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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답방이 무산되고, 남북관계도 당분간 한파란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북한이 핵을 매개로 시작한 협상의 역사가 1991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이후 벌써 30여 년이다. 핵을 뒤로 하고 평화로 가는 길에서 1990년대 제네바합의나 2000년대 6자회담에서 북한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핵' 철학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하게 되면 일정한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에 있어서 핵은 1인 수령체제를 떠받치는 수단으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스스로 알면서도 한국과 국제사회가 만든 협상 테이블을 오가면서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 그동안의 전략이었고, 비공인 핵보유국이 된 지금은 현상유지 이상의 요구를 하는 것이다.
순진하게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자 역할을 운운하면서 너무 앞서갔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내세워 부과한 제재조치를 완화해줄 생각이 없어서 북한이 기대하는 큰 선물을 줄 수 없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여진다.
![]() ▲ 김정기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
북핵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이 너무나 안타깝다.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온몸으로 설득하지 않고, 클린턴 대통령이 예정대로 조야했던 영변 핵시설을 폭파하고 뿌리를 뽑았더라면 좋았을 것을.....물론 재래전으로 확전되어 50만 명 이상으로 예상되는 사상자를 내지 않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핵인질이 되어 느끼는 공포보다도 어느덧 한국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 핵이 주는 지리함(?)과 같은 걸까?
당시에는 여건이 참 좋았다. 소런은 1991년에 제국의 해체를 겪어 미국이 일극화 체제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중국은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국제사회의 공적이었고, 북한 또한 김일성 사망 1개월 전이고 사망 후 김정일이 유훈통치를 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권력기반 속에서 불안정했고, 그래서 미국이 서방의 동의 하에 단독으로 행동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여기에다가 플루토늄도 그램 단위로 생산되는 핵개발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북폭에 따른 방사능 유출도 방해 요인이 아니었다.
당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다면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아~ 우리 한민족에게 봄은 오는가?
* 법학박사
* 제8대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
* 숭실사이버대학교 초대 총장
*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특임교수
* 한남대학교 경제학부 예우교수
* 법무법인 대륙아주 중국총괄 미국변호사
*저서 :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하다> 외 2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