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즈니쉬: 나도 반갑다. 송현: 선생님, 오늘은 사랑과 이별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라즈니쉬: 사랑과 이별? 송현: 예. 선생님. 라즈니쉬: 결론부터 말하면 사랑과 이별은 별개가 아니라 둘이 한 몸이다. 송현: 선생님, 그러니까 아무리 사랑해도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 해도 이별의 순간이 온다. 이 이별의 순간이 오면 그대의 진짜 모습을 드러난다. 이별 앞에서 만일 불평하고 매달리고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두르고 파괴적이 된다면 그대는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대가 누구를 진실로 사랑했다면 헤어짐마저 아름다운 경험이 된다. 그대는 그 사람에게 감사할 것이다. 이제 헤어질 때 가 왔다. 진실로 그를 사랑했다면 가슴 전체로 그에게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크게 감사할 것이다. 송현 :선생님, 만약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어 벌어집니까? 라즈니쉬: 그대는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대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대는 모든 일을 했지만 사랑만은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이별의 순간이 오면 그대는 아름다운 이별의 인사를 건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대는 핵심을 놓쳤음을 깨닫는다. 사랑하지도 못했는데 그가 떠나고 만다. 그래서 그대는 화를 내고 폭력적이 된다. 공격적이 된다. 송현: 이별의 순간에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진면목이란 말은 아무 때나 쓰는 말이 아니다! 송현: 죄송합니다. 선생님. 라즈니쉬: 이별 할 때 그대의 모든 것을 보여주게 된다. 그것이 절정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헤어지고 난 후 그대는 평생 동안 그녀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녀가 그대의 인생을 망쳤다고 푸념할 것이다. 그대는 평생 동안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사랑은 그대를 꽃처럼 피어나게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세상 곳곳에서 사랑은 상처를 줄 뿐이다. 송현: 선생님 저는 이런 일을 여러 번 목격했고, 이런 경험을 저도 했습니다. 라즈니쉬: 내말 가로 막지 마라. 자네 어느 대학 나왔다고 했지? 송현 : 부산에 있는 동아대학교 국문과 졸업했습니다. 왜 선생님은 걸핏하면 제가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하십니까? 라즈니쉬: 네가 내 말 듣는 태도가 영 시원찮을 때면 과연 그대가 대학을 나왔는지 의심스러워서 그런다. 그러니 내말 잘 들어라. 송현: 예.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라즈니쉬 : 연인과 같이 있는 동안에 그를 사랑하라. 다음 순간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 이별의 시간이 올지 모른다. 진실로 그를 사랑하였다면 이별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삶을 사랑했다면 삶과의 이별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그대 삶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다른 쪽 기슭으로 떠나면서 그대는 감사의 말을 남길 것이다. 삶이 준 수많은 경험, 그대는 그 선물에 감사할 것이다. 그대가 어떤 사람이건 삶이 그대를 지금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불행한 순간이 있었지만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송현: 사랑하는 동안 고통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쁨도 있었기 때문입니까? 라즈니쉬: 당근! 이렇게 양쪽을 전체적으로 산 사람은 고통이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밤은 그대에게 새로운 낮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개쉬탈트이다. 고통이 없으면 기쁨이 존재할 수없다. 그래서 고통이 있는 것이다. 송현 : 선생님. 그러면 기쁨의 순간뿐 아니라 고통의 순간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라즈니쉬: 당근! 고통의 순간이 없으면 기쁨의 순간이 존재할 수 없다. 그대는 이 삶 전체에 대해서 감사할 것이다. 좋고 나쁜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삶을 통해 성장한 사람, 삶의 기쁨과 고통을 아는 사람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이해할 것이다. “신은 여름이며 겨울이다. 신은 삶이며 죽음이다. 신은 낮이며 밤이다. 신은 고통이며 기쁨이다. 신은 양쪽 모두 다이다” 송현: 선생님, 저는 선생님 책 헤라클레이토스 강론을 정독했습니다. 우리 말로 숨은 조화라고 번역된 책도 읽었고, 다른 이름으로 변역한 책도 읽었습니다. 그래 그런지 위의 헤라클레이포스가 한 위의 말이 아주 친근감 있게 제 가슴에 와 닿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그 책에서 어떤 대목이 인상에 남는가? 송현: 아리스토텔레스를 서양의 공자라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서양의 노라라는 대목입니다. 라즈니쉬: 하하하. 송현: 선생님, 위의 말뜻을 이해하면 고통을 나쁜 것으로 보지 않겠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고통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삶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것을 이해 했을 때 “나는 기쁨의 순간만 선택 하겠다. 나는 고통의 순간은 피하겠다. 고통은 나쁜 것이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유치하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골짜기 없는 봉우리를 원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송현: 양극을 다 수용하라는 말씀인가요? 라즈니쉬: 그래. 봉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골짜기가 있어야 한다. 봉우리가 높을수록 골짜기도 그만큼 깊어진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골짜기에 있을 때나 봉우리에 있을 때나 행복하다. 때로는 골짜기로 내려오고 싶은 순간이 있다. 송현: 골짜기가 휴식을 주기 때문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골짜기는 휴식을 준다. 정상에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짜릿한 희열이며 기쁨의 절정이다. 그러나 이런 절정 뒤에는 피곤함을 느낀다. 이럴 때를 위하여 골까지가 존재한다. 그대는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 휴식한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고 휴식한다.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고통과 행복. 이 둘 다 아름답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행복만 선택하겠다. 나는 고통을 택하지 않겠다” 고 말한다면 그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송현: 참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라즈니쉬: 그래서 선택하지 말라. 선택하는 순간에 함정에 빠지고 만다. 삶이 전체적으로 흘러가게 내버려둬야 한다. 반쪽은 불가능하다. 반쪽에 집착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마음은 항상 반쪽을 원한다. 그대는 사랑 받기를 원할 뿐, 마음 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미워하기도 한다. 사랑과 더불어 미움이 들어온다.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결합을 의미하며 미움은 분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의 리듬이다. 연인과 함께 있을 때 그대는 봉우리에 있다. 그 다음에 서로 헤어져서 각자 개인적인 영역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미움의 의미이다. 다시 결합이 일어나도록 마음이 그대를 준비시킨다. 송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삶은 하나의 리듬 같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리듬이다. 삶은 구심력과 원심력의 리듬을 타고 진행된다. 모든 것이 분리되었다가 합쳐지고, 다시 분리되었다가 합쳐진다. 재미 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송현 : 예 선생님. 라즈니쉬: 이슬람교 국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왕이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바로 왕의 노예를 사랑하고 있었다. 왕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왕인 자기에게는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닌 노예를 사랑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송현: 왕은 이 노예를 당장 죽일 수도 있을텐데요? 라즈니쉬: 그러나 삶은 신비하다. 송현: 신비하다니요? 그냥 왕이면 노예 정도는 대번 죽여버릴 수도 있을 것 아닙니까? 라즈니쉬: 하긴 그래. 그러나 아무리 왕이라 해도 사랑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리고 노예라 해도 사랑은 그를 왕으로 만든다. 삶은 너무나 신비하다. 삶은 경제학이나 수학이 아니다. 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송현 : 결국 왕은 매우 화가 났겠군요. 선생님. 라즈니쉬: 당근이다! 하지만 왕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 노예를 죽이기도 망설여졌다. 물론 그는 노예를 죽일 수도 있었다. 명령 한 마디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자가 상처를 입을까 두려웠다. 그녀가 자살을 하거나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송현: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라즈니쉬: 현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현자가 말했다. “폐하께서 크게 잘못하고 계십니다.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고 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그들을 갈라놓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 같이 있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지내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관계는 곧 끝날 것입니다. 그들이 절대로 떨어질 수 없게 하십시오.” 왕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소?” 현자가 말했다. “그들을 불러다 함께 묶어 놓으십시오. 함께 사랑을 나누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떨어지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현자의 조언대로 실행했다. 두 사람이 불려와 기둥에 묶였다. 발가벗은 채로 사랑을 나누게 했다. 그래나 여자와 함께 묶여 있다면 그녀를 얼마나 오래 사랑할 수 있을까? 송현: 선생님, 결혼 생활에서 사랑이 없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군요. 라즈니쉬: 그렇다. 그들은 묶여 있다. 도망칠 수 없다. 이 두 사람에게 그런 실험이 행해졌다. 얼마 후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자 가들은 서로의 몸을 더럽혔다. 창자는 대변을 방광은 소변을 배출해야 한다. 이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몇 시간 동안은 참을 수 있다. 송현: 참는 데도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라즈니쉬: 그래. 한계가 있고 말고! 결국 대변과 소변이 배출되었고, 그들은 서로의 몸을 더렵혔다. 이제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을 감고 상대방을 보지도 않으려고 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스물 네 시간을 묶여 있다가 풀려났다. 그들은 풀려나자마자 반대쪽으로 도망갔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추해졌다. 송현: 그래서 모든 결혼관계가 추해지는 것이군요. 라즈니쉬: 그래. 결혼한 사람들은 위의 현자가 제시한 방법에 따르기 때문이다. 송현 :그래서 삶에는 리듬이 있어야 하는 것이란 사실을 벼락맞은 듯이 알겠습니다. 라즤니쉬: 반드시 삶에는 리듬이 있어야 한다. 합쳐질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어야 하고, 함께 있을 때가 있으면 홀로 있을 때가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합쳐졌다가 다시 헤어지는 리듬이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배고픔과 포만감이 창조된다. 송현: 양극이 함께 존재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라즈니쉬: 그렇다. 양극이 반드시 함께 존재해야 한다. 만일 하루 24시간 내내 먹기만 한다면 배고픔도 없고 포만감도 없어질 것이다. 먹은 다음에는 굶어라. 아침 식사를 뜻하는 영어의 브랙퍼스트는 단식을 그만 둔다는 의미이다. 그대는 밤새 굶었다 치자. 음식을 즐기려면 굶어야 한다. 이것이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숨은 조화이다. 송현: 숨은 조화! 참 멋진 말입니다. 라즈니쉬: 다음 시간에 남은 이야기를 마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송현: 감사합니다. 선생님!(www.songhyu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