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서로 자유가 속박되면 미련없이 헤어져라

라즈니쉬와 송현 시인의 대화(8)

송 현(시인·본사 주필) | 기사입력 2008/12/23 [15:04]
송현: 선생님, 반갑습니다.
라즈니쉬: 오냐. 나도!
송현: 저는 젊은 날에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기대했습니다.
라즈니쉬: 그대 지금 나이 몇이라고 내 앞에서....
송현: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는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미래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요?
라즈니쉬: 당근! 누구도 아니 인간은 미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누구도 미래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미래는 그대로 열려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들이 들이는 가장 막대한 노력 중에 하나다. 참 어리석게도 인간들은 그런 부질없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송현: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라즈니쉬: 인간은 과거를 고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미 일어난 것은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되물릴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이미 지난 간 것을 여기저기 손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는 그것을 더 좋게 만들 수도 없고, 더 나쁘게 할 수도 없다. 과거는 이미 그대를 떠난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것이고 이미 현실화된 것이다. 이미 현실화된 것은 건드릴 수가 없다.
송현: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그것은 그대로 완전하다. 만일 그대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거나 되돌릴 수 있다면 그대는 미치고 말 것이다. 그때는 다시 현재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과거는 너무 길다.
송현 : 선생님. 과거의 문은 이미 닫혀 있는 것 아닙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폐쇄되어 있다. 그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저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하지만 그것은 시간 낭비이다.

송현 : 선생님,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란 뜻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미래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다. 인간은 또다시  점성술사에게 가고 점쟁이에게 간다. 인간은 미래를 미리 알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라도 알고자 한다. 만일 미래를 미리 안다면 그것은 벌써 과거인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오직 과거에 대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항상 미지로 남아 있다. 미지, 그것이 미래의 속성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나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은 것, 그것이 미래이다. 모든 것이 일어났고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것 그것은 과거이다.

송현: 그렇다면 선생님, 현재는 무엇입니까?
라즈니쉬: 현재는 바로 실현된 것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폐쇄된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죽어버린 것에서 살아 있는 세계로 가는 통로이다.
송현 :그래서 지금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바로 그것이다. 지금 사랑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성에게 착 달라붙지는 말라.
송현: 예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집착은 억압에서 나온다. 그대가 욕망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 착 달라붙는 것이다. 그대는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 한다. 혼자서 지냈던 기나긴 밤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자가 가버리면 다시 또 혼자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자도 자신의 외로움을 두려워하여 그대에 매달린다. 어느 날 그대가 다른 여자에게 가버릴까 두려워한다. 그대가 가버리면 그녀 혼자 남겨질 것이다. 그 긴 밤들의 외로움을 어찌 견디며 살까. 그래서 서로를 소유하려 하고 그래서 서로를 감시한다.

송현 :감시 속에서는 서로 권태로워지는 것이 아닙니까?
라즈니쉬: 맞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지 감시가 아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지 간수가 아니다. 그대가 원하는 건 삶과 사랑인데 그러나 하는 짓은 전부가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고 자신의 사랑을 파괴하며 사랑의 흐름을 가로막는 일이다. 그대는 사랑과 삶을 원한다. 기쁨에 넘치는 삶을 원한다. 그런데 그대가 하는 짓은 그것과 반대되는 짓만 한다.
송현 : 기가 차군요. 선생님.

라즈니쉬: 세상의 모든 아내와 남편들은 항상 화가 나 있다.
송현: 왜 그런 것입니까?
라즈니쉬: 화 밑에는 항상 노여움이 깔려 있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차가 식었다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타준 차라면 뜨겁거나 식었거나 무슨 문제인가. 사랑이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뜨겁다. 그러나 사랑이 식으면 모든 것이 차갑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양말을 뒤집어 벗었다고 화를 낸다. 그것은 양말 벗는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식으면 열도 식는다. 그러면 화가 난다. 그러나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그 이유를 직접 말하지 못한다. 사실에 진실할 수 없다.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은 내 곁에 있는 여자 때문이다. 내 곁에 있는 여자가 내 주위에 항상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여자를 만날 가능성이 차단되는 것이다.  그대가 원하는대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과거에 했던 사랑의 언약들은 이미 감옥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화가 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냥 화가 나는 것이다. 무엇때문에 화가 났는지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적당히 둘러대는 것이다. 차가 식었다. 국이 짜다. 그래서 아무 구실이나 갖다 대는 것이다.
송현: 참 웃기는 일이군요.

라즈니쉬: 내말 귀담아 들어라. 사랑은 산들바람이다. 한번 보라. 지금은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 나무들은 잔잔하다. 그들은 어찌할 수 없다. 바람을 일으킬 수 없다. 바람이 불어오면 맞을 뿐이다. 바람이 오면 나무들은 행복해서 춤출 것이다. 바람이 떠나가면 그뿐이다. 그들은 또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산들바람과 같은 것이다. 사랑이 오면 오는 것이다. 그리고 가면 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탄트라 해방이다. 그래서 탄트라는 대단히 위험스런 철학이며 종교이다. 그것은 아직 대대적으로 시도되지는 못했다. 인간은 그것을 대대적으로 시도할만큼 충분한 용기가 없다. 오직 소수에 의해서 드물게 시도하는데 그들은 대한이 고통을 받는다. 사회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그것을 큰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탄트라에서는 기쁨도 없이 사랑도 없이 사는 것을 더 큰 죄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하는 섹스는 강간이다. 매춘이다.

송현 : 탄트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가르쳐 주십시오. 선생님, 사랑을 하면 죽을 때까지 그녀와 함께 살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라즈니쉬: 그것은 바보 같은 시인들이 쓴 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꿈 깨라.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현재를 놓치는 것이다. 시인들은 하나같이 바보스럽다. 자네도 시인이랬지?
송현 : 예. 1975년 월간 “시문학”지에 서 정주 선생 추천으로 데뷔한 시인입니다.
라즈니쉬 : 그래? 지금 한국문단에서 자네의 위상은?
송현: 별 볼일 없습니다.
라즈니쉬: 왜?
송현: 제가 서라벌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할 때 등단한 뒤로 시작활동을 열심히 했다면 지금쯤 아마 a급 시인은 못됐어도 b급 시인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글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 박사를 만나서 한글 기계화 연구를 하느라고 시작 활동을 하나도 못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문단에서는 완전히 미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라즈니쉬: 그게 무슨 해괴한 변명인가?
송현 : 이것은 변명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선생님.
라즈니쉬: 팩트?  자네 시집은 있나?
송현: 세권이 있는데 다 20년 전에 나온 것들입니다.
라즈니쉬: 20년 동안 시집을 못 냈다는 건가?
송현: 예. 선생님.
라즈니쉬: 그렇다면 시인을 포기한 것 아닌가?
송현: 아닙니다. 저는 시인을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라즈니쉬: 자네도 꿈 깨게. 자네 갈은 순진한 시인들은 죽을 때까지 그녀와 함께 살고 싶어한다. 그것을 위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보게! 어리석은 시인!
송현 : 예 선생님.
라즈니쉬: 그것은 두려움이지 위대한 사랑이 아니네! 사실은 지금 사랑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바로 지금 그대는 그것을 놓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랑을 갖고 싶은 것이다. 오늘은 안 될지라도 내일은 되겠지. 모레는 되겠지 하며, 그래서 공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대 일생을 그녀와 함께 살고 싶다. 그러면 어쨌든 그 사랑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지금 그러지 않는가? 그럴 것이라면 지금 당장도 가능하다. 그대는 지금 현재에 사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이란 거대한 환상이다. 오직 지금만이 존재한다. 내일은 또다시 오늘이 될 것이다. 모레는 또다시 오늘이 될 것이다. 1년 후도 지금은 항상 오늘이 될 것이다. 지금은 항상 오늘이다. 산은 항상 현재에 존재한다. 그대가 살고자 한다면 바로 지금 살아라. 왜 미래를 생각하는가? 그대의 사랑이 불꽃처럼 강렬하게 바로 지금 그대를 남김없이 태우게 하라.

송현 : 선생님, 참 멋진 말씀입니다.
라즈니쉬: 그대가 항상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  두 명의 자유로운 개인으로 만나라. 두 자유인으로 만나라. 자유가 지속되는 동안만 그 만남이 존재케하라. 자유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헤어져라. 작별을 고할 때가 되 것이다. 함께 했던 지난 날들에 감사함을 느껴라. 서로 받아준 그날들에 더없는 감사함을 느껴라. 그 모든 체험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껴라. 그러나 그대가 어쩔 수 있겠는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감사함과 사랑과 우정과 연민을 느껴라. 그러나 헤어져라. 이제 산들바람은 불어오지 않는다. 그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무력감을 느껴라. 그러나 헤어져라. 연연해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서로를 파괴할 것이다.

송현 : 선생님, 진정으로 사랑하면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 서로 자유롭게 하란 말씀이지요?
라즈니쉬: 그것이 사랑의 의무이다.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그래서 다른 어디에선가 다른 목초지에서 새로운 사랑이 꽃피게 하라. 적어도 이것만은 이 사랑만은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그대와의 사이에 사랑이 사라졌다면 다른 어디에선가 누군가와 꽃 필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랑은 선이다. 그것이 어데서 일어나든지, 누구와 사랑이 일어나든지,  그것은 상관없다. 일어나는 장소도 상관없다. 세상에 그토록 사랑 없이 된 것은 사랑이 끝났으면서도 서로에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산마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찰 것이다.

송현: 사랑 속에서 자유로워라는 말씀이지요?
라즈니쉬: 그대. 자유 속에서 만나고 자유가 파괴되면 사랑이 사라졌다는 표시로 삼아라. 사랑은 자유를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과 자유는 한 가지의 두 이름이다. 사랑은 자유를 파괴할 수 없다. 만일 자유가 파괴된다면 그것은 사랑인 척하는 다른 무엇, 즉 질부, 미움, 지배, 안전, 무사, 명예, 사회적 체면이 개입된 것이다. 그런 것들이 개입되어 그대를 파멸시키고 너무 많은 독을 퍼트리기 전에 거기서 도망쳐라.
송현 : 알겠습니다. 선생님.
라즈니쉬: 잘 가게. 순진한 대한민국의 시인아! 오늘은 여기까지!
송현: 감사합니다. 선생님.(www.songhyun.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