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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여권 '권력다툼 경고' 확인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통해 '李대통령 경고' 시사

문일석 기자 | 기사입력 2010/07/13 [09:19]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권련다툼 양상에 대해 경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경고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대통령께서 현재 여권에서 진행되는 일들에 대해서, 특히 권력다툼의 양상으로 비쳐지는 상황에서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화합을 당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여권 내에 권력다툼 양상이 있는 것으로 대통령과 청와대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시사됐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오후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을 브리핑했다. 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일정을 보고받고 마지막 날까지 흔들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일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특히 청와대 직원들은 애국심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명심해달라고 주문을 했다”고 전했다.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인사에 대해서는 “나눠서 발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꺼번에 발표를 해 드릴 것이다. 사람을 찾는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인선이 마무리 되는 대로 지체 없이 발표해 드리겠다.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번 주 안에는 국민과 그리고 언론인 여러분, 언론에서 궁금해 하는 궁금증을 풀어드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일부에서 거론되듯이 ‘날짜가 언제다’라는 것은 지금 단정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 개편된 비서관급 이상의 자리까지 한꺼번에 발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변인 : 수석급 들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해 달라. 그리고 몇 %가 발표될 것이다라는 얘기 누구도 여러분들께 할 수  없다. 어제 sbs 뉴스에 비서관들 절반이 바뀔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현 단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진행방향과 인선 내용에 따라서 가변적인 요소도 있을 수 있다.  일각에서 오늘 사회통합수석과 관련해 오늘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인사 이름까지 거론된 것도 봤다. 검토되고 있는 분 가운데 한 명인 것은 맞다. 지금단계에서 누구로 확정이 됐다든가 누가 유력하다든가 하는 얘기는 마지막 발표가 될 때까지 누구도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임태희 차기 대통령실장의 인선 참여에 대해서는 “ 대통령이 데리고 일하는 참모들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다. 청와대의 구조를 잘 알고 계시고 구조개혁의 필요성이나 장단점을 다 알고 계시는 정정길 현 실장이 같이 작업하고 있다. 후반기 대통령실을 이끌어갈 임태희 실장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갖고 같이 가실 것이고, 크게 세분이 함께 논의 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경고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고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대통령께서 현재 여권에서 진행되는 일들에 대해서, 특히 권력다툼의 양상으로 비쳐지는 상황에서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화합을 당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무엇보다 국민의 눈을 의식하고 국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상에 대해서는 더는 알지 못하고 이런 우려와 당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시기는 “최근 2, 3일 내라고 보시면 된다. 특정 시점을 제가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계기라는 것은 언론에 나타난 이런 양상에 대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경고 대상자는 “대통령이 직접 하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전달했다는 것”이라고 말해 "경고했다"는 것을 시사했다.

천안함에 관련해서는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도발로 인한 것임이 확인된 이후 굉장히 강한 원칙을 천명했다. 원칙에서 달라지신 것은 전혀 없다. 북한이 재발방지를 약속을 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런 원칙선상에서 계속 가게 될 것이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 한.미 군사합동훈련을 언제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지는 여러 가지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이 자리에서 말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양해해 주고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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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군 2010/07/13 [10:44] 수정 | 삭제
  • 조선말기 고종임기때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간신모리배의 매국행위로 조선은 미개국으로 낙후하였고
    일본은 외국과 무역을 확대해 신기술과 무기제조등 엄청난 발전을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등 다른나라침략 도둑근성의 일본이 주변 조선부터 중국까지 한반도를 침략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미국외무장관과 일본외무대신이 1905년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각자 식민지로 만들자고 비밀협정을 맺었으며


    이미 조선에 군대파견 강제점령한 이등박문을 조선총독으로 않히려고 고종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을사늑약을 맺었으니
    바로 이완용등 5명 을사5적이 고종을 배제한채 조선을 팔아먹는 협정에 일본편을들어 도장을찍었고
    일본은 을사늑약을 핑계로 조선을 차지하며 전권을 행사할때 고종은 을사늑약은 자기가 배제된 무효협정이라 반발하였고
    충신들도 을사늑약에 항의 자살까지하였으니 늑약이란 뜻도 강제로 맺은협정을 늑약이라한것이며


    이등박문은 을사늑약 매국노 5인을 일본괴뢰정부인 대한제국의 간부로 채용하고 매국상금도 주는둥
    이완용등 을사오적등 친일매국노 후손들 재산이 이런 매국행위 댓가로 조선땅과 약탈한 보물로 엄청난것이며

    이에 반대하는 고종과 애국자들이 일본의 강제합병에 반대하는 항의서를 미국등 외국에돌렸으나
    이미 일본과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에 협력하기로한 미국은 스티븐스란 미국인을 일본통해 대한제국의 간부로 임명후

    미국과 일본의 비밀협정을 지키기위해 일본의 조선통치를 정당화하기위해 미국이나 러시아 영국등 외국돌아다니며
    조선은 미개한나라라 일본이 통치해야한다고 일본식민지를 만들기위한 미국입장을 표명하고다닌 조선을망친 미국인으로서


    1876년 3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장인환 선생은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학업을 중단하고 상점 점원 등을 하며 어렵게 지내다가 1904년 하와이 노동이민으로 도미했다. 2년 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1907년 한인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1908년 3월, 당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이던 미국인 스티븐스가 휴가차 귀국하여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고 한국을 비난하는 망언을 하자 한인 대표들이 그를 찾아가 정정 보도와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가 사과는커녕 무례한 태도로 ‘이완용 같은 충신과 이등박문 같은 통감이 있음은 한국의 행복이요 동양의 행복이다’ ‘한국의 인민은 우매하여 독립할 자격이 없다’는 등 궤변을 서슴지 않자 장인환 선생은 스티븐스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3월 23일,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 페리역에 도착하는 것을 본 선생이 거사를 벌이려는 순간 또 다른 한국인 청년 전명운(田明雲)이 먼저 스티븐스를 저격했고 이것이 불발되자 스티븐스에게 달려들어 격투를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선생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발을 쏘아 그 중 스티븐스의 등에 두발을 명중시켰다. 치명상을 입은 스티븐스는 이틀 뒤 탄환제거 수술을 받던 중 사망했다.


    선생의 스티븐스 저격사건은 한국 독립운동에 불길을 당겨
    이후 이등박문을 처형한 안중근, 이완용을 응징한 이재명, 윤봉길 ,이봉창등등 의사들의 거사와 독립군 항일전쟁으로 이어졌다.


    선생은 미국법정에서 280일간의 치열한 공판투쟁 끝에 2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모범적인 수형생활과 동포사회의 끈질긴 석방운동으로 10년만인 1919년 1월 가석방되었다.

    1927년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뒤 1930년 5월 22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병원에서 55세로 생을 마쳤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며 1975년에 유해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여기서 중요한건 당시 미국서 유명대학을 다닌 이승만이 미국말이 거창해 스티븐스사건통역으로
    장인환측에서 정당한 애국운동이며 스티븐스의 매국행위를 알려달라고 요청받았으나
    친미파인 이승만은 미국으로부터 재판에 협조하지말라는 부탁받았는지 거절하였고


    이후 이승만은 만주서 피흘리는 독립운동보다는 미국여자끼고 미국사교계다니며
    자기가 조선왕조 친족도 아니면서 조선왕조의 핏줄이라속이며
    또 당시 중국서 김구선생님이 임시정부 주석을 맡었는데도 자기가 임시정부 책임자라고 공갈치고 다녔다고 도산 안창호선생께서 증언하셨고


    해방후 미국은 반성없이 일본서 조선에게 약탈한 금괴와 731부대무기정보받고 전범일본대신 조선을 가르기로 또 일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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