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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채저술 “조선왕가 며느리스캔들” 출간

조선왕가 스캔들의 주인공들, 그녀들의 이유 있는 성적위반의 역사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2/02/19 [07:53]
이경채가 저술한 “조선 왕가 며느리 스캔들”이 현문미디어에서 출간됐다. 현대는 누가 뭐래도 여성상위 시대다.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정치는 물론 교육, 사법 영역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짐은 굳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예상도 할 수 없었다.

여성이 집 안에 숨어서 사는 전통 아닌 전통은 조선 왕조 오백 년 역사가 새겨놓은 관습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가부장적 통치이념에 꽁꽁 묶여 삼종지도에 따라 평생을 살았고, 남편이라도 죽을라치면 죽을 때까지 상복을 입고 그 집 귀신으로 죽은 듯 살아가야 했다.
▲ 이경채     ©브레이크뉴스

그러나 몸을 던져 반란의 역사를 쓴 여성들이 있으니,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정사에서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녀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그녀들을 죄인으로 매도한 조선 위정자와 통치 시스템의 허구와 음모을 파헤치고, 그 아래서 위반의 역사를 쓴 그녀들의 이유 있는 핑계를 재구성해 보여준다. 이 책에서 다룬 조선 왕가 여성들의 성 스캔들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왕조 선원록』, 『연려실기술』 등 여러 사료들의 고증을 통해 구성한 이야기다.
 
열녀 만들기 경쟁 속 조선 왕가 여인들의 위험한 삶과 사랑 이야기

자유연애사상이라는 몽골의 성 관념과 풍습에 젖어 있던 사회를 지배해 국가기틀을 잡기 위해 조선의 위정자들이 펼친 유교적 통치이념은 여성을 편파적으로 억압하는 도덕질서였다. 차츰 사림의 사상과 주장이 조선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면서 어려서는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자리를 함께하지 않는다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결혼 후에는 유교적 정절관, 특히 남편이 죽은 이후에도 수절이 강요되었다.

물론 유교적 도덕과 정절을 충실히 지켜서 자타가 인정하는 열녀가 되면 국가 차원의 보상이 뒤따랐다. 그 포상 내용은 집 앞이나 마을 앞에 붉은 문을 세워 열녀를 표창한 정문(旌門)이 대부분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충신․효자․열녀 등의 집 대문 앞에 나라에서 세워주는 붉은 문을 뜻하는 정문(旌門)을 포상했다는 기록이 수없이 나온다. 그러나 연산군 때까지는 열녀에게 내려진 정문은 단순한 집안의 자랑거리에 불과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사대부가를 중심으로 열녀 만들기 경쟁이 벌어지자 부녀자들은 더욱 억압받기 시작했다. 사대부가의 과부가 바람을 피웠더라도 가문 사람들이 은밀히 살해하여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다 자살했다는 식으로 위장해서 열녀문을 하사받는 일까지 심심찮게 발생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열녀문은 유교적 이기주의가 낳은 여성의 차별과 억압의 표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음은 책 속의 주요 내용이다.
 
책 속의 주요 내용        
    
은밀한 만남이 지속되는 사이 세자빈과 내시 이만은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말았다. 급기야 그들은 젊은 혈기와 성적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다. 시비 추월의 도움으로 궁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밀애를 즐겼다. 미래의 국모인 세자빈이 한낱 내시와 무모한 사랑에 빠지게 된 배경은 조신하지 못한 세자빈의 성 관념이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당시 시대상황도 관계가 없지는 않았다.  ―본문 59쪽
 
세자빈 김씨는 얌전한 생김새와 달리 성욕이 매우 강한 여자였다. 그에 반해 세자 향은 몸이 병약한데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고, 여색보다는 학문을 더 좋아했다. 세자빈이 밤마다 적극적으로 덤벼들자 세자는 점차 세자빈을 멀리하게 되었다. 1428년(세종 10년) 겨울, 세자가 아예 발길을 끊어버리자 세자빈은 밤마다 독수공방 신세가 되었다. 구중궁궐에서 오로지 세자만을 바라보고 사는데, 남편마저 외면을 하니 어떻게든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다.    ―본문 118쪽
 
유신들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불교를 탄압하려 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불교를 몰아낼 수 있는 결정적인 소문이 나돌았다. 왕실 종친 부인이 중과 사통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었다.불교를 궁지로 몰아넣을 꼬투리만을 찾던 유신들에게 이 소문은 호재 중의 호재였다. 게다가 소문의 남자 주인공이 요절한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정인사의 주지 설준이었고, 여자 주인공은 세조의 사촌동생인 오성정 이치의 부인 정씨였다.    ―본문 167쪽
 
어우동은 몸종 삼월을 데리고 기생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용모와 뛰어난 춤 솜씨, 그리고 사대부에게도 뒤지지 않는 시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남자들을 사로잡았다. 이 시기에 어우동은 남편 태강수의 6촌인 방산수 이난을 만났다. 이난은 세종의 제1서자인 계양군의 넷째 서자로 어우동에게 반해서 자주 찾아왔다. 어우동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난은 번듯한 집을 마련해주고 생활비도 풍족하게 대주었다. 또 사랑의 징표로 자진해서 팔뚝에 어우동의 이름을 새겼다. 그러나 어우동의 몸은 이미 한 남자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남성 편력을 시작했다. 특히 그녀는 남편 태강수에 대한 보복으로 종친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본문 206쪽
 
얼마나 지났을까?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돌아서 눈을 떴는데, 방 안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술에 취해서 이계창을 배웅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부인이 손님을 잘 배웅했는지 물어보려고 내당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방 안에서 옥금의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문틈으로 가만히 엿보니 아내 옥금과 종친 이계창이 한데 엉켜 있었다. 이귀존은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그들을 당장 요절낼 생각으로 부엌으로 뛰어가서 식칼을 집어 들었다.  ―본문 227-228쪽
 
그러나 유교를 바탕으로 한 의리의 실천이 뿌리내린 조선 중기부터의 열녀문(烈女門)은 가문의 자랑거리이자 고을의 자랑거리로 부상했다. 아울러 나라에서도 전과 달리 열녀로 인정받은 가문에 많은 포상을 내렸다. 이런 상황이 되자 조선 왕실에서도 유학에 반하는 행실을 저지른 왕가 여인들의 일탈된 행위는 실록에서 철저히 감추기 시작했다.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왕가 여인들이 유교의 가르침에 반하는 음행을 저지른 것을 굳이 기록하면 누워서 침 뱉는 겪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음행을 저지른 왕가 여인은 가문 차문에서 조용히 응징했다.  ―본문 247쪽
 
지은이 이경채는?

지은이 이경채는 소설가이며 출판기획자이다. 지은 책으로는 『낮에 뜨는 달』,『김만덕』,『도시의 파랑새』, 『후폭풍』, 『폭력교실』등의 소설과 『치명적 말실수』,『책사와 모사』,『한국인물사전』,『세계인물사전』,『할미꽃이 하늘을 향해 피었어요』,『고양이 밥 주는 할아버지』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또한 『기본형 인간』,『산소는 생명이다』 등을 기획,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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