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사랑을 우정으로 바꿔야 오래 지속되는 까닭

라즈니쉬와 송현 시인의 사랑론 대화(5)

송현(시인. 본사 주필) | 기사입력 2008/11/26 [15:34]
송현: 선생님. 반갑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나도 반갑다.
송현: 선생님, 오늘은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라즈니쉬: 사랑과 우정은 대단히 중요한 덕목들이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얼른 우정으로 바뀌지 않으면 조만간 헤어지게 될 것이다.
송현: 왜 그렇지요?
라즈니쉬: 사랑은 우정으로 자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움이 자라게 된다. 미움이 자라면 서로 증오하고 싸우게 된다. 그래서 반드시 사랑은 우정으로 자라야 한다. 사랑을 하면 반드시 어떤 변화든 일어나게 마련이다. 사랑은 하나의 개방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빨리 우정으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움이 자랄 것이고 미움이 자라면 싸울 일이 생기도 싸우면 꺼어질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송현: 선생님 말씀을 듣고보니, 제가 그 동안 제딴에는 순수하게 몸과 마음을 바쳐 열정적으로 몇 번의 사랑을 하였는데 결국은 헤어지고 만 가장 큰 이유가 뭔지를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사랑이 우정으로 변해야 한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제가 좀 더 진작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라즈니쉬: “떠날 기차는 떠났다!”
송현 : 그렇습니다. “떠날 기차는 다 떠났다”를 다르게 말하면 “브로컨이즈 브로컨!”입니다..
라즈니쉬: 그대 영어 좀 하나?
송현 : 전혀 안 됩니다. 영어까막눈입니다!
라즈니쉬: 그런 위인이 “브로컨이즈 브로컨”은 어찌 알지?
송현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장면 무렵에 레트버틀러가 스카알레트에게 하는 명대사의 한 귀절입니다.
라즈니쉬: 그러면 그렇지! 영어 까막눈 주제에! (함께 웃는다)
송현 : 선생님, 제가 비록 영어는 까막눈이지만 한글은 쓰는 것도 제법이고 말하는 것도 제법입니다.
라즈니쉬: 됐거든!

송현 :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 상대를 지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라즈니쉬: 사랑이 사라진다.
송현 : 자유를 속박당하기 때문인가요?
라즈니쉬: 당근! 그 뿐 아니다.

송현: 지배하는 경우도 문제이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까?
라즈니쉬: 있고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를 소유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때도 사랑이 사라진다. 소유욕은 사랑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욕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송현 : 저도 그런 착각을 많이 했습니다.
라즈니쉬: 여자는 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녀의 자유가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자유가 억압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건 간에 말이다.
송현 : 그녀의 자유는 무조건 온전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대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녀의 자유 또한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대의 자유를 사랑해야 한다. 어찌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파괴할 수 있겠는가?

송현: 선생님, 자유 이전에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즈니쉬: 그래야지. 신뢰가 기본이다.
송현 : 저는 남녀 간의 신뢰는 크게 세 가지를 바탕에 깔아야 한다고 봅니다.
라즈니쉬: 엇주! 그대가 생각하는 세 가지 바탕이 뭔데?
송현 : 그것은 세 가지가 투명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는 돈이 투명해야 하고, 둘째는 시간이 투명해야 하고, 셋째는 마음이 투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라즈니쉬: 그래, 말된다! 만일 그대가 어떤 사람을 신뢰한다면 그 사람의 자유 역시 신뢰해야 한다. 진정한 신뢰란 그녀의 자유를 신뢰하고 그녀의 지성을 신뢰하고 그녀의 사랑할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녀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신뢰해야 하지.
송현: 왜 그래야 합니까?
라즈니쉬: 그녀에게 지성이 있으니 그것은 그녀가 선택할 일이네. 그녀에게 자유가 있고, 사랑할 권리가 있네. 

송현 : 사랑하면 무조건 신뢰하라는 겁니까?
라즈니쉬: 자네는 좀 전에 좁은 의미의 신뢰의 전제 조건 세 가지를 읊었는데, 사랑하면 그녀의 지성, 그녀의 이해, 그녀의 각성을 신뢰해야 한다. 그녀의 사랑도 신뢰하라. 만일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해도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송현 :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잘못이 아니라는 대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라즈니쉬: 비록 그대의 마음이 아플지라도 그것은 그대 문제이지 그녀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만일 그대가 아픔을 느낀다면 사랑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이 질투 때문이다. 송현 : 배신감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요?
라즈니쉬: 배반이라고 말하다니 그렇다면 그 동안 상대를 신뢰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딴 것이 무슨 신뢰인가.
송현: 글쎄요?
라즈니쉬: 내 이해로는 신뢰는 배반당할 수 없는 것이다. 신뢰는 본질적으로 신뢰의 정의 자체가 배반당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배반당할 수 있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송현: 선생님, 누구를 사랑한다면 무조건적으로 그의 지성을 신뢰한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어느 땐가 그녀가 다른 누구를 사랑하길 원한다면 그대로 좋을 것이다. 나는 항상 그녀의 지성을 신뢰해왔다. 그녀도 틀림없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녀는 자유롭다. 그녀는 나의 반쪽이 아닌 독립된 개인이다. 두 사람 모두가 독립된 개인일 때 거기 사랑이 있다. 사랑은 두 자유의 강물 속에서만 흐를 수 있다.
송현: 선생님, 사랑이 깊어지면 어떤 변화가 생깁니까?
라즈니쉬: 사랑이 깊이 성장하면 다른 차원이 된다.
송현: 저도 그 동안 사랑을 할 때마다 함께 성장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함께 공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한 달 가도 책 한 권 읽지 않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 같았고, 어떤 분은 가난해서 대학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늙발에 방통대 공부를 하는 것까지는 좋아보였는데, 문제집 들여다보고 4지 선다형 찍기 공부 머무는 것을 보고 무척 안타깝고 마음 아파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압니다. 선생님.
라즈니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도 모른다.

송현: 선생님, 사랑이 성장하지 않는다면요?
라즈니쉬: 사랑이 성장하지 않을 때는 다른 무엇이 된다. 사랑은 아주 섬세한 것이다. 만일 사랑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쓰고 독한 증오가 될 것이다. 심지어는 증오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 무관심이 될 수도 있다. 무관심은 사랑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다.
송현 :사랑은 뜨거운 에너지가 아닙니까?
라즈니쉬: 누가 아니래? 증오도 그렇게 뜨겁다. 하지만 무관심은 차고 얼어 있다. 사랑과 증오와 무관심을 이런 기준으로 생각해도 좋다. 증오와 사랑 한 가운데 제로 포인트가 있다. 바로 온도계 안에 제로 포인트가 있어서 그 아래로는 냉기가 있고, 위로는 온기가 있듯이 말이다. 사랑은 온기이다. 그 제로 포인트는 증오이다. 그 아래로는 점점 더 차가워진다. 그대는 차가운 얼음과 같이 무관심하게 될 수 있다. 만일 사랑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랑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한다.

송현 : 사랑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까?
라즈니쉬: 사랑은 에너지이자 운동이다. 만일 사랑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더 이상 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랑은 명상이 되고 마침내 그 사랑은 기도가 된다. 사랑이 정말로 깊어지면 기도가 된다. 그러면 사랑의 특질이 비성적이 비감각적이 된다. 상대를 존경하고 성욕이 아닌 경이로움으로 상대를 느낀다. 즉 상대의 현존에서 신성의 어떤 것을 거룩한 어떤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가 그대의 여신, 혹은 신이 된다.
송현: 사랑이 올바로 성장하면 사랑이 조심스레 커나가면 사랑은 기도가 되고, 마침내 신의 궁극적 체험이 된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그것이 바로 탄트라의 접근 태도이다.
송현: 선생님, 탄트라 문제는 나중에 따로 질문하겠습니다.
라즈니쉬 : 그대가 탄트에 대해서 좀 아는 게 있나?
송현 : 선생님께서 쓰신 탄트라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장하다. 송현!

송현 : 선생님께서 어느 강의에서 “무관심 속에 사는 사람은 신을 알 수 없다.”고 하셨더군요.
라즈니쉬: 그래. 무관심이야 말로 진짜 무신론이다. 매우 냉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 --이것은 법원에서도 이해한다. 만일 사람이 흥분된 열기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면 법원은 그렇게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만일 사람이 열정 때문에 살해하였다면 법원에서는 너그러운 처분을 해준다. 그것은 바로 열정 때문이었고, 갑작스런 격분 때문에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계산된 살인에 대해서는 법원은 아주 엄중하다. 냉정한 살인자는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그는 범행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치밀하게 계산했다. 대단히 기계적이고 민완한 수법으로 아주 능숙하게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는 가슴이 없다. 차갑기만 하다. 차가운 가슴은 죽은 가슴이다. 차가운 가슴은 죽어 있고 건조하고 화석처럼 굳은 가슴이다.
송현 : 선생님, 저는 가슴이 아주 차가운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습니다.
라즈니쉬: 하필 왜 가슴이 차가운 여자를 골라서 사랑을 했지?
송현: 일부러 가슴 차가운 여자를 고른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슴이 차가운 여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라즈니쉬: 그런데 분명한 것은 가슴이 차가운 여자와는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슴이 차가운 여자는 계산은 잘 할 수 있다. 계산은 가슴이 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슴이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계산은 엄청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송현 :맞습니다. 선생님. 가슴이 차가운 사람과 사랑을 하면 마침내 그 사랑이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추락하고 만다는 것을 압니다.
라즈니쉬: 그래. 반드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사랑은 정지된 채로 머물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밑으로 떨어지거나 위로 올라가거나 중에 어느 한쪽이어야 한다. 그래가 진정으로 따스한 인생을 살고자 하면 사랑이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송현 : 차가운 가슴은 사랑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나 마찬가지이라는 의미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바로 그것이다. 가슴이 차가운 여자와 한 사랑은 반드시 다 깨어질 수 밖에 없다.

송현 :선생님, 사랑은 비옥하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이군요.
라즈니쉬: 그렇다. 사랑은 비옥한 가슴에서 자랄 수 있다. 비옥한 곳에는 뭐든 잘 자라기 때문에 항상 아름다운 꽃을 심지 않으면 안된다.
송현 : 비옥한 땅에 아름다운 꽃씨를 심지 않으면 잡초들이 자라고 말겠군요.
라즈니쉬: 비옥한 땅에는 뭔가 자라게 되어 있다. 

송현 : 사랑과 각성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라즈니쉬 : 각성이 생기면 사랑이 생긴다. 그때 그림자처럼 진정한 사랑이 찾아온다. 사랑이 일어날 때 각성이 찾아온다. 그림자처럼 온다. 그대는 사랑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고 명상을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는데 결과는 같다. 양쪽이 함께 찾아온다. 하나만 노력하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그래서 만일 그대가 사랑이 더 쉽다고 느낀다면 사랑과 헌신이 그대의 길이다. 그러나 각성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지면 명상과 드나야가 그대의 길이다. 이 두 길이 유일하고 근본적인 길이다. 나머지 길들은 모두 이 두 길의 조합이다. 사랑이 깊어지면 매순간마다 더 깨어 있게 될 것이다. 사랑이 승화되면 될수록 통찰력이 깊어질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송현: 선생님, 감사합니다.(2007. 12. 6)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