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이야기(3)- 영화와 현실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7/13 [13:21]

▲ (좌) 리처드 프레스톤의 논픽션 소설(핫존-The Hot Zone)/ (중) 중국 731부대 박물관 전시 모형/ (우) 1995년 영화 아웃브레이크(Outbreak) 포스터     ©브레이크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고의로 퍼트렸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코로나19 음모론과 발병 기원에 대한 숱한 이야기가 난무하였다. 이어 6월 11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 신파디 시장에서 발생한 감염이 확산하면서 상상을 벗어난 역 음모론이 뒤엉키면서 죄 없는 연어가 모든 누명을 뒤집어쓴 가짜뉴스가 SNS에 퍼져나갔다. 당시 중국은 베이징 인구의 50%에 이르는 1천100만 명의 진단검사를 시행하는 강력한 대응으로 지난 7월 7일 신파디 시장 발 집단 감염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천산갑을 거쳐 인간에게 감염된 동물 매개 감염이라는 연구가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발병 시기와 발병지에 대한 온갖 추정이 난무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0일 코로나19의 기원 조사를 위한 전문가를 중국에 파견한 사실을 알렸다.

 

코로나19 최초 발병 이후 불과 7개월 후의 세계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터널 속을 달려가고 있다. 향후 전개될 세상에 대한 불안과 체념과 희망이 엉켜 드는 마치 한편의 공상과학(SF) 영화와 같은 세상이다. 이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이거나 전염병의 재난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그중에서 기억되는 영화를 살펴보면 먼저  존브로노 감독이 제작하여 바이러스(Virus)라는 제목으로 1999년 개봉한 영화가 살펴진다.
 
영화는 외계 생명체가 우주 정거장에 있는 우주선과 교신하던 지구 과학선을 장악한 후 선박의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하여 인간 정보를 해독하였다. 이어 인간을 합성한 로봇 생명체를 만들어 낸 후 외계인 자신들에게 인간의 생명을 불어넣는 절박한 상황과 싸우는 스토리였다. 이는 바이러스가 인체의 세포에 침투하여 자신을 복제하는 과정을 스토리로 연결한 영화였다.

 

이러한 영화 이전에 독일태생의 영화감독 볼프강 페터젠(Wolfgang Petersen)이 1995년 발표한 영화 아웃브레이크(Outbreak)가 있다. 이 영화는 세계를 흔든 사스와 메르스에 이어 오늘날 코로나19로 현실화한 상황을 더욱 실감 나게 그려낸 영화였다. 영화는 미국의 인기 논픽션 작가 리처드 프레스톤(Richard Preston)이 1994년 발표한 논픽션 스릴러 소설 (핫존-The Hot Zone)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작가 리처드 프레스톤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성을 넘나들며 과학과 의학 분야의 전문 지식을 콕콕 집어 알기 쉽게 전달하는 작가로 정평을 받는다. 당시 논픽션 소설 (핫존)은 출판과 동시에 32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에 바이러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와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각본을 썼던 인물이 영화 (양들의 침묵) 각본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던 극작가 테드탈리(Ted Tally)였다. 영화의 주요한 스토리는 1967년 아프리카 콩고의 용병 캠프에서 의문의 감염으로 군인들이 죽어갔다. 상황의 심각성에 미군은 혈액만 채취한 뒤 용병 캠프를 폭파해 버린다. 30년 세월이 흐른 후 그곳에 출혈열 감염이 다시 발생한다. 이에 미육군전염병예방센터의 대원 샘(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조사원으로 파견되어 열대를 누비다 기존 바이러스보다 더욱더 빠른 전파로 치사율 100%를 기록한 마을을 발견한다. 사태의 심각성에 미국 정부에 알렸지만, 회답은 귀환이었다.

 

그 무렵 아프리카 콩고에서 감염된 원숭이가 실험용 동물로 잡혀 미국에 건너왔다. 산호세의 검역소 청년이 감염된 원숭이를 빼돌려 북 캘리포니아 작은 마을 시더 크릭의 구매자에게 애완용으로 팔려던 거래에 실패하여 원숭이를 숲에 놓아준다. 이때 감염된 청년은 보스턴에 애인을 찾아왔다가 기묘한 증상을 보이며 죽는다. 청년을 부검한 의사는 샘 대원의 부인이었다. 부검 결과 모든 장기가 녹아있음을 발견하고 샘 대원에게 연락한다.
 
이에 샘 대원은 시더 크릭 마을로 달려가 공기감염이라는 사실을 알고 정부에 경고하지만, 묵살당한다. 이어 샘 대원 부인이 환자에게 감염되어 샘 대원은 치료항체를 구하려 수소문하다 숙주 원숭이가 아프리카에서 한국 선적 태극호 화물선에 밀매용으로 실려 있는 사실을 알고 이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화물선 태극호에서 숙주 원숭이를 접촉한 이들이 감염되어 숨지면서 사라진 원숭이를 우여곡절 끝에 되찾아 치료제를 얻어 부인을 치료하고 특수 부처의 음모를 밝힌다는 내용이다. 당시 영화가 개봉되면서 뜬금없는 한국인 악역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영화의 원작이었던 리처드 프레스톤의 소설 (핫존)은 작가 자신이 대기자로 재직하였던 시사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 1992년에 발표한 기사에서 출발하였다. 에볼라의 발생에서 얻은 교훈을 담은 르포기사 (핫 존의 위기-CRISIS IN THE HOT ZONE)를 바탕으로 쓴 논픽션 소설이었다. 이와 같은 원작은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6부작 미드로 제작되어 2019년 5월 방영되었다. 이러한 리처드 프레스톤의 동생 더글러스 프레스턴도 작가와 기자로 활동하는 잘 알려진 작가이다.

 

동생 더글러스 프레스턴은 뉴욕의 미국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 저널 편집장이었다. 이후 멕시코로 이주하여 고고학과 인류학에 깊은 지식을 가졌던 그는 중앙아메리카 남미 원시림이 품은 역사의 숨결과 같은 많은 글을 기고하였다. 또한, 내셔널지오그래픽 특파원이 되어 중앙아메리카 유적 탐사발굴단에 합류하여 동행하였다. 이렇게 헤아린 인류의 기원과 문명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은 저서(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는 우리나라에서부터 세계 각국에 번역 출판되었다,  

 

역사가 품은 고고학과 인류학 분야는 동생이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는 형이 많은 글을 발표한 형제 작가 리처드 프레스톤은 특히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여러 소설을 출판하였다. 그중 유전자가 변이된 강력한 바이러스가 미국을 공격하는 내용을 담은 논픽션 스릴러 소설 코브라 이벤트(Cobra Event)가 1998년 출판되면서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를 읽고 미국 정부의 바이러스 대책을 주문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와 같은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원작인 리처드 프레스톤의 베스트셀러 (핫존)이 탄생한 배경에는 바이러스 연구 분야에 잘 알려진 인물들의 영향이 컸다. 리처드 프레스톤은 미국 텍사스 의대 면역학과 미생물학 교수로 에볼라 바이러스 연구 권위자 토마스 가이스버트(Thomas W Geisbert) 박사와 미육군의학연구소 바이러스 분야 책임자인 피터 예를링(Peter B. Jahrling)박사와의 깊은 교류가 있었다. 토마스 가이스버트 박사는 1989년 11월 미육군의학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에볼라바이러스를 관찰하다가 필리핀에서 수입한 게를 먹는 원숭이에게서 채취한 조직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를 발견하였다. 계속된 연구로 에볼라 바이러스 연구에 권위자가 되었으며 지난해 2019년 유럽과 미국에서 최초의 에볼라 백신 제품이 승인되었던 프로젝트의 주역이었다.

 

또한, 필로바이러스를 분리하였던 피터 예를링 박사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현존하는 필로바이러스의 심층적인 연구를 통하여 바이러스학에 대한 깊은 연구의 바탕을 일구어낸 공로로 (필로바이러스 연구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와 같은 두 박사와의 깊은 교류가 바탕이 되어 베스트셀러 논픽션 소설 (핫존)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살펴지는 미육군의학연구소의 역사에 담겨있는 중요한 내용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당시 육군과 공군을 담당한 전쟁부와 해군의 해군부로 되어있던 정부체제에서 헨리 스팀슨(Henry Stimson. 1867~1950)이 1940년 7월 10일 전쟁성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NAS)에 세균 병원체와 같은 생물학 무기를 사용하는 생물학전에 대한 체계적인 조직을 지시하였다. 이에 탄생한 조직이 오늘날 미육군전염병연구소로도 부르는 미육군의학연구소의 전신인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USBWL)이다.

 

메릴랜드 프레더릭 비상비행장에 세워진 연구소는 당시 위스콘신 대학 세균학 교수였던 이라 볼드윈(Ira Baldwin) 박사가 실험실 조직을 이끌었다. 전체적인 감독은 당시 전시체제로 국가에 수용된 제약회사 머크 앤 컴퍼니(Merck & Co)의 대표 조지 머크(George W. Merck)가 맡았다. 오늘날 세계 면역 항암 업계의 선두주자로 면역 항암 신약과 에볼라 백신을 제조하고 있는 글로벌 바이오기업 머크 앤 컴퍼니의 창립자이다. 당시 머크앤 컴퍼니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독일 제약회사 머크사의 미국 자회사에서 출발하여 1차 대전 이후 독립하였다. 이후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의 머크사가 나치 치하에서 모르핀 생산에 주력하였던 이야기도 역사가 품은 이야기다.

 

당시 미육군화학단과 연계되었던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는 에어로졸 형태로까지 발전된 수많은 생화학 무기와 정보전의 세뇌 및 심문에 사용되는 약물이 개발되었지만, 그 사용은 엄격하게 억제되었다. 이와 같은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는 당시 핵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와 함께 미국의 가장 비밀스러운 프로젝트의 쌍두마차였다.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일본의 역사를 상징하는 도시 교토(京都)가 히로시마와 함께 핵폭탄 투하지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를 반대하여 교토를 투하 예정지에서 제외한 인물이 당시 전쟁성 장관 헨리 스팀슨이었다. 그는 1920년대 부인 웰링턴 화이트(M. Wellington White)와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일본 교토로 갔다. 당시 받았던 유적의 감동에 교토의 원폭 투하를 반대하였다.

 

여기서 중요하게 살펴지는 내용이 있다. 바로 일본이 항복하여 2차 대전이 종전되면서 미군정 체제에서 실시된 전범 조사와 재판에서 인류사에서 가장 잔혹한 마루타 실험이라는 인체실험의 만행을 자행한 실체의 조직 731부대를 이끌었던 이시이 시로(石井四郞)를 비롯한 주요한 연관 인물들이 전범 판결에서 제외된 사실이다.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의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 731부대는 하얼빈 근교의 비밀기지에서 1936년부터 1945년 여름까지 수천 명의 중국과 한국과 러시아와 몽골인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과 약물실험을 위한 인체실험을 자행하였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소련(러시아)이 만주 일본군 침공을 시작하였다. 당시 일본과 소련 미국의 정보팀이 가장 긴박하게 움직인 내용은 바로 731부대였다. 일본은 소련의 침공이 시작된 8월 6일부터 나흘 동안 731부대의 모든 시설을 폭파하였다. 당시 소련의 특수 선발대가 가장 먼저 침투한 하얼빈의 731부대는 이미 주요 시설의 흔적이 없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오랫동안 잔혹한 실험을 통한 연구가 축적된 731부대의 활용 가치를 주시하였다.

 

미국은 4차에 걸쳐 미국에서 현지조사단을 일본에 파견하여 731부대의 조직과 실험내용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최종조사는 1947년 12월 12일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USBWL) 실험실 책임자였던 이라 볼드윈(Ira Baldwin) 박사가 731부대 실험 내용을 조사하였다. 이후 미국 정부에 최종 보고된 보고서에는 일본의 생물학전 연구는 전범 기소보다 국가안전에 중요한 가치로 이를 타국이 이용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함을 보고하였다.

 

이때 미국과 일본의 특수 채널에 의하여 훗날 가마쿠라 비밀회의로 알려진 731부대 밀약이 이루어졌다. 훗날 알려진 당시 9개 항으로 정리된 내용을 보면 (2.일본인 연구자들은 전범의 기소에서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다) (6. 연구원은 미국의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도록 주의한다),(7. 주요 연구원은 미국에 가게 된다)처럼 미국은 잔혹한 만행의 731부대가 축적한 연구를 차지하였다.

 

종전 이후 비밀리에 귀국한 사령관 이시이 시로(石井四郞)와 주요 연관자들이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 재판)에서 소련의 집중적인 추궁이 있었지만, 미국의 철저한 보호로 제외되었다. 소련군 만주 침공 당시 체포된 731부대 일부 관계자들만 1949년 12월 25일 하바롭스크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노역형 판결 이후 풀려났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오늘날 미국의 극비문서 해제로 많은 자료가 공개되었지만, 많은 이야기가 아직도 미궁으로 남아있다. 특히 731부대를 이끌었던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1892~1959)가 말년에 일본에서 숙박업을 운영하다가 1959년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러 자료에 의하면 그는 일본 의학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활동을 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와 같은 이시이 시로의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와의 관계에 대하여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있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리처드 드레이튼(Richard Drayton)박사가 케임브리지 대학에 출강하였을 당시 이시이 시로가 미국으로 건너가 메릴랜드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 실험실에서 어떤 연구 활동을 조언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리처드 드레이튼 박사는 남미 북부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 출생으로 주요 대학을 거쳐 현재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제국사 석좌교수이다. 박사는 자신의 학위논문을 보완하여 2000년 예일대학에서 출판한 과학과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대영제국사에 깊은 기저를 헤아린 저서 (자연 정부: 과학제국 영국과 세계의 개선-Nature's Government: Science, Imperial Britain, and the "Improvement" of the World)로 미국역사학회 저술상을 받았다.

 

이는 필자가 역사를 헤아리면서 이와 같은 자료를 자주 만났던 정황에 비추어 제국사 연구에 정통한 그가 많은 자료를 헤아리면서 731부대에 대한 자료를 살피게 되었음은 자명하다. (기회가 되면 꼭 뵙고 싶은 박사이다) 중국은 이와 같은 악명의 731부대에 대한 역사적 흔적을 되살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유난히도 역사의 진실 731부대에 대하여 침묵하는 미국과 인류사에서 가장 잔혹한 인체 실험을 부정하는 일본의 두꺼운 민낯의 빛깔도 두고 볼 일이다.

 

역사는 흘러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37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많은 이야기를 가진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는 폐쇄되었다. 그러나 모든 연구를 이어받아 미육군전염병연구소로 재탄생하여 오늘날 바이러스 연구의 센터로 자리한 미의학연구소가 존재한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개봉되었던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인트로 장면에서 등장하는 (인류의 지속적인 지구상의 지배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바이러스다-The single biggest threat to man's continued dominance on the planet is the virus)라는 글이 크게 다가오는 현실이다. 195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생물학자 조슈아 레더버그(Joshua Lederberg) 의 말이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