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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 안동시와 자매결연 도시 협약

이현준기자 | 기사입력 2024/10/08 [14:34]

 



[브레이크뉴스경기남부=오산 이현준기자] 오산시는 경북 안동시와 자매결연 협약식을 맺었다.

 

8일 오산시청 상황실에서 이권재 오산시장, 이상복 오산시의회 의장 및 시의원, 권기창 안동시장, 민간단체, 양 지자체 관계 공무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오산시는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의 병법이 살아 숨쉬는 독산성 및 세마대지, 성리학의 근간이 되는 유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공자를 배향하는 궐리사 등 사적이 있다.

 

안동시도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을 기반으로 조선 성리학의 한 축인 영남학파를 배출한 지역으로서의 명성이 있으며, 국보 121호 하회탈이 탄생한 하회마을이 자리한 곳이다.

 

이에 양 도시는 공유가 되는 유구한 역사 기반을 발판 삼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에서 이번 자매결연 협약을 체결하게 됐다.

 

이권재 오산시장은 인사말에서 “학문과 예의의 산실인 도산서원을 비롯한 다수의 서원,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있는 하회마을, 국가무형문화재인 하회 별신굿 등 수많은 역사 유적과 문화를 가진 안동과 공자의 생애와 행적이 담긴 궐리사를 비롯해 권율 장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독산성 세마대지를 가진 오산은 역사적으로 공유되는 점이 많다”며 “역사를 바탕으로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고 피력했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경부선 철도와 국도 1호선, 경부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세계적 반도체 소부장 산업이 위치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오산시와 헴프산업, 물 산업, 바이오 백신 산업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기수를 자임하는 안동시가 서로 협력함으로써 4차 산업의 공동 번영을 일궈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으로 오산시와 안동시는 이번 자매결연을 시작으로 양 도시 간 선진 행정정책 공유는 물론, 지역 특산품 직거래 장터 운영과 자매도시 시민 관광지 입장료 할인 혜택 등을 협의해 인적교류가 왕성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양 도시 간 인적 교류를 촉진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민의 삶의 질 향상 및 지역간 상호 발전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한편, 오산시는 충북 영동군, 강원 속초시, 전남 순천시, 전남 진도군, 경남 남해군과 자매결연을 맺어 도시간 우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를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Break News Gyeonggi Nambu = Osan Reporter Lee Hyeon-jun] Osan City signed a sisterhood agreement with Andong City, Gyeongbuk Province.

 

On the 8th, approximately 50 people attended the Osan City Hall Situation Room, including Osan Mayor Lee Kwon-jae, Osan City Council Chairman Lee Sang-bok and city council members, Andong Mayor Kwon Ki-chang, private organizations, and public officials from both local governments.

 

Osan City has historical sites such as Doksanseong Fortress and Semadaeji, where General Kwon Yul's military strategy from the Imjin War is still alive and breathing, and Gwolli Temple, which honors Confucius, the founder of Confucianism, which is the foundation of Neo-Confucianism.

 

Andong City is also famous as a region that produced the Yeongnam School, one of the pillars of Joseon Neo-Confucianism, based on Dosan Seowon and Byeongsan Seowon, and is home to Hahoe Village, where National Treasure No. 121, Hahoe Mask, was created.

 

The two cities signed this sisterhood agreement with the intention of moving forward into the future based on their shared long-standing historical foundation.

 

In his opening remarks, Mayor Lee Kwon-jae of Osan said, “Andong, which has numerous historical sites and cultures including Dosan Seowon, the birthplace of learning and etiquette, Hahoe Village, where Korean beauty and traditions are alive, and Hahoe Byeolsingut, a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asset, and Osan, which has Gwolli Temple, which contains the life and deeds of Confucius, and Doksan Semadaeji, where we can see the wisdom of General Gwon Yul, share many historical points in common.” He expressed, “Let’s move forward into the future together based on history.”

 

Mayor Kwon Ki-chang of Andong City said, “As a transportation hub where the Gyeongbu Line, National Route 1, and Gyeongbu Expressway intersect, and as a global semiconductor 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 industry is located, I hope that Osan City, which is leading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and Andong City, which is a pioneer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hrough the hemp industry, water industry, and bio-vaccine industry, will cooperate with each other to create mutual prosperity in the 4th industry.”

 

In the future, starting with this sister city relationship, Osan City and Andong City plan to actively promote human exchange by discussing not only sharing advanced administrative policies between the two cities, but also operating a direct transaction market for local specialties and discounts on admission fees to tourist attractions for citizens of the sister city.

 

In addition, they plan to do their best to promote human exchange between the two cities to form mutual understanding and empathy, and to become an example of improving the quality of life of citizens and mutual development between regions.

 

Meanwhile, Osan City is continuing its friendship with other cities by forming sister city relationships with Yeongdong-gun, Chungcheongbuk-do, Sokcho-si, Gangwon-do, Suncheon-si, Jeollanam-do, Jindo-gun, Jeollanam-do, and Namhae-gun, Gyeongsangnam-do.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경기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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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진한 2024/10/09 [18:09] 수정 | 삭제
  • 필자는 성균관대 출신입니다. 성리학(주자학)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부분집합인, 유학의 학파중 하나로, 송나라 황제 이종(理宗)이 적극 지지한 이후, 한당 훈고학을 대체하여 남송, 원, 명, 청까지 官學으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옴. 공자님이 당나라때 성인임금인 요.순.우.탕.문.무와 같은 문선왕(文宣王)으로 추증되시기 이전의 先秦유학, 한당 훈고학을 대체한 학문임. 구한말 갑오개혁이후에 성균관 경학원에서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하되, 역사·지리·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을 가르쳐, 세계사, 세계지리등의 교과서적 사고방식으로, 중국 천자(세속의 용어로는 황제)뿐 아니라, 서양의 교화임금인 교황제도나,로마황제,이탈리아,영국.독일.러시아.스페인 및 서유럽의 왕정국가를 인지해오던 한국 성균관입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성균관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대학≫·≪논어≫·≪맹자≫·≪중용≫의 사서와 ≪예기≫·≪춘추≫·≪시전≫·≪서전≫·≪주역≫의 오경을 비롯하여 ≪근사록 近思錄≫·≪성리대전 性理大全≫·≪통감 通監≫·≪좌전 左傳≫·≪송원절요 宋元節要≫·≪경국대전≫·≪동국정운≫ 등을 가르치고,과거과목에 따라서 변동이 되기도 하였다.이 밖에 시(詩)·부(賦)·송(頌)·책(策)과 같은 글을 짓는 방법을 비롯하여 왕희지(王羲之)와 조맹부(趙孟頫)의 필법도 익히게 하였다. 주자학(朱子學) 이외의 이단서(異端書)는 학령에도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철저하게 배격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성리학이 도입된 이래, 성균관에 입학해서 공부하던 조선의 왕세자들은, 오경과 사서, 경국대전, 역사, 철학, 문학, 필법외에도, 국제법 형식의 성리대전을 오경과 사서의 해석 기준으로 삼아서, 조선.대한제국의 어떤 군주도 주자학(성리학)을 포기하지 않아왔고, 유학자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명학,고증학,공양학은, 국가의 공식 학문이 아닌, 단지 새로운 견해의 학문들이었습니다. 유학은 유교의 부분집합에 해당됨. 공자님이전의 하느님(天), 오제(五帝)숭배, 地神숭배, 山川神숭배, 조상신숭배를 始原유교라 할 수 있고, 공자님의 儒家(현대에 들어, 학교교육과 학술용어로 유교라는 용어로 표준화됨)사상은 이전부터의 가르침(始原유교라 할 수 있음. 이는 예수님이전의 구약성서시대에 해당됨)을 계승.발전시키신 것임. 유학은 先秦유학, 훈고학,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공양학이 큰 줄기임. 유교가 성리학은 아님. 유교>유학>성리학의 집합개념임.@한국의 경우, 선생칭호붙은 朱子의 성리학을 금과옥조로 삼아와서, 후발 학파들의 주자학에 대한 도발을 반대하는 유학자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어떤 왕도 성리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논어는 주자의 논어집주나, 한국 先儒들의 가르침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교재로 이용되어왔습니다. 주자학(성리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해야, 이단이나 풍운아로 이탈할 확율이 없고, 거부감도 없습니다. 공자님께서는 춘추전국시대에, 단지 聖人의 후손(하늘로 승천하시어 계절을 다스리시는 五帝중의 한 분이시며, 오제중 가장 높으신 黃帝의 후손. 또한 은나라 왕족의 후손)으로만 불리셨지만, 주나라가 멸망시킨 은나라의 선대 임금들의 조상제사는 그 후손인 宋나라 미자를 통하여 계승토록 은나라의 선발자격을 존중하였습니다. 그래서 은나라의 상제숭배와 주나라의 天숭배 모두를 아우르신 공자님의 가르침은, 새로 우후죽순 제후(공후백자남)를 자처한 신진 계급 통치자들에게, 가장 자격있고 보편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단지 선생 칭호의 子를 붙인 孔子로만 불리시다가, 한나라때 주공(先聖王예우) 다음 先師로 예우받으시고, 공자님의 儒家는 한나라 국교가 되고,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당나라때 공자님께서 先聖王칭호인 文宣王으로 추증되셨습니다. 한당훈고학은 선생칭호의 공자님 가르침을 해석한 학파고, 송나라시대 朱子의 가르침인 성리학(주자학)은 성인임금 공자님의 가르침을 해석한 학파입니다. 그이후 명나라의 왕수인에 의해 주창된 양명학(성리학 비판), 청나라 고증학(왕수인의 양명학 비판). 청나라 말기의 공양학이 있습니다. 공양학은 한나라시대의 해석학인데, 청나라 말기, 변형되어 다시 유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공양학의 전통이 미약하였습니다. 삼국시대도 그렇고, 고려와 조선조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한국에서의 공양학은 이렇습니다. 청조 후기에 일어난 공양학의 새 기풍은 우리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선의 실학은 공양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빌리지 않고도 경사서 및 사회적 현실 속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여, 현실비판과 개혁을 위한 시무책을 광범위하게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처:공양학[公羊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 유학은, 전통적인 오경과 사서를 이어받고, 기자조선과, 삼한시대의 제천의식,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같은 제천의식, 삼국시대의 유교교육(고구려 태학, 백제의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과 제사 및 각종 명절, 고려시대의 국자감과 유교 명절, 조선초에 명나라를 확실한 天子國으로 존중하던 역사, 대한제국시대의 海東천자국 형식의 불가피한 황제칭호 사용의 전통을 이어가는게 가장 적절합니다.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한국에 무종교인은 없습니다..5,000만 모두가 유교국 조선의 한문성명.본관 가지고, 유교교육 받고, 설날,추석.대보름,한식,단오 및 각종 명절, 24절기,문중제사.가족제사! @한국은, 기자조선이 있어서, 하느님을 숭배하고, 조상신도 숭배하는 수천년 전통이 있어온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의범절있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대우받게 한 기자조선. 인도발 외래신앙인 부처 Monkey의 불교가, 하층주변부 신앙으로 살면서, 하느님.창조신을 거부하고 부처가 창조신보다 높다고 하거나, 조상제사를 거부하는 금수 부처의 불교를 막아내고, 하층주변부나 억압대상으로 살아오게 한것은 잘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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