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김관용 구미시장을 만났다. 자신감 넘치는 경제전문가였다. 중소도시구미를 세계 첨단산업도시 구미로 바꿔놓은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모습에서 300억불 수출 대업은 그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구미의 수출액은 300억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30조원이다. 이는 국내의 흑자 수출액의 76%를 차지하고 있으며 엄청난 국제경쟁력으로 빠르게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구미시는 현재 730만평 구미공단을 r&db 기능을 갖춘 첨단과학기술공단으로 조성, 새로운 혁신첨단산업거점을 구축하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구미시는 젊음이 넘치는 도시다.
김 시장은 지방분권과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지난해 12월 바쁜 시간을 쪼개서 "경북의 미래를 위해 서울에서 투쟁하고 왔다"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일자리 창출과 지방이 서울과의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도권 규제’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또 “소득과 연결되어 먹고사는 현실경제"를 강조했다. “냉정한 국제질서를 감안한다면 경북은 집약된 기술개발로 대응해야 하는데 구역권을 나눠 경제 단위를 묶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시장은 "경북이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첨단과학기술개발이 중요하다며 대구경북 통합론을 주장 했다. 경제적 통합을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해안은 해양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첨단기술단지를 조성하여 신 에너지 개발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또한 각 지역별로 구역을 묶어서 공동체를 이루고 지역특성에 맞는 경쟁력있는 상품을 세계시장에 내 놓아야 한다는것.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과 철저히 네트웍을 형성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교역국과 수출상품에 대한 무역협상을 할 때 우리가 팔수 있는 물건을 함께 협상 하는 것이다. 구미는 일본에 상품을 수출할 때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100억원대의 생화를 수출했다.
그는 또 "구미는 외국인이 5천여명이 살고 있는 움직이는 국제도시"임을 강조했다. 외국인기업전용단지 조성으로 외국을 찾아가지 않아도 구미에서 조업하는 자국의 회사를 방문한 각 국의 대사들과 국제적인 비즈니스를 가능하케 하는 일석이조의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김관용 시장은 지난 민선3기 때 구미시장에 단독 출마해 무투표 당선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 비결은 간단했다. “시민들이 어려운 곳에 김관용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시민의 80%가 외지인으로서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겠지만, “시민들이 어렵고 힘들어 할 때 그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미에서 김 시장을 찾으려면 ‘불이 난 현장이나 시민들이 어려운 곳’에 찾아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김 시장은 “시민들이 시장으로 선출해준 이상, 시민들의 뜻을 받들고 어려운 곳을 찾아가 위로하고 도움을 주는 역할이 시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김 시장은 국내최초 구미에서 ‘2003년 산업평화선언’을 했다. 당시 국내 정세는 노조의 저항으로 기업들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김 시장은 노조를 찾아가 설득했지만 노동자들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노동자들과 함께 농성장을 지켰다. 노동자들이 소주를 한 컵을 마시면 소주 한 컵을 같이 마시고 시장이라고 적대시 하여도 상관하지 않고 아무데서나 딩굴며 잠을 잤다고 한다. 노동자들과 함께 라면을 먹고 숙식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이 사람이 구미시장 인가?”할 정도로 서민적인 그의 행동에 마음을 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후 노동자들은 첨단과학기술도시를 만들기 위해 성과를 분석하고 10년간 기술과 품질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구미에서 각종 학술대회와 기술세미나가 끊이지 않았다. 이와 때를 맞춰 김 시장은 자본 유치를 위해 외국으로 출장을 다니며 비즈니스에 힘을 쏟았다. 처음에는 외국사업주들이 의심했다고 한다. 1주일씩 입국을 미루며 구미 투자에 대한 비젼을 성실하게 설명했다.
김 시장이 시민들과 어려운 곳에 함께 있는 동안 노동쟁의가 사라지고 수출이 늘어났다. 구미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이 외국으로 하루하루 수출되는 달러가 목표한 300백억불 수출을 눈 앞에 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공무원, 시민들과 사업주, 노동자들이 서로, 목표수출액에 다가서면 환호했다. 300억불 수출의 금자탑이 마침내 이루어 진 것이다.
구미시 평균시민 나이가 30세이다. 김 시장도 “내가 실천하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생각의 사고를 젊은 세대와 맞추고 그들의 생각과 함께 빠르게 움직였다. 구미는 성장속도가 빠르다. 빠르게 움직이는 세계경제 흐름에 구미는 익숙하다. 움직임이 생선과 같다. 그래서 ‘디지털구미’라고 한다. 기업하기 좋은 문화와 환경이 조성돼 있고 구미에 이사오면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 있다. 지난해 4천344명의 아기들이 태어난 젊음의 도시다.
김관용 구미시장은 대구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구미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어려운 청년시절 야간학교에서 야간대학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95년도 청와대와 재무부에 근무한 것이 경제 분야와 인연이 됐다. 김 시장은 교사출신답게 교육계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구미고등학교에서 골든벨을 3번 울렸다. 지난해 학교는 4개를 지었다. 학교가 모자라 올해도 추가로 학교를 건설해야 한다고 고민하고 있는 보기드문 지자체장이다.
김시장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에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풍년이 들어도 문제가 발생하고 흉년이 들어도 농촌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한다"며 "이 문제는 혁명적으로 변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기술개발비를 투자해 농촌의 첨단과학화로 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우리 농작물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발, 외국으로부터 로열티를 받는 과학기술중심의 농업기반 구축만이 농민들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도지사 출마문제와 관련,”내가 무엇을 이루어 놓았는가를 스스로 묻는다”며 “도지사 출마 문제는 솔직하게 마음을 비우고 다시 출발하는 마음가짐으로 그 동안 이루어낸 것을 정리하여 경북도민의 심판을 받은 준비를 하고 있다”며 입장을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