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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V 전주방송 '5·18 특집 다큐' 제작

전북대생 이세종 - 5·18 최초의 희생자… 17일 방송

김현종 기자 | 기사입력 2025/05/14 [18:07]

 

▲ JTV 전주방송이 5·18 특집 다큐로 마련한 '전북대생 이세종-5·18 최초의 희생자(연출 김균형ㆍ작가 오명선ㆍ카메라 안상준)'가 오는 17일 오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 사진제공 = JTV 전주방송 커뮤니케이션ㆍ심의실 홍유리 (C) 김현종 기자



 

1980518일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조명한 특집 다큐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전북 민영방송인 JTV 전주방송이 5·18 특집 다큐로 마련한 '전북대생 이세종-5·18 최초의 희생자(연출 김균형ㆍ작가 오명선ㆍ카메라 안상준)'가 오는 17일 오전 1110분에 방송된다.

 

이세종 열사가 44년 만인 지난해 '5·18 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로 공식 인정을 받기까지 5·18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이었음을 살펴본 이번 특집 다큐는 529일 오후 1'테마스페셜'에서도 송출될 예정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최초 희생자인 고() 이세종 열사는 전북대 농학과 2학년이었던 1980517일 전북대 제1학생회관에서 '비상계엄 철폐 및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이튿날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계엄군이 교내로 진입하자 학생회관 옥상으로 달아났다.

 

그 뒤 새벽 6시쯤 학생회관 앞 땅바닥에서 온몸이 피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사인을 '단순 추락사'로 발표했으나 시신 여러 군데에서 피멍이 발견돼 계엄군에 의한 집단 폭행 의혹이 제기됐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1979년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1980517일 전국으로 확대한다.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유력 정치인들을 잡아들이고 전국 각 지역 대학에는 몇 달 동안 충정훈련으로 단련시킨 공수부대를 계엄군으로 투입, '신군부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던 학생들은 아카시아 향을 실은 봄바람이 살랑거리던 새벽 비상계엄의 냉혹한 실체를 마주했다.

 

총칼로 무장한 계엄군은 몽둥이로 학생들을 때리는 과장에 '인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JTV 전주방송이 5·18 특집 다큐 촬영 과정에 인터뷰를 위해 만난 사람들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아직도 805, 그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는 듯 5월만 되면 이상하게 온몸과 마음이 시름시름 아프다고 증언했고 어떤 분은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과 고문의 기억에 치를 떨었다.

 

질문하는 제작진도ㆍ과거를 되짚은 분들도 터지는 눈물에 함께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또 어떤 분은 아예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기억이나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참혹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 이세종 열사는 고향 김제에서 전라고를 졸업한 뒤 1978년 전북대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대학은 군사 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학도호국단과 병영집체훈련 등으로 자유로움을 갈망하던 대학생들에게는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때마침 등장한 신군부는 무늬만 다를 뿐 이전 독재 정권과 쌍둥이처럼 닮아 국민들을 절망 속으로 내몰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평범한 청년 이세종은 자연스럽게 신군부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는 길에 들어선다.

 

1980518일 새벽 전북대학교 학생회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열사가 계엄군을 피하려다 학생회관 3층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이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 입니다.

구글 번역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and assumes that there ar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JTV Jeonju Broadcasting 'May 18 Special Documentary' Production

Jeonbuk National University student Lee Se-jong - The first victim of May 18... Broadcast on the 17th

 

Reporter Kim Hyun-jong

 

A special documentary program that sheds new light on the May 18, 1980 democratization movement is coming to viewers.

 

The Jeonbuk private broadcaster JTV Jeonju Broadcasting's special documentary on May 18 titled 'Jeonbuk National University Student Lee Se-jong - The First Victim of May 18 (Directed by Kim Gyun-hyung, Writer Oh Myeong-seon, Camera Ahn Sang-jun)' will air at 11:10 AM on the 17th.

 

This special documentary examines the fact that the May 18 democratization movement was a nationwide democratization movement until Lee Se-jong was officially recognized as the 'First Victim of the May 18 Democratization Movement' last year, 44 years later. It will also be broadcast on 'Theme Special' at 1 PM on May 29th.

 

The first victim of the 'May 18th Democratization Movement', the late Lee Se-jong, was a sophomore in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 at Jeonbuk National University when he was holding a sit-in protest at the Jeonbuk National University's first student union building on May 17, 1980, demanding 'elimination of martial law and resignation of Chun Doo-hwan'. The next day, as martial law was expanded nationwide and martial law troops entered the campus, he fled to the roof of the student union building.

 

He was later found dead on the ground in front of the student union building at around 6 a.m., covered in blood.

 

The police announced the cause of death as 'simple fall to death', but bruises were found on several parts of the body, raising suspicions of a group assault by martial law troops.

 

The new military regime of Chun Doo-hwan expanded the martial law declared in 1979 nationwide on May 17, 1980.

 

They arrested influential politicians under the pretext of preliminary arrests and deployed airborne troops trained for months through loyalty training to universities across the country as martial law troops. Students who had been shouting for "overthrow of the new military dictatorship and democratization" were confronted with the cold reality of martial law at dawn when the spring breeze carrying the scent of acacia was blowing.

 

The martial law troops armed with guns and swords beat students with clubs, and there was no mention of "human rights" even if you looked hard enough.

 

People interviewed by JTV Jeonju Broadcasting during the filming of the May 18 special documentary had difficulty recalling their memories from that time.

 

They testified that they still felt like they were trapped in the time and space of May 1980, and that their whole body and mind strangely ached whenever May came. Some people trembled at the memories of violence and torture that went beyond imagination.

 

The production staff who asked questions and those who looked back on the past had to helplessly endure the tears that poured down their faces.

 

Some people also said that they had no memory at all.

 

It was a time too horrific to be called a memory or recollection.

 

The late Lee Se-jong graduated from Jeonra High School in his hometown of Gimje and entered Jeonbuk National University in 1978.

 

At the time, the university was like a prison without bars to college students who longed for freedom, with the Student Defense Corps and barracks training that followed the military culture.

 

The new military regime that appeared at that time was similar to the previous dictatorship regime in appearance only, and drove the people into despair.

 

Lee Se-jong, an ordinary young man who was a devout Christian, naturally took the path of calling for the overthrow of the new military dictatorship and democratization.

 

What happened at the Jeonbuk National University Student Hall in the early morning of May 18, 1980? It is known that this martyr fell to his death from the third floor of the Student Hall while trying to escape martial law troops, but this is not true.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전북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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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onard 2025/05/22 [21:26] 수정 | 삭제
  • 고등학교로는, 전북지역 유일무이 5.18의거사태에 항의하여, 교내시위했다가, 전두환정권이 폐교시키려 했던 전주 신흥고임. 그러다, 미국 CIA 한국 총책임자가, 자기 신원 드러내고, 전두환정권과 교섭하여, 신흥고 폐교는 막아내고, 일주일 휴교당했음.@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국사 성균관자격 宮성균관대.서강대는 예수회의 가톨릭계 귀족대학으로, 양반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상위규범인 국제법,한국사, 헌법, 세계사,주권기준이라 변하지 않음. 5,000만 한국인 뒤, 주권.자격.학벌없이, 성씨없는 일본 점쇠(요시히토,히로히토등)가 세운, 마당쇠.개똥이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 그뒤 서울대 미만 전국 각지역 대학들. 한국 국사교육은 대학분야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 고등학교 교육은 향교.서원이외에 국사 교과서로 교육시킬 신생 학교들이 없음. 세계사는 중국 한나라 태학(이후 위나라 태학, 그이후 나라들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 서양의 최초 대학 볼로냐와 그다음 생긴 파리대학. 그리고 서양 기독교 사회에서 볼로냐.파리대학 이전에 형성된 교황성하. 필자는 헌법,국제법,국사,세계사, 국민윤리 및 백과사전등을 중심으로 한국 대학 학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성대출신. @그리고 승전국 미국 선교사가 설립한, 전주 신흥고출신(1978년 입학). 전주 신흥고는 1900년 9월 9일 호남 최초 근대교육 시작, 1909년 고등과 학생도 모집하기 시작하여 보통과와 고등과 학생 숫자는 모두 150명이 되었음.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하여 자진 폐교하였다가, 연합국이 불교 Monkey 항복받고, 미군정.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거치며, 전주 신흥고 복교함. 한국은 유교나라니까, 국사,세계사, 별도로,윤리의 유교교육과 국어.한문의 삼강오륜 교육을 위주로, 학내의 기독교 교육도 받으면, 종교자유가 있고, 국교가 없는 상태에서, 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을 계승하면 될것. 내가 판단하는건, 종교가 아니고,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의 일본 항복 수락내용들과, .평준화이전의 고등학교 수준임.한편, 어느정도 점수와 대학진학률의 과정이 있어야 함. 전라북도는 승전국 미국 선교사가 세운 신흥고가 있어서, 이런 구조임. 신흥고.전라고.해성고 뒤 倭 전주고, 전주여고, 倭이리농림 모태의 전북대(문과대는 전문학교 토대 전북대) 부설 전북사대부고,倭는 아니지만 남성고, 이리고, 倭군산고, 군산여고, @ 별도로 군산제일고 상산고. @ 그리고 영생고, 완산고, 새로생긴 전주지역 동암고등. 이 뒤에 익산(이리), 군산 지역 여러 고등학교들과 대학진학률이 거의 없어온 정읍.남원.김제.부안 및 전라북도 각 지역 고등학교들.
  • leonard 2025/05/22 [21:25] 수정 | 삭제
  • 패전국 倭잔재 서울대나 전주고등 전국 각지의 倭학교들은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포함)을 받아들여,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할, 일제잔재들은 맞음.그런데, 연합국 국가원수들의 합의문이며, 상위법인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해,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한국영토에서 축출해야 될 패전국 일제잔재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개칭하고, 공자묘경학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는 하위법률이 제정됨 (성균관은 일제 강점기에 교육기능 폐지되어, 미군정기에 복구함). 미군정당시의 문교부 공무원 및 자문그룹들이, 하위법인 미군정법률을 제정하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로 상위법자격 성균관(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서 자격있는 성균관)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꾀한것임.*미군정 군정법령 제 15호.1945년 10월 16일 @이 약탈을 피하기 위하여, 전국 유림대회(고문:이승만, 김구, 위원장:김창숙)를 개최하여, 성균관대를 설립하기로 결의함. "1945년 12월 10일 자유신문 보도기사(成均館大學 재단을 촉성, 1,000여 대표 참가로 全國儒林大會)가 국사편찬위 자료에 있음.@.미군정기의 국사 성균관교육. *학제. 성균관 태학.이상은 유학에 관한 학교이나 또 중앙과 지방에 외국어학과 의학, 율학, 천문지리학 등을 가르치는 각 기관이 있음.* 필자주::성균관(태학)만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구이고, 개화기의 기타 교육기구는 중등교육기구들입니다. @법령 제102호.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1946년 8월 22일@그리고 김창숙 성균관장이 전국 유림대회 결의대로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고 대학으로 인가받음.성균관 후신 경학원에서 강의하던 김창숙 선생이 성균관장이 되고, 1946년 9월 25일성균관대학의 설립을 인가받고 초대학장에 취임하였습니다.이 때부터, 성균관대는 대학기구로, 성균관은 공자님 제사기구인 성균관으로 공식 2원화된것임. 성균관대가 조선.대한제국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내용은 성균관대와 성균관의 입장이 동일합니다.@조선성명복구령.[시행 1946. 10. 23.] [군정법률 제122호, 1946. 10. 23., 제정] @미군정령 제 194호 6조(1948년)는,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제6조 향교 재단의 재산으로부터 생하는 수입은 좌의 목적 이외에는 사용함을 부득함.1. 성균관 급 성균관 대학의 유지. *향교재산관리에관한건[군정법령 제194호, 1948.5.17.,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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