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어제) 오전에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노회찬 의원이 투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충격적인 뉴스에 이어 전후 문학사에 가장 기념비적인 소설 ‘광장’(廣場)의 작가 최인훈이 대장암 투병 중 별세하였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연이어 날아왔다.
이와 같은 연속적인 뉴스의 아픔을 곱씹으며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廣場) 의 첫 문장을 종일 떠올렸다.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깊은 울림의 시어와 같은 첫 문장을 헤아릴 수 없이 읊조렸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맨 처음 발표된 작품에서는 첫 문장을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이면서 숨 쉬고 있었다"였다. 이후 간결하게 다듬어진 문체이지만 그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 ▲ (좌로부터) 소설가 고 최인훈 / 새벽지 1960년 11월호/ 1961년 정향사 출판 광장/ 일어번역판 광장/ 문학과지성사 출판 광장/ 제로제공- 한국미술센터 © 브레이크뉴스 |
이와 같은 최인훈의 광장은 본래 1960년 종합 문예지 ‘새벽’지 11월호에 백지에다 썼던 원고지 600매 분량의 작품을 게재한 중편소설이었다. 이는 그해 4월 4·19혁명이 일어난 역사의 격랑 뒤에 탄생한 우리 전후 문학사에 명실상부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당시 작가는 ‘새벽’지에 게재된 작품의 서문에서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지난 정권이었다면 이와 같은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낀다.”라는 역사의 중요성을 술회하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작품 ‘광장’(廣場) 이 최초로 게재된 종합 문예지 ‘새벽’은 많은 역설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 선생이 창설한 민족운동단체이었던 ‘흥사단’(興士團) 과 ‘수양동맹회’(修養同盟會)의 기관지 성격으로 1926년 창간된 종합잡지 ‘동광’(東光) 이 1932년 종간된 역사를 만나게 된다. 이는 1954년 우리의 시문학사에서 선구적인 현대 시로 평가받는 ‘불놀이’ 시인으로 잘 알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주요한’(朱耀翰. 1900∼1979) 시인이 이와 같은 종간된 ‘동광’(東光) 잡지의 발행을 재개하면서 동쪽의 빛 ‘동광’(東光)을 우리말의 ‘새벽’으로 다시 창간하였다.
이러한 새벽 잡지가 1960년 4월 혁명이 일어난 이후 그해 11월 최인훈의 소설 ‘광장’(廣場) 을 게재한 것이다, 이후 다음 달 12월 15일 1961년 1월호 잡지를 발행한 이후 갑자기 종간되었다. 당시 이와 같은 잡지의 종간에 대하여 새벽 잡지의 발행인 ‘주요한’이 1957년 민주당에 입당한 후 1956년 제4대 민의원을 거쳐 1960년 민주당 장면(張勉) 내각에서 부흥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을 연이어 맡게 되면서 잡지의 발행이 어려워 종간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필자는 당시 시대 상황과 여러 자료를 헤아리면서 몇 가지 짚고 가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이는 잡지가 종간된 다음 해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군부에 의하여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사실이다. 이와 같은 격동의 시대 상황에서 ‘주요한’의 행적을 살펴보면 1961년 5월 5·16군사정변으로 장면 정권이 와해하면서 공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의한 정치활동정화법을 시행하면서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으나 해금 후 군부정권하에서 1966년 경제과학심의회 위원과 1970년 대한해운공사 사장을 역임하였으며, 1973년 한국특허협회 회장과 1975년 한국능률협회 회장을 거친 후 1978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수석 부회장이 되었다, 이러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서거한 이후 22일 후인 11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여기서 잠시 이와 같은 ‘주요한’의 행적에 대하여 다시 상세하게 요약하면 그는 목사이었던 부친의 장남으로 1900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아이(옥희)를 화자로 하여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한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작가 ‘주요섭’의 형이다, 그는 부친이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 선교 목사로 일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따라가 메이지 학원(明治 學院) 중학부와 도쿄 제일고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그는 1919년 2월 창간되어 일본 동경에서 인쇄 발행된 우리나라 선구적인 종합문예 동인지 창조(創造)의 동인으로 창간호에 그의 시 ‘불놀이’를 발표한 이후 5월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하였다.
다음 해 1920년 흥사단에 입단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상하이 후장대학(滬江大學])에 입학하였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1927년 동아일보사 편집국장과 1932년 조선일보사 편집국장을 역임한 후 1935년 우리나라 토종 백화점의 역사인 화신백화점의 경영자 박흥식에 영입되어 일하였다, 이후 그는 해방 이전까지 일제의 황국신민화와 태평양전쟁 동원령을 선전하는 친일 활동에 열중하였다, 해방 이후 그는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으나 플려 났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조만식 등이 창당한 조선민주당의 선전부장과 사무국장을 역임한 후 1954년 흥사단의 기관지 ‘새벽’을 창간하였다.
이렇듯 그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살아온 삶 속에서 우리나라 선구적인 언론사의 요직을 거쳐 정치인과 장관 그리고 실업인으로 활동하였던 격동의 역사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일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 ▲ (좌로부터) 시인 주요한(朱耀翰)/ 창조(創造) 동인지 창간호/ 주요한 시 불놀이/ 종합잡지 ‘동광’(東光) 창간호/ 종합 문예지 새벽 창간호/ 자료제공- 한국미술센터 © 브레이크뉴스 |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지는 내용은 그가 정치인과 장관으로 활동하면서 종합 문예지 새벽을 발행하던 1960년 11월 최인훈의 광장이 발표된 다음 달 12월에 잡지의 종간이 이루어진 사실이다. 이는 다음 해 1961년 5월 박정희 군부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그것은 ‘주요한’이 당시 시대 상황에서 가장 정보력이 뛰어난 대표적 언론의 편집국장을 역임하였던 현직 장관으로서 극심한 혼란기에 있었던 시대 정황을 민감하게 헤아린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많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이러한 격동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다음 해 1962년 800매 분량으로 늘어난 장편소설로 ‘정향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신구사’와 ‘민음사’를 거쳐 1973년에는 일어판이 출간되었으며 197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최인훈 전집’이 출판되면서 대폭 수정된 ‘광장’이 새롭게 태어났다.
이와 같은 소설 광장의 주요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국 광복 이후 분단의 시대 상황에서 주인공인 남한의 철학과 학생이었던 이명준이 북한에 있는 정치인 아버지의 대남방송 활동으로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현실에 좌절하여 스스로 월북한다. 이렇게 북한을 찾아갔던 이명준은 자유를 속박하는 북한의 획일적인 사회주의 제도에 다시 좌절한다. 이후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포로가 된다. 이러한 그는 포로 송환 과정에서 남과 북의 선택에서 중립국을 택한다. 이제 그가 가야 할 곳 삶의 광장은 자신이 경험한 사회 남쪽과 북쪽 어느 곳에도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렇게 중립국을 선택한 포로를 실은 인도 국적선 타고르 호가 남지나해(남중국해)를 지나는 지점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바다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
이와 같은 ‘광장’(廣場)의 작가 최인훈은 전후 소설로는 처음으로 민족 분단의 문제에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를 함께 비판하였다, 이와 같은 작가의 주요한 의식은 밀실과 광장이라는 구조적인 비유로 전개되어 당시 우리 사회에 큰 반응을 가져왔다.
![]() ▲ (좌로부터 고 노회찬 의원/ 고 노회찬 외 공동저술 생각해 봤어? / 고 노회찬 외 공동저술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 자료제공 - 한국미술센터 / © 브레이크뉴스 |
이와 같은 소설 ‘광장’(廣場)을 읽으며 젊은 꿈을 키워왔을 고 노회찬 의원이 충격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의 억압과 속박을 버리고 선택한 중립국으로 가는 선상에서 드넓은 바다에 잠긴 푸른 광장을 향하여 투신하였다. 그 소설을 읽은 세대인 고 ‘노회찬’ 의원은 더 나은 나라, 더 나은 삶, 을 지향한 삶을 살면서 현실이라는 덫에 걸려 도덕적인 양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이라는 사죄의 삶으로 마감하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소설 ‘광장’(廣場)의 저자 최인훈도 세상을 떠났다.
소설 속에서 죽어간 분단의 미아 ‘이명준’과 현실이 가져다준 양심의 무게를 버리지 못하고 추락해 버린 고 ‘노회찬’ 의원과 분단의 민족사를 영원한 광장으로 끌어내고 타계한 고 최인훈 작가의 영전에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는 소설의 첫 문장을 서글프게 읊조려 본다. 다음 칼럼은 (198) 자연을 머금은 작가 이혜순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