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평화 협력을 기원하는 남한 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가 4월 1일 북한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단독 공연과 4월 3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합동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피아니스트를 포함한 가수 11팀과 태권도 시범단으로 구성된 190여 명에 이르는 이번 예술단은 두 차례의 예술 공연과 태권도 단독 시범공연을 마치고 정부 대표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3일 자정 돌아왔습니다.
4월 5일 오늘 저녁 국내 지상파 3개 방송사 MBC와 SBS에서는 저녁 7시 55분부터 KBS1은 저녁 8시부터 이와 같은 평양공연 ‘봄이 온다'를 약 2시간에 걸쳐 녹화 방영한다고 합니다. 이미 보도된 뉴스를 통하여 평양공연의 주요한 내용은 대체로 알고 있지만 13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이번 남한 예술단 공연에서도 민족의 음악이며 겨레의 숨결인 우리의 음악 국악이 배제된 공연을 보게 되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그동안 북한에서 열렸던 최초의 공연인 1985년 광복 40주년 기념 ‘남북한 교환 공연’과 ‘1990년 범민족 통일음악회’와 ‘1998년 리틀엔젤스 공연’과 ‘윤이상 통일음악회’ 그리고 ‘1999년 평화친선음악회’와 ‘민족통일음악회’ 그리고 2002년 열린 ‘남북교향악 연주회’와 2002년 MBC 평양특별공연, ‘오 통일 코리아’ 와 ‘2003년 KBS 평양 전국노래자랑’과 ‘2003년 SBS 통일음악회’와 같은 단체 공연에서부터 최초의 개인 공연인 2001년 김연자 공연과 연이은 2002년 김연자 공연 그리고 2002년 MBC 평양특별공연의 이미자 개인 공연과 2005년 조용필 개인 공연까지 15여 회에 이르는 공연에서 우리의 숨결 국악 공연은 너무나 미미하였습니다.
![]() ▲ 남한 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 공연모습 출처: © 브레이크뉴스 |
이러한 우리 예술단의 북한 공연에서 국악인이 선보인 공연은 ‘1990년 범민족 통일음악회’에서 서울 전통음악연주단단장을 맡았던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연주와 사물놀이를 공연한 김덕수 정도입니다. 이어 1998년 ‘윤이상 통일음악회’에서 판소리를 선보인 안숙선 명창과 김덕수의 사물놀이공연이 있었습니다. 국악 단독 공연으로는 2001년 2월 1일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남원시립창극단 창무극으로 ‘춘향전’이 공연된 후 다음날 2일 북한민족예술단의 가극 ‘춘향전’이 공연되어 남북한 춘향전이 동시에 공연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북한에서 개인 공연과 단체 공연을 통하여 우리 대중가수들이 부른 민요를 살펴보면 가수 ‘이미자’가 ‘몽금포타령’을 불렀으며 성악가 임웅균이 경기민요 '박연폭포'와 ‘밀양 아리랑’을 그리고 윤도현밴드가 편곡된 민요 ‘뱃노래’를 불렀습니다.
분단 73년의 지구촌 최장 분단국의 아픔을 안고 단절과 소통을 거듭하며 세계에서 가장 긴박한 정세에 놓인 남한과 북한이 서로 손을 맞잡고 가슴을 열어 11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오는 27일 판문점에서 열리게 되면서 남북한예술단의 공연을 통하여 단절된 대화의 소통을 열게 된 너무나 소중한 성과는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고유한 나라의 숨결이며 정신의 뿌리인 국악에 대하여 이렇듯 남과 북이 철저하게 외면해 버린 문제 또한 무엇으로 설명되어야 하는지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심중하게 생각하여야 할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공연은 북한의 핵 개발에 따른 긴장이 고조되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평창동계올림픽 남북한 참가라는 민족적인 합의로 대화의 문이 열리면서 시작된 예술교류로 이루어진 역사적인 공연이었습니다. 이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북한 응원단과 함께 내려온 북한의 ‘삼지연 관현악단’(단장 현송월)이 동계올림픽 기간인 2월 8일 강릉공연과 2월 11일 서울공연을 펼친 내용에 대한 답방과 같은 남한 예술단의 공연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술 공연에서 지난 2월 11일 북한 예술단 서울 공연이 열렸을 때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북한의 특사로 내려온 김여정과 함께 관람하였던 사실을 답례하듯 4월 1일 ‘동평양대극장’의 남한 예술단 단독 공연에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부부가 공연을 관람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평양 예술 공연은 2005년 8월 23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조용필 공연 이후 13년 만에 이루어진 공연이며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인 2월 8일과 11일 강릉과 서울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 공연은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 통일대회 당시 열린 공연 이후 16년 만에 이루어졌던 공연입니다.
지난 북한 예술단의 남한 공연 연주와 이번 평양 합동공연에서 연주 공연을 선보인 ‘삼지연 관현악단’은 백두산 인근에 있는 ‘삼지연’(三池淵) 호수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2009년 창단되어 ‘현송월’이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강릉과 서울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은 강릉공연에서 남한 가요 11곡을 노래하였으며 서양음악을 연주하였습니다. 서울 공연 또한, 강릉 공연과 비슷한 한국가요와 함께 북한 가요를 불렀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민요 ‘머나먼 길’(Those were the days)과 미국 민요 ‘올드 블랙 조’(Old Black Joe)를 연주하였습니다. 이어 이탈리아의 음악가 ‘로시니’(G. A. Rossini. 1792~1868)의 ‘윌리엄 텔 서곡’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1악장’(Mozart Symphony No. 40 in G minor 1st mov)이 연주되었습니다. 또한, 공연을 마무리하면서 현송월 단장이 가사 중 민족의 영토 독도로 바꾼 ‘백두와 한라는 내 조국’을 불렀으며 소녀시대의 서현이 등장하여 북한 여성 중창단과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면서 북한 공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북한 예술단 공연 이후 평양에서 열린 남한 예술단의 1차 단독 공연무대 '봄이 온다'는 소녀시대 ‘서현’이 사회를 맡았으며 공연의 서막을 장식한 현대 무용에 이어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연주곡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가 연주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어 ‘정인’과 ‘알리’가 자신의 노래 ‘오르막길’ 과 '펑펑'을 부른 후 듀엣으로 원곡 ‘윤연선’의 노래 '얼굴'을 불렀습니다. 이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과 '잊지 말아요' 그리고 ‘강산에’의 '라구요'와 '명태'가 이어졌습니다. 이어 윤도현 밴드(YB)가 편곡한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함께 '나는 나비'와 한반도 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거리를 상징하는 노래 '1178'을 불렀으며 걸그룹 ‘레드벨벳’이 '빨간 맛'과 'Bad Boy'를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어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와 '뒤늦은 후회' 그리고 ‘이선희’의 'J에게'와 '알고 싶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강산'이 불렸으며 가왕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과 ‘꿈’ ‘단발머리’와 ‘여행을 떠나요’가 메들리로 이어졌습니다. 사회를 맡은 ‘서현’이 북한 가수 김광숙의 대표곡인 '푸른 버드나무'를 부른 후 모든 가수가 함께 조용필의 '친구여'와 남한의 염원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북한의 가요 '다시 만납시다'를 부르며 1차 평양 공연의 막이 내려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한 합동공연으로 이루어진 2차 평양공연은 북한 측의 배려로 실질적으로 남한 예술단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한의 소녀시대 출신 서현과 북한의 조선중앙TV 방송원(아나운서) ‘최효성의 사회로 시작된 공연은 1차 공연과 거의 같은 노래들로 총 27곡의 노래가 불렸으며 이 중 5곡 정도를 북한 가수와 함께 불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날 공연은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연주로 ’정인‘이 노래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로 시작되어 1차 공연에서 ‘정인’과 ‘알리’가 불렀던 윤연선의 ‘얼굴’을 지난 2월 남한 공연에서 노래하였던 북한 가수 ‘김옥주와 ‘송영’이 함께 불렀습니다. 또한, 이선희와 북한 가수 김옥주가 ‘J에게’를 함께 노래하였으며 이어 아름다운 강산을 열창한 이선희의 무대는 북한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어 중국을 통하여 인터넷으로 전해진 소문에 의하면 애절한 가사와 함께 특유의 감성으로 열창한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가 큰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백지영이 북한 가수 송영과 함께 노래한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은 지난 2월 북한 공연단의 서울 공연에서 단장 현송월이 가사를 독도로 바꾸어 불러 화제를 모았던 노래만큼 북한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연주와 북한 가수들이 부르고 일부는 남북한 가수들이 함께 부른 계몽기 가요 묶음이라는 메들리 공연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불렀던 노래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계몽기 가요는 일제 강점기 시대를 계몽기라 칭하는 북한식 표현으로 시인 ‘이은상’(1903~1982)이 가사를 쓰고 음악가 ‘박태준’(1900~1988)이 작곡하여 1922년 발표된 ‘동무 생각’이 불렸습니다, 이어 우리가 ‘강남 달’을 부른 가수로 알고 있는 이정숙이 1929년 발표한 ‘낙화유수’가 노래 되었습니다.
가수 이정숙은 생몰 연대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북한 출신 가수로 우리나라 서양음악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1926년 평양관현악회가 주최한 음악회를 통하여 데뷔한 가수로 우리나라 초창기 동요를 많이 불렀습니다. 또한, 1938년에 발표된 함남 원산 출신 가수 ‘김정구’(1916~1998)의 ‘눈물 젖은 두만강’이 불렸습니다. 이어 제주 출신의 가수 ‘백난아’(1922~1992)가 1941년 노래한 ‘아리랑 낭랑’이 ‘아리랑 고개’라는 북한식 제목으로 불렸으며 1942년에 발표된 ‘백난아’의 ‘찔레꽃’이 불린 것입니다. 이러한 계몽기 가요로 불린 노래의 원곡 가수인 이정숙, 김정구, 백난아등은 성악을 전공한 이후 유행가 가수로 데뷔한 가수입니다.
이러한 남북한 예술 공연에 대한 역사를 상세하게 살펴보기 위하여 최초의 예술 공연 역사를 잠시 살펴보기로 합니다. 1985년 남북한은 광복 40주년을 맞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교환공연을 합의합니다. 이에 1985년 9월 21일과 22일 양일 동안 북한 공연단은 서울에서 남한 공연단은 평양에서 동시에 교환공연이 이루어집니다. 당시 남한예술단의 북한 공연은 ‘평양 대극장’에서 남보원의 사회로 김정구, 김희갑 그리고 나훈아와 하춘화가 노래하였습니다.
같은 일정에 이루어진 북한 예술단의 남한 공연은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렸으며 당시 북한 예술단은 남성 4중창으로 민요 ‘양상도’와 ‘까투리타령’과 개량된 민요 ‘웃음꽃이 만발했네’ 와 ‘소방울 소리’를 불렀습니다. 여성 2중창은 전통민요 ‘노들강변’과 ‘도라지타령’ 그리고 ‘조선팔경가(朝鮮八景歌)’로 제목이 바뀐 민요 창부타령을 불렀습니다. 이어 ‘우리의 동해는 좋기도 하지’로 제목을 바꾼 ‘울산아가씨’와 그리고 일제 강점기 시대의 유행가를 ‘금수강산 우리 조국’으로 제목을 바꾸어 노래하였습니다.
이어 여성 4중창은 1940년대의 일제 강점기 시대에 유행하였던 민요 가락의 유행가인 ‘처녀 총각’을 ‘새봄을 노래하네’로 제목을 바꾸어 부르면서 이어 더욱 개량된 신민요풍의 ‘모란종’과 ‘‘뻐꾹새’ 그리고 ‘명승가’를 노래하였습니다. 또한, 우리의 악기 태평소를 북한에서는 새납으로 부르는데 이러한 태평소를 더욱 길게 개량한 ‘장새납 독주’와 무용단의 공연이 펼쳐졌던 것입니다. 당시 북한 공연은 ‘만수대예술단’과 ‘피바다가극단’ 그리고 ‘평양예술단’ 소속 가수와 무용배우 등 50여 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이후 1990년 12월 9일과 10일 서울 예술의 전당과 국립극장에서 열린 ‘송년 통일전통음악회'에 평양 민족음악단 소속 단원 26명이 방문하여 공연하였습니다. 이어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제15대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에서 최초의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던 때에 5월 90여 명이 공연한 ‘평양 학생 소년 예술단’ 서울 공연과 6월 77명의 단원이 참가한 ‘평양 교예단’ 서울공연에 이어 8월 남북교향악단 합동공연이 서울에서 열렸던 것입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2002년 8·15 민족통일 대회에 ‘만수대예술단’과 ‘피바다가극단’ 그리고 ‘평양예술단’ 소속 30여 명이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렇게 지난 2월 강릉과 서울공연까지 모두 6차례의 남한 공연을 한 북한 예술단의 2002년 공연 내용을 살펴보면 공연의 주제를 민속무로 하여 화려한 기교가 두드러진 ‘쌍채 북춤’과 ‘달빛 아래서’ 그리고 휘모리장단에 맞추어 추는 ‘반 살풀이춤’을 선보였습니다. 이어 경쾌하고 빠른 춤사위를 위한 개량된 소매의 의상이 두드러진 ‘손북 춤’과 평양 교외의 사냥에서 유래된 ‘사냥꾼 춤’과 남한의 혼자서 추는 무당춤과 같은 류인 ‘쟁강 춤’을 현대적인 음악에 맞추어 군무로 선보였습니다. 또한, 현란한 기교를 선보인 고난도의 ‘방울춤’과 유연한 몸짓으로 민족의 미감을 담아낸 '장구춤'과 함께 오랜 민족의 생활 정서를 역사적인 율동으로 승화시킨 ‘두레놀이 북춤’과 ‘물동이 춤’을 공연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가야 하는 사실은 지난 역사의 북한 예술단의 남한 공연이 노래이든 춤이든 민족의 정서와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16년 만에 다시 열린 남한에서의 북한 예술단 공연과 13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남한 예술단 공연에서 민족의 음악이며 겨레의 숨결인 국악이 배제된 사실은 결국 세계인의 이목이 쏠린 너무나 엄중한 시대 상황에서 볼 때 그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놓아버린 넋’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전통음악 국악은 본래 북한에서도 민족음악으로 정의되었고 연구되었습니다. 그중 판소리에 대하여 1960년대에 감성을 자극하는 정한의 애절함이 혁명 정신을 상쇄한다는 이유로 이를 배제하기 시작하면서 ‘쇅소리’로 표현하는 탁성(濁聲)을 주요한 요인으로 지목하였습니다. 이에 발성과 악기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북한의 전통 음악과 현대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엄밀하게 우리의 민중 예술 판소리에 담긴 권선징악의 내용이 주체사상이 추구하는 혁명 정신의 걸림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전라도 방언으로 이루어진 판소리의 감성적 맥락을 북한식 언어로 수정하면서 가극 춘향전과 같은 전혀 다른 음악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음악과 이탈리아 음악이 접목되면서 탁성을 배제한 맑은 서도소리의 신민요가 생겨났습니다. 이는 북한이 최고 지도자의 강력한 지시에 18세기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의 기교적 창법으로 사용하였던 두성 중심의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을 가진 벨칸토 창법(Bel canto)을 바탕으로 새롭게 발전시킨 맥락입니다.
![]() ▲ 2018 남북한 평화 협력 기원 남한 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조용필 이선희와 북한 가수 김옥주, 백지영 열창 장면 출처: © 브레이크뉴스 |
이에 특유의 방언과 감성적인 탁성으로 가슴에 내려앉는 민중의 숨결 판소리는 북한에서 사라져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지난 시대의 북한 공연과 오늘날의 공연을 유심히 보아온 음악전문가라면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는 남한에서 동편제 서편제와 같은 전통 소리를 계승하여 발전시켜 가는 사실에 대응한 북한의 사정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탕이 음악교육의 바탕을 이루게 되면서 오늘날 북한 현대음악의 발성법 또한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좀 더 상세하게 이를 살펴보면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의 주요한 공연단이 보여준 무용음악을 보면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맥락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에 적합하게 개량된 북한 악기들의 내용은 이러한 사실들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전통 민요를 바탕으로 서양의 발성과 음악을 접목하여 많은 실험 끝에 주체적인 음악을 탄생시킨 내용은 선율 중심의 4분의 4박자 행진곡류와 6분의 8박자의 단선적인 가락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는 서양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3화음(triad)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북한 음악이 대체로 독창이거나 독무가 아닌 중창과 군무로 이루어진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이러한 특성으로 우리의 국악에 대하여 상당한 거리감을 가질 수 있는 사실은 감지됩니다. 이는 우리의 국악이 전통적인 민족정신을 고수하여 서양의 음악과 분명하게 차별화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발전을 위하여 부단하게 노력한 사실을 북의 전문가들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단일 민족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대화를 통한 조율과 협의가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북한이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음악을 매만져온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듯이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여 발전시켜온 우리 국악인의 노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북한의 자세 또한 분명하게 필요할 것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살아 있을 수 없으며 바탕이 없는 근본은 존재하지 않음은 진리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문자를 창제한 인물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유일한 민족으로 세종대왕이 창제한 나라말 한글을 함께 쓰는 ‘불휘 기픈’ 민족 모두가 넋을 놓아버리는 우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 칼럼은 (177) ‘’성악이 낳은 인기가요 ‘고도 정한’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