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은 1984년 6월 강영호(現 클럽이민 고문)씨가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이후 85년 2월 최초의 캐나다 투자이민 이주 사업이 시작 되었고, 현재 강씨를 통해 캐나다에 정착한 사람의 수만 2만 명이 넘는다.
86년에서 90년대 초반까지는 이민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없었을뿐더러 ‘과연 영주권 취득이 가능한가?’하는 의문을 갖던 시기다. 이 때는 소수의 사람들만 캐나다로 영주권을 받아 진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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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을 이민 역사와 함께한 클럽이민(www.2min.com)의 홍금희 대표는 이 때를 다음과 같이 추억한다. “94년 캐나다 무비자 이전까진 캐나다 이민에 대해 확신이 없어 우리 본사에서 답사팀을 만들어 단체로 정기적 답사를 가기도 했다. 답사팀은 깃발을 드는 기수까지 있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현재 캐나다 이민이 발전한 것”이라고 전했다.
93년, 독립이민 카테고리가 생겨 투자금이 부족해 순수투자이민을 망설이던 사람도 캐나다 이민을 갈 수 있게 됐다. 이 때부터 캐나다 이민은 황금기를 맞아 2000년대 초반까지 가장 많은 이민자 수를 기록했다.
2005년 이후부턴 영주권을 하나의 ‘국제 자격증’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캐나다 주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민장려에 나서 벤쿠버, 토론토 이외에도 다양한 정착지가 생겨난 시기다. 꼭 이민이 아니라도 학생들의 어학연수, 여행 등으로도 캐나다는 한국인에 한발짝 더 다가왔다.
현재는 개개인의 학력, 영어능력, 재정적 능력이 높아짐에 따라 자력으로 이민을 가는 수가 많아지고 있다. 이 모든 세월을 함께한 홍대표는 “이제는 개인의 행복을 찾기 위해 이민을 간다”며 “우리는 이민 신청자들이 그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클럽이민은 현재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이민 대행 회사 주최로 체육대회, 상조회, 한인 골프대회 등 다양한 모임을 연다. 강영호 고문은 “이민 수속 기간동안 몇 년을 함께 해온 사람들은 단순한 고객이 아닌 또 하나의 가족”이라며 “때문에 이민 후에도 유대관계를 계속할 수 밖에 없으며 현재는 그 수가 너무 많아 모임이 있을 때는 신문에 모임 소식을 알리는 광고를 낼 정도”라고 전했다.
강고문은 캐나다 이민 ‘선배’로 이민 생활을 시작하는 이민후배들에 ‘정착심리 설명회’등을 통해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