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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 (179) 재일한국인 정향균을 추모하며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08/21 [15:00]

▲ 재일 한국인 정향균(鄭香均) 기자회견 사진     © 이일영 칼럼니스트

 

 

일본은 1923년 관동대지진 사태 이후 자행된 조선인 학살의 만행을 덮어씌울 음모에 혈안이었다. 이에 조선인 노동자의 부당한 억압과 희생에 항거한 항일운동가 박열朴烈1902-1974과 함께 동거하던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를 천황 암살 계획으로 몰아 1926년 3월 25일 사형을 언도하였다. 이후 불과 10일이 지난 4월 5일 천황 암살 계획이라는 죄목에서 상상할 수 없는 무기징역 감형이 있었다. 그러나 7월 23일 가네코 후미코가 옥중에서 자살로 발표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또한, 박열은 1845년 패전에 이를 때까지 22년 2개월 동안 옥고를 겪었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살펴지는 인물이 있다. 조선인 작가 정연규(鄭然圭1899-1979)이다. 그는 당시 박열과 쌍벽을 이루는 사회주의 활동을 펴면서 1923년 떠돌이의 하늘(さすらい 空)과 혈전의 전야(血戰の前夜)와 같은 문학 활동을 통하여 관동대지진 사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항의와 추모활동을 펴던 인물이다.

 

이와 같은 정연규는 1899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났다. 그는 무정부주의 아나키즘의 추종자로 정마부(鄭馬夫)라는 필명으로 일제 강점기인 1920년 국한문 혼용체 장편소설 혼(魂)을 발표하였으며 이어 1921년 소설 이상촌(理想村)을 출판하였다. 당시 발표한 소설 혼(魂)이 검열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 가까스로 출판되었으나. 독립운동 소설로 분류되어 작품이 압수되면서 1922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그는 당시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가담하면서 한국인의 일어 소설 최초라 할 수 있는 1923년 떠돌이의 하늘(さすらい 空)을 발표하였다.

 

정연규는 당시 일본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자 사카이토 시히코(堺利彦1871-1933)를 비롯한 주요한 인물과 교유하면서 사회주의 활동을 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연규가 1930년 무렵부터 변절하기 시작하였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민일체(君民一體)의 군국주의 사상을 고양하는 황도사상을 주창하는 황학회(皇学会) 출판사에 이어 만주와 몽고의 정복을 선도하는 의미를 담은 만몽시대(満蒙時代) 잡지를 발간하여 일본의 대륙 진출을 찬양하는 여론 조성에 앞장섰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하여 요약된 역사의 정리가 필요하다. 일본은 1868년 모든 통치를 천황에 복귀시킨 메이지 유신 이후 1895년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조선의 지배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후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1910년 한일병탄의 강압적인 침탈을 자행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살펴지는 인물이 일본의 우익 테러단 혈맹단(血盟團)을 창립한 이노우에 닛쇼(井上日召1886-1967)이다. 이노우에 닛쇼는 1906년 일본이 설립한 남만주 철도회사에 특수정보원으로 근무하였다.

 

1925년 일본에 돌아온 그는 1928년 이바라키현(茨城縣)의 니치렌종(日蓮宗) 주지를 맡게 되면서 혁신적인 청년 육군 장교와 해군 청년 장교들을 규합하여 우익 테러단 혈맹단(血盟團)을 창립하였다. 이들은 1932년 2월 9일 전 재무부장관(大藏大臣) 이노우에 준노스케(井上準之助)를 암살하였다. 이어 3월 5일 당시 일본 최대 재벌이었던 미쓰이 총수 단 다쿠마(團琢磨)를 살해하였다. 이어 5월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총리 관저에 난입하여 총리를 살해하는 극우 테러단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일본 군부의 전체주의와 팽창주의 정치 체제를 주창한 보수적 파벌 황도파(皇道派)가 탄생하면서 이와 같은 황도파를 견제하는 정규 육군대학 출신 장교들의 자본주의와 입헌군주제의 강화를 추구하였던 통제파(統制派)가 생겨난 것이다. 이어 황도파를 이끌던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1877-1966)의 지원을 받은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1880-1950)와 하시모토 긴고로(橋本欣五郎1890-1957)와 또 다른 젊은 장교들이 조직한 사쿠라카이(櫻會)가 생겨났다. 이와 같은 사쿠라카이의 주요인물인 고이소 구니아키는 1942년 조선총독부 제9대 총독에 부임하여 대동아 전쟁을 위한 강제 징용과 징병 그리고 경제 수탈 공출에 이르는 잔악한 통치는 고스란히 역사로 남아있다.

 

바로 변절한 조선인 작가 정연규(鄭然圭1899-1979)가 이와 같은 황도파의 황도 정신을 고양하는 최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바로 황학회(皇学会) 출판사와 만몽시대(満蒙時代) 잡지사를 운용하면서 (야마토 민족의 황도 생활 운동)과 같은 글에서부터 (일본 정신론), (황도 정치론). (유신정치론), (황도이론집)에 이르는 무수한 찬양이 쏟아져 나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1940년 12월 오늘날 서울시 의회 건물인 부민관(府民館) 에서 황도학회 (皇道學會) 결성식이 창립되었다. 당시 춘원 이광수가 발기인 대표가 되어 주요한 친일 인사들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경성식에서 조선인 그대로는 황국 신민이 될 수 없다며 내선일체의 실천과 완성을 위하여 황도 정신을 받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학습 교재가 일본의 역사서 고사기와 일본서기, 칙어집 등이었던 사실에서 이들의 친일활동의 정신성을 낱낱이 살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당대의 주요한 친일 학자와 문인들이 황도사상의 학술적 학습을 주도하면서 친일 기업가 문명기(文明琦187801968)는 후미아키 기이치로(文明琦一郞)라는 창씨개명으로 1938년 9월 4일 경성의 조선신궁에 광제회(廣濟會)를 조직하여 이사장을 맡아 전국 모든 가정에 일본 조상신 부적을 모셔놓고 아침과 저녁 절을 하자는 운동을 황도 선양에 광분하였다.

 

이와 같은 정연규는 일본 부인을 맞아 결혼 이후 일본이 패전하면서 부인의 고향 이와테현(岩手縣)에 거주하다가 1960년 한국으로 귀국하여 1979년 세상을 떠났다. 바로 이와 같은 정연규의 아들이 한일 관계론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학자 정대균(鄭大均1948-)이다. 정대균은 릿쿄대학(立敎大學)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978년 UCLA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경남대와 동아대 그리고 계명대 초청으로 교수로 근무한 이후 현재 수도대학 도쿄(首都大学東京)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대균은 2001년 (재일한국인의 종말)을 통하여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한국인은 일본에 귀화하여 일본의 구성원으로 존재해아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어 2011년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고수하여 최초의 재일 한국인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으며 도쿄대학 명예교수가 된 강상중(姜尙中1959-) 교수가 일본군 성 노예 피해자에 대한 진실을 헤아린 저서를 비판하는 (강상중을 비평한다, 재일의 희생성을 상품으로 만드는 진보적 문화인의 죄)라는 비판서를 출판하였다.

 

▲ 정향균(鄭香均)의 정년퇴임 관련 요미우리 신문 기사     © 이일영 칼럼니스트

 

 

이와 같은 정대균은 재일한국인에 대한 피해자론을 반박하면서 새로운 재일관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정대균의 동생이 바로 재일 한국인 이란 이유로 도쿄도 관리직 승진 시험을 거부당하여 법정투쟁을 벌였던 정향균(鄭香均)이다. 그는 1994년과 1995년 관리직 승진 시험을 접수하였으나 재일 한국인이라는 국적 조항을 이유로 수험이 거부 되었다.

 

이와 같은 부당함을 일본 법원에 제소하여 1996년 5월 16 일 도쿄지방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고등법원에 항소하여 1997년 11월 26일 도쿄 고등 법원은 그 위헌성과 위법성을 지적하며 도쿄도청에 원고에게 40만 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도쿄도청이 대법원에 상고한 이 사건은 2005년 1월 26일 일본 대법원은 정향균의 관리직 전형 응시 자격 확인 등 청구 사건에 대하여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정향균은 2010년 정년퇴임하였다. 정대균은 이와 같은 여동생 정향균에 대하여 일본 귀화를 끈질기게 요청하였지만, 그는 끝까지 한국 국적을 고수하였다.

 

이와 같은 정향균(鄭香均)씨가 지난 6월 30일 69세의 나이로 지병에 의하여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역사적인 변절과 오빠의 새로운 의식에 동화하지 않고 주어진 재일한국인의 운명을 고수하며 끝까지 한국인의 이름을 간직하며 살다간 그의 죽음에 대하여 정작 그의 피가 흐르는 한국에서는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가슴으로 간직한 한국인의 이름 정향균(鄭香均)의 영전에 모국을 대신하여 뒤늦은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당신이 보여준 당당한 의식을 기억하는 분명한 모국이 있습니다. 역사의 아픔이 없는 세상에서 영면을 기원합니다)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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