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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 선생님, 괜찮으시면 이왕 늦은 김에 어디 가서 대포라도 한잔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한잔 사겠습니다."
"좋지요."
중앙시장 근처 무슨 참치 전문점 앞에 차를 세웠다. 나는 참치를 쳐다보기만 해도 속이 니글니글하고 구역질이 난다. 그 벌건 빛깔도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두꺼운 살점은 보기만 해도 역겹다. 이날껏 나는 단 한점의 참치도 먹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내가 이승에 사는 동안에는 단 한 점의 참치도 먹을 계획이 없다. 이미 우리는 행사장에서 전주가 좀 있었다. 여종업원의 태도로 보아 그가 자주 오는 곳인 것 같았다. 손가락을 까딱하며 주문하는 것이 한 두번 주문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밑반찬류가 들어오고 마침내 메인 메뉴인 참치가 등장하였다. 나는 앞이 캄캄하였다.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나는 밑반찬 내지는 꽁짜 안주를 이것 저것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젓가락은 한 번도 참치에 가지 않았다. 나는 그가 입 안 가득 참치를 넣고 씹는 모습만 보아도 속이 니글니글하였다.
내가 참치를 한 점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사로잡았다. 참치에 아예 젓가락을 한 번도 대지 않으면 그가 눈치를 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참치 한 점을 집어서 다른 참치 위에 포개기도 하고, 포갠 것을 다시 집어서 위치를 바꾸어 놓기도 하였다. 처음 등장할 때 가지런한 참치를 헝클어지게 하려고 내딴에는 제법 신경을 썼다. 나의 잔머리 작전 덕택에 천만 다행으로 내가 참치를 한 점도 먹지 않을 사실을 끝까지 눈치 채지 못하였다.
새벽 1시 경에 참치집을 나왔다. 그는 나도 참치를 맛있게 먹은 줄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참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오늘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일주일 뒤에 그를 다시 만날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잠실 석촌 호수 근처에서 만났다. 그가 말했다.
"선생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좀 조용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세상에! 그가 나를 안내한 곳이 또 참치집이었다. 나는 앞이 캄캄했다. 지난 번에 참치집 악몽이 떠올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살 경우라면 내 마음대로 안내를 하겠지만 이번에도 그가 나를 대접하는 형식이라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다.
이 집도 그가 자주 가는 집인 것 같았다. 아늑한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금세 꽁짜 안주류가 나오고, 메인 메뉴인 참치가 나왔다. 이날도 나는 벌건 참치만 보아도 속이 니글니글하였다. 지난 번처럼 나는 그가 눈치를 못채게 꽁짜 안주를 이것저것 부지런히 먹었다. 그는 벌건 참치를 입안 가득 넣고 쩝쩝 소리를 내면서 맛있게 먹었다. 이날도 지난 번처럼 나는 참치를 집어서 포개 놓았다 도로 제자리에 놓기도 하고, 초장을 찍어서 제자리 놓기도 하고, 깔끔한 접시 위의 참치를 조심스레 계획적으로 헝클어놓았다. 그는 내가 참치를 한 점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헤어질 때 택시를 잡아서 나를 태워주면서 운전사에게 차비를 미리 찔러주면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이번 주일에 중국 다녀와서 다음 주에 또 뵈요. 제가 다녀와서 전화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그가 중국에 잘 다녀왔고 중국 간 일이 잘되었다면서 싱글벙글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주말에 만날 날을 잡았다.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절대로 참치집에서 만나지 말자고 말을 하려다 참았다. 설마 이번에는 참치집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은근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속한 장소에 제 시간에 나갔더니 그가 먼저 와 있었다. 반가운 악수를 하고 우리는 먹자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두리번두리번 하더니 적당한 장소를 찾은 모양이었다.
"선생님, 저 집 어떻습니까?"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집은 또 참치집이었다.
"아"
나는 작은 신음소리같이 비명을 질렀다. 비명소리를 그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난감하였다. 그가 참치를 시켰다. 곧 꽁짜 안주류가 나오고 메인 안주인 참치가 나왔다. 벌건 살점만 보아도 속이 니글니글하였다. 그는 벌건 참치를 입에 가득 넣고 우직우직 씹었다. 다 삼키기 전에 말을 할 때는 참치의 파편이 상 위로 튀기도 하였다. 나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참치를 집었다 놓았다, 위치를 바꾸었다 말았다를 번갈아 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날도 그는 내가 참치를 한 점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였다. 나는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등에는 진땀이 나는 것 같았다. 헤어질 때 그가 말했다.
"선생님, 아까 그 참치집 정말 잘 하지지요?"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자기 말을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다시 말했다.
"선생님,아까 그 집 참치 참 잘하는데요?"
"아 네에.."
"선생님, 다음에 아까 그 집에 한 번 더 가십시다."
"아, 네에"
나는 벌레 씹은 기분 내지는 똥 밟은 기분으로 억지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의 이런 기분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동안 그가 세 번이나 참치집으로 나를 안내했고, 나는 참치를 단 한 점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꿈에도 눈치 채지 못하다니! 처음에는 그가 참 눈치가 없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런 내 판단은 아주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자기 말대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세번씩이나 자진해서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번번이 그토록 예를 갖추어 나를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이런 점을 감안하면 내가 참치 따위 한점 먹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야기 꺼리가 되지 않는다. 다시는 참치 한 점 안 먹었다는 소리는 입 밖에도 꺼내지도 말아야 한다.
나는 그의 단순함을 좋아하고 그의 순진함을 좋아하고 그의 순수함을 좋아한다. 거기다가 나는 그의 정의감을 좋아하고 그 바람에 그를 존경한다. 만약 다음에 그가 또 참치집에 가지고 해도 나는 아무 소리 않고 기쁜 마음으로 따라갈 생각이다. 앞으로 나는 그와 참치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참치 한 점도 먹지 않는 것이 들키지만 않는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또 따라갈 생각이다. 세번이 아니라 서른 번이라도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나는 아무 소리 않고 참치집에 가야 한다.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참지집으로 그를 초대해야 한다. (www.songhy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