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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실을 감추는 일본의 버릇

역사의 진실을 감추는 일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크다!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6/17 [17:49]

▲ (좌) 도쿄 신주쿠 소재 산업정보센터 (우) 산업정보센터 영상 전시실     © 브레이크뉴스


일본 정부는 지난 15일 도쿄 신주쿠 와카마쓰초(若松町)에 소재한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설립된 전시관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일본의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 23곳을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 정부는 2014년 1월 각료회의 승인을 거쳐 유엔 유네스코에 (일본의 메이지 산업 혁명 유산–제철, 철강, 조선, 석탄 산업)이라는 명칭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였다. 이어 2014년 9월부터 10월까지 유네스코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 조사단의 현지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이와 같은 사실이 세계에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역사가 증언하는 일제 강점기 시절 자행되었던 강제동원 노역(징용)에 대한 실체가 정리되지 않으면 신성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없음을 유네스코에 요구하며 이를 반대하였다.

 

유네스코는 2015년 5월 한국의 요구를 인정하여 양국의 합의를 권유하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강제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의 환경 속에서 노역한 사실을 바르게 이해될 수 있도록 전시관을 설치하여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약속하였다. 이와 같은 약속의 이행 조건을 바탕으로 2015년 7월 5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와 같은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올해 3월 31일 개관식이 있었다. 그러나 개관식 이후부터 코로나19 감염을 이유로 일반 공개를 미루었던 일본은 6월 15일 일반에게 관람을 허용한 것이다. 이렇게 언론과 일반에 공개된 전시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등재 유산을 살펴보면 야마구치현(山口縣) 하기시(萩市)에 남아있는 하기반사로(萩反射炉)가 일본 산업 근대화의 초기 제련시설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는 용광로 발명 이전에 제련용으로 사용되었던 천장의 열 반사로 가열하는 방식의 고로이다. 이어 하기시에 있는 일본 최초의 군함 조선소인 에비스가 하나조선소 유산(恵美須ヶ鼻造船所跡)이다.

 

또한, 바닷 속에서 생성된 수성암(水成岩)의 오랜 풍화로 자성을 가진 산화철로 변화한 자철광(磁鐵鑛)을 원료로 숯을 연소 시켜 군함 제작용 철을 생산한 오이타야마 타타라제철유적(大板山たたら製鉄遺跡)이 있다. 이와 함께 에도시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졌던 하기시 죠슈번(長州藩)의 거점이었던 하기성 아랫마을(萩城下町) 유적과 조선 침략의 정한론 창시자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의 사설 학당 쇼카 손주쿠(松下村塾)가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여기서 주지하게 되는 내용은 하기시(萩市)지방이 조선 침략의 정한론 창시자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과 한일 병탄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와 일본 군국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1838-1922)를 배출한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며  이토 히로부미는 정한론 창시자인 요시다 쇼인이 개설한 사설학당 쇼카손주쿠에서 공부하였다.  

 

이어 규슈의 사쓰마번(薩摩藩)으로도 부르는 가고시마 섬의 에도막부 시대 28대 당주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 1809년-1858) 당대에 제철, 조선, 방적, 기계, 인쇄, 출판, 교육, 제당, 유리, 의료 등에 이르는 일본 최초의 근대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였던 가고시마 구슈세이칸(旧集成館)이 있다. 이와 같은 유산 중에서 일본 최초의 대포를 주조하였던 구슈세이칸 반사로유적(旧集成館反射炉跡)과 당주 시마즈 나리아키라 시대에 세워진 기계공장 쇼코슈세이칸(尚古集成館)이 등재되었다. 이와 같은 공장은 1923년 시마즈 가문의 박물관으로 변하였으며 이 건물은 일본 최초의 서양식 건축기법으로 세워진 아치형 석조물이다. 

 

이와 함께 일본 최초의 방적 공장으로 당시 기술지도를 하였던 영국인 기사들의 숙소로 건설되었던 구 가고시마방적소기사관(旧 鹿児島紡績所技師館)과 당시 여러 산업에 필요하였던 연료 공급지 데라야마 숯가마유적(寺山炭窯跡)과 동력으로 사용하였던 수차를 움직인 물길 세키요시의 수로(関吉の疎水溝) 유산이 등재되었다. 

 

이와 같은 일본 근대 산업의 발상지인 가고시마 섬의 구 슈세이칸(旧 集成館)을 세운 시마즈 가문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부흥한 사무라이 가문으로 17대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1535-1619)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제4진 침략군 왜장으로 조선에 왔다. 이후 종전으로 돌아갔다가 1597년 일본 재침략인 정유재란 당시 다시 조선에 왔다. 여기서 주지할 사실은 그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전북 남원 일대의 80여 명의 도공을 납치하여 일본에 데려가 도예 산업을 중흥시킨 인물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훗날 후손인 28대 당주 시마즈 나리아키라에 의하여 일본 최초의 근대 산업을 이루었다. 

   

이를 이어 등재된 유적은 시즈오카현(静岡県) 이즈반도 북쪽 이즈노 쿠시伊豆の国市)에 현존하는 대포 주조 터 니라야마반사로(韮山反射炉)이다. 이곳은 주철을 녹여낸 반사로 유적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유산이다.

 

이어지는 등재 유산은 일본 혼슈 북동부의 이와테현(岩手県) 가마이시시(釜石市)에 소재한 하시노철광산 고로유적(橋野鉄鉱山 高炉跡)이다. 이와 같은 고로 유적은 일본 최초의 근대식 용광로에 의하여 연속적으로 주철을 뽑아내었던 출선(出銑) 용광로 유산으로 이와 같은 근대식 제련이 이루어지면서 다량의 대포 제작이 가능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 규슈의 사가현(佐賀県)과 후쿠오카현(福岡県)의 경계를 흐르는 지쿠고가와 (筑後川) 강 하류에  존재한 미에츠해군소유적(三重津海軍所跡)이다. 이곳은 일본 최초의 증기선이 제작된 곳으로 근대적인 선박 수리시설이 남아있는 곳이다. 특히 펌프를 통하여 물을 배출하는 방식인 근대식 수리 도크 드라이 도크 유적이 발굴되었다.

 

다음은 나가사키현(長崎県)에 소재한 코스게 오사무 선착장 유적(小菅修船場跡)이다, 이는 1868년 세워진 일본 최초의 증기 기관용 조선소 유산으로 이와 같은 설비가 1887년 미쓰비시 기업으로 이관되어 미쓰비시 중공업(三菱重工業)의 그 유명한 나가사키 조선소의 바탕이 되었다. 이렇게 세워진 일본 최대의 나가사키 조선소(長崎 造船所)의 제3도크(第三船渠)와 일본 최초의 전동 크레인 장비인 자이언트 캔틸레버크레인(ジャイアント・カンチレバークレーン)이 함께 등재되었으며 선박의 설계 작업이 이루어진 목형장(旧木型場)과 일본 건축의 선구자인 소네 카츠오(曽禰達蔵. 1853-1937)가 설계하여 건축된 나가사키 조선소 소장의 저택이었던 센쇼카쿠(占勝閣)가 등재되었다.

 

이어 나가사키에 소재한 미쓰비시중공업의 탄광으로 일본 최초로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수갱 굴착이 이루어진 탄광 다카시마 탄갱(高島炭坑)이 있다. 이와 함께 일제 강점 시대에 우리의 무고한 국민들이 징용되어 지옥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인간 이하의  노동에 동원되었던 지옥의 섬 군함도로 아프게 기억하는 나가사키 항 남서쪽 섬의 하시마 탄광(端島炭坑)이다. 이곳 또한 미쓰비시 중공업의 소유였다.

 

또한, 함께 등재된 유산은 일본 메이지 시대에 영국인 무역 기업가로 일본에서 최초로 증기기관차를 시험 운행하였던 토머스 블레이크 글러버(Thomas Blake Glover. 1838-1911)가 거주하였던 나가사키에 소재한 구 글로버저택(旧 グラバー住宅)이다. 1863년 건축된 저택은 일본풍과 유럽풍이 어우러진 건축물이었다.글러버는 유산에 등재된 나가사키현(長崎県)의 코스게 오사무 선착장과 다카시마 탄광을 운영하였던 인물로 일본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어진 등재 유산은 후쿠오카현 오무타시(福岡県 大牟田市)에 소재한 미쓰비시 중공업이 소유하였던 일본 근대화의 동력으로 평가되는 미이케탄광(三池炭鉱)이다. 나아가 이와 같은 석탄이 운송되었던 미이케항(三池港)의 역할이 중시되되었다. 더불어 미이케 탄광의 미야하라갱(宮原坑)과 만다갱(万田坑), 그리고 석탄을 운송하였던 미이케탄광 전용철도 자취(三池炭鉱専用鉄道敷跡)가 있다. 이와 함께 구마모토현 중부의 우토반도(宇土半島) 끝머리에 자리한 미스미항(三角港) 서항이 일본 최초의 현대적 항만시설로 등재되었다. 

 

이어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北九州市)에 소재한 관영야하타제철소(官営八幡製鐵所)가 있다. 이 제철소는 메이지 시대에 정부가 운영하였던 제철소로 제철소의 사무소(旧本事務所)와 기계와 설비를 보수하였던 수선공장(修繕工場)과 제련시설인 단야공장(旧鍛冶工場)과 철강생산에 필수적인 공업용수를 공급하였던 온가 강 수원지펌프실(遠賀川水源地ポンプ室)이 함께 등재되었다.

 

이와 같은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올해 3월 31일 개관 이후부터 코로나19 감염을 이유로 일반 공개를 미루며 지난 6월 15일 일반에게 관람을 허용하면서 언론에 알려진 내용은 실로 충격이었다. 센터의 전시 내용은 유네스코 신청 당시 강제노동의 실상을 바르게 알리겠다는 약속과 달리 강제 노역 사실을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일본이 근대화 유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유산과 유적에는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나가사키 조선소와 야하타제철소, 다카시마와 미이케 군함도 탄광과 같은 산업 현장에 강제 동원되어 혹사당한 한국인(조선인)의 피와 눈물이 고여 있다.

 

필자는 일본 정부의 역사를 왜곡하는 그릇된 실체가 더욱 구체화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이와 같은 산업유산정보센터가 역사를 품은 현장에 세워지지 않은 문제이다. 결국 왜곡된 사실로 가득한 전시관을 수도 도쿄의 국가 부처인 총무성 별관에 유치한 사실에서 접근성이 높은 공간을 활용하여 다수의 일본인에게 진실을 감춘 역사를 전하려 한 치졸한 저의를 함께 지적한다.        

 

강제노역의 가혹한 실상의 정리와 진실한 역사의 알림에 충실하겠다던 국제적인 약속과 이행의 권고를 팽개치고 역사의 진실을 감추는 일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크다. 그릇된 역사를 배우는 후손들이 감당하게 될 부끄러움의 두께가 될 것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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