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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될 때까지…홀연히 떠나버린 동생”

<土 曜 隨 筆>수필가 이현실, ‘동생의 우물’

수필가 이현실 | 기사입력 2009/07/27 [00:39]
어머니는 첫 새벽이면 대문의 빗장을 슬며시 열어놓으셨다. 얼마 후 마당을 가로질러 조심스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곤 했다. 깊은 우물에 텅텅 두레박 부딪치며 쏴-아 하고 물동이에 물 쏟아 붓는 소리. 화단의 무화과나무 농익은 열매들이 바람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잠시 잦아든 연후에 어머니의 쌀 씻는 소리가 들렸다.
 
우물물은 소중하고 유일한 식수였다. 그 시절에는 가정집에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았다. 더욱이 우물이 있는 집은 귀했다. 사람들은 대개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거나 이른 아침 뒷산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먹기도 했다.

어머니는 가끔씩 나일론 끈으로 매단 수박을 우물에 둥둥 띄워놓기도 했다. 커다란 식칼로 수박을 가르면 쩌-억 하고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빨갛게 익은 수박에 촘촘히 박힌 까만 수박씨들이 드러났다. 우리들은 마당의 여기저기에 수박씨들을 훅 뱉으며 어적어적 잘도 먹어치웠다. 온종일 우물에 담가둔 수박은 어찌 그리 달고 시원했는지!

가끔씩 시골에서 친척이 오시면 어머니는 막걸리 초롱을 매달아 우물에 넣어두기도 했다. 냉장고 역시 대중화되지 않았던 수십 년 전의 우물은 냉장고의 기능까지 너끈히 해냈다. 

한 여름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퇴근을 하던 아버지는 대문을 들어서기 바쁘게 목물을 했다. 어머니는 차가운 우물물을 한 두레박 길어 올려 아버지의 넓은 등에 조금씩 끼얹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아이쿠 ! 차가워”소리를 연거푸 하던 모습이 눈에 선 하다.

매년 여름이면 어느 하루 날을 잡아 우물물을 퍼내었다. 우물을 청소하기 위해서였다. 우물물을 거의 다 퍼낸 후 아버지는 주삣주삣거리는 일곱 살배기 남동생을 보고 말했다.

“니가 몸집이 작아서 두레박을 탈 사람은 암만해도 니밖에 없다. 그거 하고 싶어도 아무나 몬한다. 네가 뽑힌거능 몸이 작아서도 그라지만 사내새끼 아이가. 그만한 배짱 업시 앞으로 어찌 큰일을 할끼고. 아부지는 니가 훌륭히 잘 할끼라고 믿는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흠흠 하고, 괜스레 앞가슴을 쓸어내렸다. 실하게 묶인 양철 두레박의 밧줄을 몇 번이나 잡아 당겨보기도 했다.

동생은 꽉 움켜쥐었던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잠자리를 날리듯 스르르 놓았다. 그리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슬그머니 바지를 벗었다.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있는 동생의 하얀 두 다리는 어린 새처럼 가냘 펐다.

양철 두레박의 밧줄을 얽어맨 나무판대기 위에 동생은 엉거주춤 걸터앉았다. 아버지는 조심조심 두레박의 줄을 내렸다.

나는 까치발을 하고 우물을 내려다보았다. 아득했다. 돌 틈새에 낀 새파란 이끼가 보였다. 물속에 잠긴 뭉게구름이 잠시 흔들렸다. 동생은 외줄을 타는 서커스단의 소년처럼 우물 속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아버지가 감아 쥔 두레박줄은 점점 짧아지고 동생은 소실점消失鮎으로 남아 흔들거렸다. 아버지는 우물 속으로 목을 길게 빼고 소리쳤다.

“인자 다 내려갔나? 발 시리제?”
동생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메아리되어 저 혼자 올라왔다.
“언지예. 시언합니더.”

아버지는 우물 속으로 목을 길게 빼고 또 소리를 질렀다. “두레박에다 인자는 니가 거기 물속에 빠진 물건들을 담아 올리거라”

수많은 세월을 건너와 흑백으로 탈색된 우물을 들여다본다. 고개를 디 밀면 소리는 메아리로 돌아와 꽂힌다. 젖은 이끼처럼, 미끌미끌한 타액으로 감겨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만한 배짱 없시 앞으로 어찌 큰일을 할끼고. 아부지는 니가 훌륭히 잘 할끼라고 믿는다.”
큰 몸집 만 큼이나 엄격했던 아버지는 우리에게 언제나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사내새끼는 강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질책 앞에 문어의 빨판처럼 빨려 들어가던 동생.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동생의 우물을 생각했다. 질척이는 지하의 바닥에서 올려다 본 동생의 하늘은 어떠했을까. 우물의 지름 만 큼이나 작았을 동생의 시계(視界). 까마득히 올려다 본 바깥세상의 가족들과 오로지 혼자라는 마음이 캄캄한 우물 속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성인이 될 때 까지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하다 홀연히 떠나버린 동생. 유년의 우물 속에 그 아이는 파랑새가 되어 날고 있지 않을까. 

이른 새벽 물동이를 이고 온 아낙들에게 밤새 가둬둔 달빛 한 조각마저 아낌없이 길어가라 웃고 있던 유년의 우물, 나는 지금 그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그리운 이름 하나를 퍼 올리고 있다. 

 
◇ 수필가 이현실 

한국예총 <예술세계>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예술시대 작가회 회원 
농촌문학 회원 
짚신문학회원 
문학동인 글마루 회원 
수필집<꿈꾸는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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