 과정 곳곳에 묻어 있다. 비가 들이치는 창문을 닫는 법이 익숙하지 않은 여자, 이번 세탁세제는 별로이니 다음 번에는 다른 것을 사자는 이들의 대화는 어제, 오늘이 그랬듯이 내일도 함께 자고 함께 먹는 일상 속 그것이다.
필름 매체 특유의 역동적인 느낌이나 폭발하는 감정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살짝 빛이 바랜 사진처럼 쓸쓸하면서도 포근한 공기가 스크린을 메우고 있다. 분명 대화가 오가고 있지만 침묵이 계속되는 듯, 정적인 주파수가 이어진다. 한 차례 깜짝 손님의 방문을 제외하고는 대단한 사건도 찾아볼 수 없다. 시종일관 무거운 공기가 스크린은 물론이고 관객까지 모두 한데 묶어 누른다.
감독은 러닝타임 내내 과거 회상을 위한 오버랩도, 주인공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독백도 없이 ‘지켜보기’만을 강요한다.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두 주인공이 어떻게 만나 사랑을 했고 5년간 결혼생활은 어땠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대신 시계추의 움직임에 맞춰 몰입도를 상승시키는 대단한 재주를 부렸다. 거실 소파 위에, 혹은 책장 앞 방석 위에 관객을 앉혀둔다. 관객은 두 주인공의 행동과 서로 간의 대화 속에 깊이 들어가 이들의 현재에서 과거까지 유추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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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리고 그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독특한 구성 못지않게 고집스러운 시선으로 두 남녀를 바라본다. (카메오를 제외하고) 2명의 출연진, 그들의 집이라는 한정된 재료를 가지고 구석의 먼지 하나하나까지 잡아낼 듯 집요하고 세심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극의 중간, 두 사람의 이름이 스쳐가듯 등장하지만, 그뿐이다. 영화 관람 후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현빈과 임수정은 그와 그녀 혹은 그 남자와 그 여자 정도로 기억될 법하다.
영화는 두 남녀의 신상명세서를 과감하게 생략하는 대신 이별을 준비하는 그들의 마지막 3시간을 실시간으로 따라가 작은 숨결까지 모두 담아냈다. 감독은 관객에게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결과물에 비춰볼 때, 감독은 소기 목적 달성에 성공했다. 영화는 ‘아내의 결별선언’이라는 사건과 ‘결혼 생활 5년의 마지막 날’ 배경이 아니라 두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온 신경을 쏟게 한다.
느릿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관객이 두 주인공에 대해 깊숙이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러닝타임 내내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두 사람과 마주 앉아 있던 관객은 마치 극중 그와 그녀를 오랫동안 알았던 지인과 같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 감독은 두 배우의 표정 변화를 넘어 이들의 상황, 살아왔던 집 등을 보여주며 주인공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를 기대했다.
두 캐릭터의 상반된 움직임도 재미있다. 화를 내지 못하는 남자와 그런 그가 답답한 여자의 조합은 이별을 한층 더 무겁고 아련한 문제로 포장했다.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은 남자는 “다시 생각해볼 수는 없겠느냐”는 말을 끝으로 담담하게 그녀를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아내의 말에 화도 한 번 내지 않는다. 지나치게 무덤덤한 이별준비이지만, 그녀를 향한 배려에서는 변함없는 애정이 묻어나는 그는 바라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다른 남자가 생겨 집을 떠나려는 여자는 이상하리만치 당당하게 헤어짐을 고한다. 떠나는 날을 정하고, 짐을 싸고, 새 남자에게로 갈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지만,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못마땅하다. 변함없이 다정다감한 그를 붙잡고 “왜 화를 내지 않느냐”고 벌컥 화를 내는 그녀. 관계를 유지할 수도, 그를 놓아버릴 수도 없는 그녀의 감정이 한순간에 관객들에게로 쏟아져 내린다.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시선은 남자에게 좀더 집중된다. 카메라 앵글과는 무관하게 관객의 시선이 남자를 좇게 된다. 늘 “괜찮다”라고 말하는 그가 차라리 화를 내거나, 울어버리기라도 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의 감정표현은 얕은 한숨이 전부다. 대체 속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감정을 둘러 내비치는 짧은 장면이 ‘꺼이꺼이’ 목 놓아 울거나, 멋지게 폼을 잡고 흘리는 눈물들과는 비할 수 없이 심장을 찌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남의 이별 얘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많은 팬을 보유한 현빈과 임수정이 출연했지만,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원래 이별과정이란 것이 본인들에게는 1분 1초가 수년과 같지만, 남들 눈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법.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최근 극장가의 스펙터클한 재미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윤기 감독은 일본 단편 소설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를 읽고 영화를 기획했다. 이제는 이별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눠볼 때도 됐다 싶어서였다. 이 감독은 “이것은 분명히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영화로 만들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브라운관에서 ‘까도남’으로 여심을 사냥한 현빈이나 눈동자마저도 사랑스러운 임수정을 만나길 기대했다면 허한 가슴을 안고 돌아가게 될 모양새다. 단벌 패션에 헝클어진 머리 등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두 배우의 외관은 긴장이 풀린 휴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울러 전작들에서 확인된 이윤기 감독의 마니아틱한 연출 역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매력적인 엔딩은 호불호가 갈리기 딱 좋게 불친절한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현빈은 “‘시크릿가든’의 주원이를 기대하고 오시면 서운하고 섭섭하실 수 있다. 시간과 마음에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찾아와 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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