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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빨리 보내는 것이 좋을 겁니다”

<샘터에서> 박종규, 꽁트-> 마지막 포옹

박종규 에세이스트 | 기사입력 2009/08/11 [22:58]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삼사일 전 쯤, 우리 딸이 얠 데려와서 상담했었지요? 녀석이 며칠 사이에 이리 나빠지네요.” 

엄마는 의사의 손에 인계된 나를 짠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의사가 내 다리를 잡아 지그시 누르자 그의 손가락으로부터 아릿한 통증이 저미어 온다. 오른다리는 퉁퉁 부어서 피고름까지 나왔고, 요즘은 견딜 수없는 통증 때문에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의사는 부어오른 데를 또 누지른다. 아! 너무 아프다. 의사는 다시 내 입 언저리를 살피더니 윗입술 밑에 있는 상처 부위를 주무른다. 그의 손은 거칠어서 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생살을 에이는 듯하다. 어서 이 고통의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지만, 의사의 표정이 왠지 시원찮다.

섬뜩한 두려움이 다리 힘마저 앗아가 힘줄 하나도 버티기 힘들 지경이다. 다리를 놓아버렸다. 온몸이 탁 풀리자 숨이 차서 할딱거렸다. 그리고 내 가까이에 다가와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를 보았다.

“쯧쯧! 종양입니다. 악성이요.”
“이예?” 
“암이란 말이지요.” 

순간 검은 그림자가 내게 보란 듯이 미소를 보냈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그 병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다. 암이라니...... 아! 어쩌나.

“아니, 그럼……. 제를 어떡하라구?”  뒷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엄마는 담담한 얼굴로 아빠를 본다. 내 병명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빠는 멍해 있다가 의사에게 묻는다.

 “ 정도가 심한 겁니까? 수술이라도 하면......”   아빠가 수술이야기를 꺼내자 엄마가 말을 자른다. “치료비는 얼마나 들까요?” “돈 들여 수술을 하더라도 녀석의 고통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빨리 보내는 것이 얘를 위해서도 좋을 겁니다.” 

보내다니……. 그 말만 귀에 남는다. 그 말이 무섭다. 다른 병원도 많고, 오진일 수도 있다. 나를 이렇게 포기하면 안 되는데……. 언니, 언니가 있어야 해! 언니가 있으면 달라질지도 몰라. 날 이렇게 버리진 않을 거야. 나 없이는 잠도 안 잔다던 언니야. 언니는 대체 언제 올까.

하지만, 엄마는 결국 너무 쉽게 나를 포기한 듯하다. 엄마가 야속하다. 조금 더 알아보고, 끝까지 해 보지도 않고 벌써 포길 하다니. ‘안돼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소리를 냈으나 내가 들어도 작은 소리다. 아빠가 나를 조심스럽게 받아 안는다.  

식구들이 모두 집을 비웠을 때도 난 아빠만 생각했다. 어둔 밤에도 귓가를 쓰다듬어 주던 손길과 날 불러주던 목소리만 기억했다. 의사 한마디에 식구들은 맥을 못 추고 있다. 화장, 화장 비용, 벌써 내 처리에 대한 흥정이 오가고 있으니 기막히다.

하얀 벽을 울리는 아빠의 헛기침 소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의 손길이 말없이 내 등줄기를 쓸어내린다. 이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다. 난 차마 아빠 눈을 쳐다볼 수 없어서 눈을 감고 눈동자만 한 곳으로 몰고 있다. 눈물이 고여 흐른다. 고개를 수그려 떨어뜨린다. 

예전에도 내가 어릴 때, 이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정말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주변에는 나를 따르는 사내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우리 식구는 나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정말 냉정했다. 내 맘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날 좋아하는 언니마저도 단 한 번도 밖에서 목줄을 놓아 주지 않았다.

결국, 집안에 갇히어 홀로 생을 살아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의 내 또래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식구들이 내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끝까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삼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건 ‘버려진다’라는 사실에 대한 서러움보다도 남기는 것 하나 없이 살아온 내 삶의 덧없음 때문이다. 사람에게 삶이 있다면, 비록 사람에게 내 삶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는 있지만, 내게도 삶이 있다. 

아빠에게는 아빠만의 체취가 있다. 내가 그것에 익숙해진 것은 젖을 뗄 무렵부터다. 생쥐처럼 몸이 작았던 나는 아빠가 외출할 때면 잠바 주머니에 들어앉아 같이 외출하곤 했다. 주머니 속에는 귓불에이는 바람도 없었고, 아빠의 훈김만 있어 늘 아늑했다. 담배 찌든 냄새가 배어 있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아빠의 손이 불쑥 들어와 내 머리와 목덜미를 어루만져줄 때면 마치 잃어버린 엄마의 손길에 닿는 듯해서 좋았다. 

내가 세 살이 될 즈음 아빤 담배를 끊었다. 그것도 하루 세 갑을 마다치 않던 줄담배를! 아빠의 주머니는 깔끔해졌을 뿐 아니라, 드디어 나는 아빠의 온전한 체취에 묻힐 수 있었다. 남들은 절대로 못 끊는다는 담배를 끊다니! 아빠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아빠가 담배를 끊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몇 개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내겐 도리어 예기치 않은 걱정거리가 생겼다. 아빠는 며느리가 들어온 뒤로 손자 맞을 준비를 하셨던 것이다. 손(孫)을 보면 먼저 털 가진 짐승부터 치워버린다고 들었다.

설마하니 날 내치지는 않을 식구들이라 생각은 했지만 내심 신경이 쓰였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손녀가 집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막힌 것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 녀석이 내게는 함부로 한다는 것이다.

나이로 보나 산 경륜으로 보나 그럴 수는 없었지만, 식구들, 특히 아빠는 손녀만 나타나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나부터 베란다로 밀어내곤 했다. 아빠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이었기에 나는 혼자 가슴만 쓸어내려야 했다. 

내가 봐도 손녀는 귀엽고 예뻤다. 손녀가 나타나면서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점점 지워지는 듯했는데 세월이 흐르자 뜻밖에 그 손녀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집에만 오면 나를 찾았고, 맛 잇는 것은 늘 나부터 챙겨 주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엄마 아빠가 극구 나를 손녀로부터 분리해 놓는 다는데 있었다. 집에 있는 언니 하나만 오로지 내 편이 되어주었는데 야속하게도 그 언니는 밤늦게 들어오기 일쑤여서 아쉬움만 더 했다.

그러던 중 손녀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에서 나의 자리는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이젠 나도 나이가 듦에 따라 아빠 주머니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역한 담배냄새 대신 그 포근한 체취가 모두 나의 것이 된 것이다.

아빠가 퇴근해 돌아오면 식사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응접실이나 서제나 할 것 없이 아빠의 무릎은 늘 내차지었다. 물론 언니가 오기 전까지였고, 언니는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를 낚아채가기 일수였다.

아빠 품에서 언니 품으로, 언니 품에서 아빠 품으로, 이따금 주말이 되어 손녀가 오면 나부터 챙겼고...... 참 행복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그 세월은 짧아서 나는 결국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하게 되었다. 

아빠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대화에서 아빠는 빠져 있다. 나와 마주치는 시선에 연민의 정이 가득하다. 아빤 정말 따듯한 분이었다. 아빠와 영영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하지만, 내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버렸으니. 언니는 언제나 오려나. 언니가 이 일을 알면 정말 가만있지 않을 텐데…….

“이쁜 녀석아. 네가 우리 집에 온 것은 하늘의 선물이었다. 그동안 많이 행복했고, 네가 있어 집안엔 웃음이 가득했었다. 이제 나는 너를 보내려 한다. 그것이 너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이라니 어쩔 수 없구나. 그동안 참 고마웠고, 우리는 너를 잊지 못할 것이다. 부디 좋은 곳에 가서 편히 쉬어라. 안녕…….” 

아빠는 나의 눈을 처연히 바라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내 머리와 입 언저리를 쓰다듬고 있다. 아빠의 눈에 비치는 물기를 본다. 이렇게 끝나려나. 엄마 아빠가 시선을 돌리더니 그만 발길을 돌리고 있다. 나는 이제까지 우리 식구들을 향해 소리를 지른 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나는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입술에 난 종양이 터지도록.

나의 내지르는 소리에 두 분은 돌아섰고, 아빠는 내게로 다시 다가온다. 나를 가슴에 안아 주실지도 모른다. 정말 아빠의 손이 내게로 온다. 나를 안더니 가슴으로 품어주신다. 아 - 포근하다. 욱신거리는 통증도, 열도 내려앉는 듯하다. 나는 환자가 아닌 것 같다. 이 포근한 품에서 정말 떠나기 싫다. 그런 중에서도 출입문을 살핀다. 언니는 언제나 오려나. 

사방이 온통 희뿌옇다. 의사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느 틈엔가 비몽사몽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에 잠식될수록 통증은 줄어드는 것 같다. 잠은 결을 이루어 파도처럼 넘실넘실 나를 태우며 출렁인다. 아프지 않다. 내가 나은 걸까. 그렇지, 주사를 맞았었지.”
“예, 그런데요.”  전화기를 든 의사의 모습이 파도 너머로 가뭇가뭇 잡힌다.

“그러세요? 진정하세요. 아, 누군지 알아요. 며칠 전 왔었지요?” 의사의 전화기에서 스며나는 저 목소리……. 슬픔에 겨운 그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한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저 소리는 언니가 틀림없다. 언니가 빨리 와서 나를 만났으면 싶다. 언니는 나를 다른 병원으로 데려갈지도 모르는데. 언니마저 나를 포기하면 안 되는데…….

“이미 끝냈어요. 오지 마세요. 잘 보냈어요.” 전화기 저편에서는 흐느낌이 멈추지 않는다. 언니의 슬픔에 겨운 목소리가 차츰 잦아든다. 

‘이쁜아 ~’ 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가 싶더니 세상이 갑자기 환해진다. 순간적으로 엄마, 아빠, 오빠, 언니, 그리고 손녀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그 흰빛 속에 갇히어 든다. 안개, 안갯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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