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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맹희씨 ©브레이크뉴스 |
이맹희씨는 삼성그룹 창업자의 맏아들로서 후계자가 되기를 꿈꿨다. 아니 당연하게 그 자리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 이병철과의 팽팽한 긴장관계가 결국 그 자리를 거머쥘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이맹희씨는 "유언장이 공개되기 전에 있었던 '유언장을 바꾼다'는 말은 '맹희 너 한테는 한푼도 물려 줄 수 없다'는 뜻임은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참에 '1976년, 아버지가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당신의 후계구도를 직접 밝혔다. 결국 그후 현실로 나타났지만 나는 후계 구도뿐만 아니라 유산분배에서도 철저히 배제되었다."고 실토했다.
한때는 당연히 후계자라고 믿어
이맹희씨는 "한때는 당연히 후계자가 되리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는 "젊은 30대와 40대 초반의 정열을 불태운 곳이 바로 삼성이다. 그리고 그 기업의 경영자는 바로 아버지였고 나는 그 맏아들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토록 냉엄하게 돌아선 것이다."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부자지간에 작은 마찰이 있다해도 서로 대화로 풀어 가면 될 것 아니냐?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용서를 비는 게 뭐 그리 힘든가? 한 마디만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더러 나에 대해서 호의적이라면 내가 결정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나를 그렇게 배척한 아버지가 냉정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모든 평가는 나와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최고경영자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하는 이야기들이다. 아버지는 여느 경영자와는 다른 독특한 면을 많이 지니고 있던 분이다. 성격이 특이하다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말하고 있다.
내 자존심을 조금만 죽였으면...
이맹희씨는 스스로를 '불칼 같은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사주 관상 등을 믿지 않지만 더러 주변 사람들이 내 사주를 풀어와서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 것에나 공통적인 요소가 하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불(火)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방면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기에 그이들에게 불이 많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불'이라는 것은 공격적이고 성격이 급하고 강한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 사주에 있는 불은 그저 작은 불이 아니고 마치 태양처럼 강렬한 불이며 일단 유사시엔 사주의 여덟 글자가 모두 불의 성격으로 변하는 특이한 사주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면서 "내 사주는 일을 할 때 앞뒤를 재지 않고 고집을 피우고, 자존심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센 것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나를 잘 아는 이들이 날더러 '성격이 급하다, 불덩이 같다'는 평가를 하는 것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더러는 나를 두고 '불칼 같다'고도 하니 이 평가는 맞는 것 같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나는 여러 번 아버지 곁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다. 내 자존심을 조금만 죽이고 아버지 곁에서 기다렸으면 모든 문제는 잘 풀릴 수도 있었다. 아니, 아버지 당신께서 여러 번 그런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회마저 강하게 거부했다. 나와는 달리 실제적으로 큰 잘못을 저질렀던 창희는 무려 3년간을 아버지 곁에서 몸을 낮추고 기다린 결과 용서를 받았다."라고 속사정을 실토하고 있다.
"아버지를 인간적인 감정으로 미워했다"
이병철의 큰아들 이맹희씨는 "아버지를 미워했으나 이제는 이해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용서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일본과 국내의 사냥터로 혹은 여기저기 전국으로 쏘다닐 대 아버지는 여러 번 나에게 곁에 있으라는 의미의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때마다 그것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온 사람을 혹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서 나에게 압력을 가하던 사람을 폭행하는 등 완강한 몸짓으로 거부했다. 내 불같은 성격 때문이었다."면서 "아버지가 냉혹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분명 냉정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아들이라서 아버지를 변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최고 경영자로서 냉정해야 하고 냉혹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러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한비 사건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며 지극히 비우호적인 박정권 아래서 오늘날의 삼성을 지키고 발전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아버지와의 길고 긴 미움의 감정을 잠재웠다.
이맹희씨는 "이젠 다 잊었지만 한때 나는 아버지를 인간적인 감정으로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나 이제나 나는 아버지를 이해한다. 아버지의 위치가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