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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자유가 더 높은 가치인 줄 알아라

라즈니쉬와 송현시인과 가상대화(3)

송현(시인·본사 주필) | 기사입력 2008/11/17 [18:00]
{경고문}

라즈니쉬!
그는 사람이 아니다. 인화물질이다. 아니다, 정신의 수소폭탄이다. 그는 대단히 방대하고, 대단히 난해하고 대단히 위험한 존재이다. 그런 줄 뻔히 알면서 그를 영적 스승으로 모시고 삼십여년 동안 하루도 잊지 않고 살다보니, 어디까지가 그이고 어디까지가 나인지 경계가 허물어지고 말았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생각 중에서 멋지고 고상한 말은 전부 그의 것이고, 유치하고 너절한 것은 전부 내 것이 되고 말았다. 내게 영적 벼락을 쳐 내 삶을 근본에서 흔들고 나를 변형되게 한 스승을 가상대화 형식을 빌어 한국의 눈 밝고 귀 밝은 젊은이들에게 소개한다. (한국라즈니쉬학회 회장: 송현)

 
송현: 선생님, 반갑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나도 반갑다.
송현: 선생님, 제가 아는 남편이나 아내 혹은 연인들에게 개별적으로 물어보면 서로 속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왜 이렇게 서로 속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선생님.
라즈니쉬: 그것은 각자가 상대에 자신의 생각을 투사(投瀉)했기 때문이다.
송현“ 투사라니요?
라즈니쉬: 평소에 자기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나 이미지를 상대편에게 덧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에게 자기간 “투사”가 깨어지면 속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가 투사에 맞춰주지 않으면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당연히 상대가 그대의 기대에 따라줘야 할 의무는 없지 않은가!

송현 : 아아. 투사가 근본적인 문제이군요.
라즈니쉬 : 그렇다. 모순적인 것은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송현: 사랑이 없다니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라즈니쉬: 그들은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또 다른 미성숙한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미성숙한 사람끼리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은 성숙한 사람을 사랑하고 미성숙한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을 사랑한다.

송현 : 선생님, 서로 상대에게 속았다는 사람들이 만약 상대를 바꾸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라즈니쉬 : 골백번을 바꿔도 결론은 매 한가지이다. 남편이나 아내를 수없이 바꾼다 해도 또다시 똑 같은 부류의 상대를 찾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 같은 불행을 겪게 될 것이다. 형태는 다르나 동일한 불행이 되풀이 될 것이다. 그것은 거의가 똑 같다.
송현: 왜 그런 일이 벌어집니까?
라즈니쉬: 아내를 바꾼다 해도 그대 자신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또 다른 여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그대가 아닌가. 그 선택은 그대의 미성숙함에서 나온 것이다.
송현: 그렇다면 다시 선택해도 비슷한 타입의 여자를 선택하고 만다는 의미이지요?
라즈니쉬: 그렇다. 같은 돌부리에 걸려 또 너머지는 것이다.

송현 :그러면 선생님, 사랑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라즈니쉬 : 그것은 성숙이다. 그래야 성숙한 동반자를 발견할 것이다. 그 때는 미성숙한 사람에게는 젼혀 매력을 못 느낄 것이다.
송현: 아하!

라즈니쉬: 그것은 바로 이런 이치이다. 그대가 만일 스물 다섯이라면 두살 짜리 애와는 사랑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와 똑 같다. 그대가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 사람일 때는 어린애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수도 없다. 그대는 그것의 무모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송현 :그렇다면 성숙한 사람은 아예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까?
라즈니쉬 : 그렇다. 성숙한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 속에 서 있다!
송현: “빠진다”는 의미가 대단히 심장하군요.
라즈니쉬: 그렇다. 성숙한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오직 미성숙한 사람만이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사랑에 걸려 넘어지고 자빠진다. 어찌어찌해서 서 있더라도 오래 서 있을 수 없다. 또 다시 여자를 찾고 정신을 잃는다. 또 다시 남자를 찾고 정신을 잃는다. 미성숙한 사람들은 언제나 바닥에 넘어지고 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뼈대가 없고 척추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온전하지 못하여 혼자 설 수 없다.

송현 : 선생님 성숙한 사람만이 온전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성숙한 사람이 사랑을 줄 때는 아무 끈도 달지 않고 그냥 준다.
송현: 끈도 달지 않는다는 말은 조건없이라는 의미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성숙한 사람이 사랑을 줄 때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는 데에 고마움을 느끼고 준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사랑에 대해 남이 고마워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전혀 안한다. 그는 고마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혀려 자신의 사랑을 받아준 것에 대해서 고마워할 뿐이다.

송현 : 그렇다면, 성숙한 사람이 사랑을 할 때는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 그렇다. 성숙한 두 사람이 사랑을 할 때는 삶의 모순적인 일과 아름다운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것은 함께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홀로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거의 하나로 합일되어 있으나 그들은 하나됨은 서로의 개인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실은 서로의 개인성을 더욱 강화시켜 더 개인적이 된다. 성숙한 두 사람이 사랑을 할 때는 서로가 더 자유롭도록 도와준다. 거기엔 뒤얽힌 정치성 없고 외교가 없고 지배하려는 노력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찌 지배할 수 있겠는가?

송현 : 참 그렇군요.
라즈니쉬 : 상대에 대한 지배는 일종의 증오 분노이고 적의이다. 어찌 생각인들 사랑하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전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이길 바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욱 개인성을 부여할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그것을 가장 커다란 모순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하나처럼 합일되었음에도 그 하나됨 속에서 각자 개인 것이다. 그들의 개인성은 훼손되지 않고 더욱 더 강화된다. 그들은 서로의 자유를 더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송현 :그러면 사랑에 빠진 미성숙한 사람은 서로의 자유를 파괴하고 속박과 감옥을 만들게 되겠군요.
라즈니쉬: 맞다. 성숙한 사람은 사랑 속에서 서로가 자유로워지도록 도와준다. 그들은 모든 류의 속박을 깨부수도록 서로 도와준다. 자유를 바탕으로 사랑이 흐를 때 거기 아름다움이 있다. 사랑이 의존적일 때는 추하다.

송현 : 그러면 선생님, 사랑 보다 자유가 더 높은 가치라는 의미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아주 중요한 지적이다. 자류는 사랑보다 더 높은 가치라는 것을 잊지 말라. 그 때문에 인도에서는 궁극의 진리를 모크샤라고 부른다. 모크샤란 자유를 뜻한다. 자유는 분명히 사랑보다 더 높은 가치이다. 따라서 사랑이 자유를 파괴하면 그 사랑은 가치가 없다. 사랑은 버려도 자유는 지켜야 한다. 자유는 사랑보다 높은 가치이다. 자유가 없이는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자유는 모든 남자나 여자의 본질적인 욕구이다. 완전한 자유, 절대 자유 말이다.

송현 : 선생님, 그러면 자신의 자유를 파괴하는 경우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라즈니쉬 : 자신의 자유를 파괴하는 것은 미워진다. 그대는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가? 그대는 사랑하는 여자를 미워하지 않는가? 그대는 미워한다. 그것은 묵인할 수 밖에 없는 필요악이다. 그대는 혼자 있을 수 없어 누구라도 함께 있어야 하기에 타인의 요구에 맞추는 것이다. 그대는 그들을 묵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지 않으면 안 된다.

송현: 선생님,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즈니쉬: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존재의 사랑, 선물처럼 주는 사랑을 해야 한다. 존재의 사랑은 사랑의 상태를 말한다. 그대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대 자신의 실체를 알았을 때 그대 존재 안에서 사랑이 일어난다. 그때 퍼져 나오는 사랑의 향기를 남들에게 줄 수 있다.
송현 : 만약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찌 줄 수 있습니까?
라즈니쉬: 그걸 말이라고 하나, 자네, 어느 대학 나왔다고 했지?
송현 : 부산에 있는 동아대학교 국문과 졸업했다고 했습니다.
라즈니쉬: 내말 똑똑히 들어! 상대에게 무엇을 주려면 먼저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지!
송현 :죄송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말귀를 빨리 못 알아들어서요.
라즈니쉬 : 정신 똑 바로 차리고 들어라.
송현 : 예. 선생님.

라즈니쉬: 그대가 온전히 그대 자신 안에 있지 못하면 사랑이 흐르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어찌 남에게 줄 수 있겠는가?
송현: 왜 그런가요?
라즈니쉬: 사랑은 흘러넘침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고 있을 때 오직 그때 그대는 줄 수 있다. 그러기에 그것은 선물처럼 주는 사랑이다.
송현 : 스스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줄수 없다는 말뜻을 이제 정확히 알겠습니다.
라즈니쉬: 그대가 내 말을 이해한다해도 문제가 있는 것은 그대의 이해가 지적인 이해이기 때문이다.
송현 : 그게 무슨 뜻입니까?
라즈니쉬 : 그대가 만일 존재 깊숙이 이해했다면 그것의 사실성을 보았다면 의문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모든 의존적인 관계를 잊고 그대 자신의 존재를 바탕으로 작업할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명료하게 하고 정화시키고 내면을 더둑 민감하고 깨어 있게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대 자신이 확실한 전체성에 이르고 있음을 느낄수록 사랑도 나란히 성장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때 사랑은 하나의 부산물이다.

송현: 그러면 선생님, 사랑은 전체가 됨으로써 나오는 작용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그때 의문은 사라질 것이다. 의문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사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대는 그것을 하나의 학설로써 듣고 이론적으로 이해했다. 이론적인 이해는 불충분하다. 그 맛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송현 : 진정한 사랑은 남이 알아주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사랑은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랑은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랑은 누가 맛보아 주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들이 인정하는 것은 우연이지 사랑의 본질이 아니다. 사랑은 계속 흐를 것이다. 아무도 맛보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그 사랑으로 인하여 행복해 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아도 사랑은 계속 흐를 것이다. 그 흐름 자체로 무한한 지복과 무한한 기쁨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송현: 사랑이 계속 흐르기 때문에 사랑이 역동적인 에너지겠군요.
라즈니쉬: 그렇다. 사랑은 고여 있을 수 없다. 만일 누가 함께 참여한다면 좋다, 그러나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좋다, 신이 모세에게 뭐라 말했는지 기억나는가?
송현 : 잊었습니다.
라즈니쉬: 모세는 물었다. "주님 당신의 이름을 말해주세요. 사람들이 누가 이 메시지를 주었는가 물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해주세요." 그러자 신이 말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사람들에게 가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하라. 그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의 메시지이다. 이 말뜻이 뭔지 알겠는가?
송현 :예 알겠습니다.

라즈니쉬: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말은 신에게는 아무 이름이 없고 신은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신은 있음 그 자체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송현 :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라즈니쉬: 오늘은 여기까지!
송현: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2007.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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