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공개한 6개의 슈퍼 신형무기 중에서 (1)‘핵추진대륙간순항미사일’과 (2)‘마하 20 RS-26 아방가르드’(Mach 20 RS-26 Avangard) (3)‘킨잘’(Kh-47M2 Kinzhal)을 소개하였다.
나머지 3종의 슈퍼 신형무기는 (4)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르마트‘(RS-28 Sarmat) (5) 핵탄두가 탑재된 대륙간 수중 무기 (6) 레이저무기(Laser) 이다. 이와 같은 신형무기 중 4번째 신형무기인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르마트’(RS-28 Sarmat)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 5번과 6번 무기를 먼저 소개하고 이어서 다루기로 한다,
5번째 무기는 엄밀하게 어느 특정한 무기가 아닌 ‘다목적 대양 시스템’(Ocean Multipurpose System)으로 정리되는 자율 수중 무기체계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먼저 살펴야 할 내용이 있다. 지난 2015년 9월 러시아 NTV는 푸틴 대통령과 군 고위직 회의를 보도하면서 특급 군사 기밀을 세계에 유출한 영상이 있었다, 당시 군 인사의 손에 들린 문서에는 ‘다목적 대양 시스템’(Ocean Multipurpose System)체계 속에 핵이 장착된 ‘Status-6’ 이라는 어뢰 무기의 설계도면과 함께 주요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 ▲ (좌) ‘사르마트’(RS-28 Sarmat) (중) ‘스타투스 6’(Status-6) (우) 러시아 신형 레이저 무기(Laser weapon)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이와 같은 특급 군사기밀이 방송된 자체가 의문으로 남은 사건 이후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은 신형 무기를 발표하면서 핵 추진 자율 수중무기를 언급하였다. 이후 세계 뉴스에서는 수중 드론에서부터 많은 추측 기사가 엇갈렸다. 이러한 ‘스타투스 6’(Status-6)으로 표기된 어뢰와 수중 드론에 대하여 나토와 미국 정보국에서는 이를 협곡의 뜻을 가진 ‘캐넌’(canyon)을 변형한 코드명 ‘Kanyon’ 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러시아 국방부는 공개투표를 거쳐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으로 자율 수중 무기 이름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공개된 무기에 대하여 당시 러시아 국영 일간지 ‘로시이스카야 가제타’(Rossiyskaya Gazeta)지는 핵폭탄의 탄두를 코발트로 싸서 방사능 효과를 극대화한 ‘코발트 폭탄’(Cobalt bomb)으로 추정하는 위협적인 기사를 게재하였다, 결론은 그 무기가 어뢰 또는 무인잠수정이거나 수중 드론 이든 간에 핵으로 무장된 고도의 기능을 가진 첨단 수중 무기로 그 방어가 가장 어려운 무기라는 사실이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여섯 번째 신형 레이저 무기(Laser weapon)의 실물이 탑재된 모습을 공개하면서 그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작년부터 우리 군은 레이저 무기로 무장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세부 사항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면서 이러한 무기의 배치로 전문가들은 이미 러시아의 국방 능력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치 금방 불을 뿜어낼 듯한 용가리 같기도 하고 필자의 생각으로는 거북선 머리가 자꾸 지워지지 않는 무기의 머리는 상하좌우의 움직임은 물론 360도의 자유로운 회전을 보여주었지만 더는 세세한 화면이거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레이저 무기에 대한 역사와 그 범주는 단순하게 요약하여도 한 권의 책으로 부족한 매우 복잡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기회가 되면 별도로 다루기로 하고 현재까지 알려진 미국의 레이저 무기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한다.
미국은 2013년 LPD로 통칭하는 물이 차오르는 갑판을 가진, 즉 도크형 수송양륙함인 17,000t의 오스틴급 USS 폰스함(Ponce)에 출력 33kW의 유효 사거리 1.6km의 레이저포를 처음 배치하였다. 이후 2020년까지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함에 사거리 5km와 100kW 출력의 레이저포를 실전에 배치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300kW 출력의 목표를 밝혔다. 이후 불과 2년 후인 2015년 미국 애리조나 대학 연구소에서는 기존의 레이저포 사거리를 11배로 늘리는 기술을 개발하여 미국 공군 연구소에 기술을 이전하였다, 불과 2년 만에 5km 사거리가 55km로 늘어난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에 이어 오늘 써가는 칼럼은 지루할 수도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정리되어야 할 내용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흥미로운 내용도 많음을 의미한다, 오늘 칼럼의 중심은 러시아가 발표한 신형 무기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르마트’(RS-28 Sarmat)에 연관된 이야기이다. 신형무기 '사르마트‘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칼럼과 함께 앞으로도 2번의 칼럼을 통하여 정리되어야 할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와 같은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르마트‘는 우리가 ‘ICBM’으로 잘 알고 있는 5,500㎞ 이상의 사정거리를 기준으로 하는 대륙을 건너 적을 공격하는 핵미사일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공개한 신형 무기 ‘사르마트‘는 무려 18,000km라는 경이로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구소련이 최초로 개발하여 미국과 소련 간에 경쟁적으로 개발된 무기다. 이러한 미사일의 경쟁적인 개발에서 첨단 로켓의 발전을 가져와 마침내 우주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로 개발된 러시아어로 7을 뜻하는 구소련의 탄도미사일 R-7 ‘세묘르카’(Семёрка)가 1957년 8월 21일 발사된 사실과 만나게 된다, 이후 불과 2개월 후인 10월 4일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호가 발사되었다. 이러한 발전을 바탕으로 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Yurii Gagarin. 1934~1968)이 ‘보스토크 1호’ (Vostok 1)를 타고 우주를 날았다.
이와 같은 오랜 역사를 안고 러시아의 4번째 신형 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르마트’(RS-28 Sarmat) 가 탄생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중 먼저 가장 주요한 기술인 미사일의 로켓에 대한 이야기를 살피게 되면 독일 출신의 미국인으로 로켓 공학의 귀재‘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1912~1977)을 만나게 된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영토이었던 오늘날 폴란드 지역 ‘포젠’(Posen)에서 태어났다. 이후 1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폴란드 영토가 되면서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그는 1932 베를린 공과대학(Technische Hochschule Berlin )을 졸업하고 1934년 ‘베를린 훔볼트대학’(umboldt University of Berlin)에서 물리학 박사가 되었다. 이후 1933년부터 시작되었던 독일의 로켓프로젝트 ‘아그레가트’(Aggregat)프로젝트에 합류하여 A1에서부터 개발된 로켓 A4를 바탕으로 1942년 V-2 로켓 발사에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V-2 로켓은 예전의 고체식 연료방식에서 액체식 연료를 사용하는 기술혁명에서 가능한 로켓이다, 엄밀하게 이러한 역사 속에는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고다드’(Robert Goddard. 1914~1916)의 선구적인 연구가 바탕이 되었다, 이는 훗날 ‘베르너 폰 브라운’이 인정한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고다드’는 1923년 11월 액체 산소와 휘발유를 혼합하여 충돌 분사 방식을 통한 연소법 실험에 성공하였다, 이후 다양한 실험을 추가하여 1926년 3월 액체연료 로켓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 ‘로버트 고다드’는 로켓의 안정적인 비행을 위하여 움직이는 물체의 각도를 측정하여 방향 유지에 사용하는 장치 ‘자이로스코프’(gyroscope)를 이용하여 로켓의 자세를 제어하였던 것이다.
![]() ▲ (좌로부터) ‘진자의 등시성’(Pendulum isochronIsm) ‘자이로스코프’(gyroscope) ‘푸코 진자’(Foucault Pendulum)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이러한 ‘자이로스코프’의 역사를 헤아리면 전설의 독백 ‘그래도 지구는 돈다.’를 역사에 남긴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진자의 등시성’(Pendulum isochronIsm)을 헤아리게 된다, 여기서 진자란 고정된 축의 주위를 일정한 주기로 진동하는 물체로 쉽게 실에 매달린 추와 같은 물체이다. 이러한 ‘진자의 등시성’이란 진자의 주기는 진폭과 상관없이 일정한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1602년 무렵 ‘갈릴레이’는 이와 같은 진자의 진동 주기가 진폭으로부터 거의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헤아림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크리스티안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는 1656년 이와 같은 진자를 시계의 발진기로 사용하였다. 즉 추시계가 탄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갈릴레이’의 진자 등시성을 공부하였던 마지막 제자인 수학자 ‘빈센초 비비아니’(Vincenzo Viviani. 1622~1703)는 이러한 진자를 활용하여 지구의 자전에 대한 실체 성을 실험하였다. 그러나 그의 실험은 증명이 없는 단편적인 기록으로 역사에 묻히고 말았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하는 대목은 이 무렵 ‘존 서슨’(John Serson. ?~1744)이라는 영국의 항해사가 발명한 ‘휠링 스페쿨룸’(whirling speculum)이라는 거울장치이다. 이는 항해실에 부착된 회전 거울 장치로 파도에 요동치는 선박의 수평면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수평면에 평행한 곡선 수평선을 헤아린 지혜였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독일의 천문학자 ‘요한 보넨베르거’(Johann Bohnenberger. 1765~1831)가 1817년 ‘기계’(machine)로 이름을 부여한 거대한 회전구 장치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장치를 바탕으로 프랑스 물리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Jean Bernard Léon Foucault. 1819-1868)가 ‘갈릴레이’의 진자의 등시성을 끝까지 매만진 마지막 제자 ‘빈센초 비비아니’(Vincenzo Viviani. 1622~1703)의 실험을 사실로 구현하였다, 바로 이렇게 탄생한 장치가 진자의 관성을 통하여 지구의 자전을 증명한 ‘푸코진자’(Foucault Pendulum)이다. 1851년 파리의 팡테온(Panthéon)사원에서 시연된 이 실험은 진자의 관성 때문에 절대 공간에서 일정한 방향을 유지하는 진동을 통하여 지구 자전을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푸코’는 일정한 축을 중심으로 어느 방향으로든 회전하도록 한 ‘회전의’ 장치인 ‘자이로스코프’(gyroscope)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자이로스코프’가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고다드’에 의하여 로켓에 장착되어 1926년 11월 액체연료 로켓 발사의 성공적인 문이 열렸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던 1939년 초까지 이와 같은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고다드’와 독일의 과학자들은 학술적으로 빈번한 접촉이 있었다, 이때 독일의 로켓 프로젝트 ‘아그레가트’(Aggregat) 팀에서는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가 개발한 액체연료 사용 로켓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독일 중부 튀링겐(Thüringen)의 노르트 하우젠(Nordhausen) 마을의 콘슈타인(Kohnstein) 언덕에 석회광산을 이용한 지하터널로 이루어진 대규모 군수공장 ‘미텔베르크’(Mittelwerk)에서는 그 유명한 강제수용소 ‘미텔바우-도라’(Mittelbau-Dora) 죄수들을 이용하여 V2 로켓을 대량으로 생산하였다.
이때 완성된 V2 로켓은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고다드’에 의하여 로켓에 장착되었던 ‘자이로스코프’(gyroscope)가 로켓의 수평과 수직의 안정적인 비행을 유도하는 장치로 2개를 장착하고 있었다. 이러한 V2 로켓은 1944년 9월 8일 파리에서 첫 발사를 시작으로 영국에 가장 큰 피해를 입혔으며 벨기에와 프랑스를 공격하였다. 이와 같은 V2 로켓에 대하여 히틀러는 오랫동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만약 그가 전쟁 초기부터 V2 로켓 제작에 치중하여 화력이 증폭된 로켓이 조기에 제작되었다면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패전의 그림자가 독일을 덮쳐왔을 때 미국과 소련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V2 로켓의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1912~1977)을 비롯한 기술진의 자국 영입과 V2 로켓 기술의 입수에 치열한 첩보전이 전개되었다, 당시 ‘베르너 폰 브라운’은 1943년 10월부터 이미 독일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베르너 폰 브라운’ 감시 보고서에는 실험실 책임자 ‘헬무트 그뢰트루프’(Helmut Gröttrup. 1916~1981)와 엔지니어인 ‘클라우스 리델’(Klaus Riedel. 1907~1944)과 같은 추종자들이 적극적인 연구 활동을 하지 않는 사실을 바탕으로 V2 로켓 제조를 방해하는 정황과 영국 도피 가능성이 보고되었다, 이에 ‘베르너 폰 브라운’은 1944년 3월 15일 독일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폴란드 항구도시 ‘슈체친’(Szczecin)의 비밀 기지에 수감되었다. 당시 군수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1905~1981)는 V2 로켓 생산의 중요성을 들어 히틀러에게 ‘베르너 폰 브라운’ 의 석방을 건의하여 풀려났다,
당시 이미 패전의 기운이 감지된 1945년 봄 소련 정부는 정보부대를 통하여 ‘베르너 폰 브라운’에게 구체적인 망명계획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베르너 폰 브라운’은 측근들과 협의를 거쳐 미국으로 투항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측근 엔지니어 118명과 가족을 포함한 300명이 패전 직전 당시 소련이 점령하였던 지역을 빠져나와 미국행을 택하여 1945년 6월 미국에 도착하였다, 당시 미국은 V2 로켓 기술의 주역 ‘베르너 폰 브라운’을 ‘미 육군 로켓 개발팀’(Army's rocket development team)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이후 1954년 ‘베르너 폰 브라운’은 미국 정부에 우주 항공 개발의 필요성을 제안하였으나 미국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후 그는 V2 로켓을 더욱 발전시켜 1956년 고정밀 관성 유도 시스템이 장착된 단거리 탄도 미사일 ‘레드스톤’(Redstone)을 개발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베르너 폰 브라운’이 주도한 ‘미 육군 로켓 개발팀’의 이와 같은 성과에 대하여 호의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은 ‘베르너 폰 브라운’을 비롯한 주요 기술진의 나치시대 행적에 대한 보도를 앞세우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구소련에서 1957년 10월 4일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호가 발사되었다, 이에 다급해진 미국 정부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베르너 폰 브라운’의 존재를 인식하여 1958년 7월 29일 우주항공국 ‘나사’(NASA)를 설립한다, 이렇게 설립된 나사는 ‘베르너 폰 브라운’이 이끌었던 ‘미 육군 로켓 개발팀’을 합류시키면서 ‘베르너 폰 브라운’에게 총 책임자를 제안하였지만 ‘베르너 폰 브라운’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당시 냉전 중이던 구소련의 우주개발에 대한 정보가 계속 입수되면서 ‘베르너 폰 브라운’을 설득하기 시작하여 토성의 개발을 약속해 달라는 ‘베르너 폰 브라운’의 조건을 수락하면서 1960년 7월 그는 나사의 첫 책임자가 되었다.
![]() ▲ (좌) v2 rocket (중) ‘로버트 고다드’ (우) ‘베르너 폰 브라운’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이후 1961년 4월 12일 구소련은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Yurii Gagarin. 1934~1968)을 태운 ‘보스토크 1호’ (Vostok 1)을 우주로 보내면서 미국을 긴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묵묵히 우주 비행에 대한 연구를 하여온 ‘베르너 폰 브라운’ 또한 1961년 머큐리-레드스톤 2호에 침팬지를 태우고 시험비행에 성공한다. 이어 3개월 후인 1961년 5월 5일 우주 비행사 ‘앨런 셰퍼드’(Alan Shepard. 1923~1998)를 태운 머큐리-레드스톤 3호(Freedom 7)가 우주 비행에 성공하면서 미국도 첫 유인 우주 비행 시대를 열게 되었다. 연이어 2개월 후인 7월 21일 우주 비행사 ‘거스 그리섬’(Gus Grissom. 1926~1967)을 태운 머큐리-레드스톤 4호(Liberty Bell 7)가 우주 비행에 성공하였다. 소련의 유인 우주선이 발사된 지 불과 한 달 후에 미국도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여 강대국 미국의 체면을 세웠다.
이후 ‘베르너 폰 브라운’은 1972년 5월 26일 NASA를 은퇴하였으며 1977년 세상을 떠났다. 여기서 이와 같은 V2 로켓의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과 주요한 기술진이 미국으로 망명하였지만, 러시아가 먼저 우주개발에 문을 열어젖힌 배경을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를 정리하여보면 먼저 러시아 제정시대에 태어나 구소련시대를 살면서 우주 비행 이론에 선구적인 문을 열었으며 로켓의 원리를 최초로 정립한 ‘콘스탄틴 치올콥스키’(Konstantin Tsiolkovsky. 1857~1935)를 살피게 된다. 또한 이와 같은 우주의 꿈을 후원한 세계 최대의 박물관과 미술관인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구겐하임 미술관’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이에 대하여 이어서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 칼럼은 (206) 우주의 꿈을 키운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Museum)과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