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아내의 직장이 있는 베이징으로 자주 갈 수 없었고, 펑리위앤도 일 때문에 남편 곁에 자주 있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마치 견우와 직녀 같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시진핑은 한번도 불만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종종 펑리위앤에게 말한다. “국가와 군부대가 당신의 능력을 이토록 오랫동안 키워주었고, 당신의 팬들도 항상 당신을 원하고 있는데 나 때문에 무대에서 내려오라고 한다면 너무 이기적인 거잖소.” 펑리위앤은 가정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적이 거의 없었고 시진핑도 그녀에게 요구하는 바가 많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결혼한 후에 큰 충돌이 없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일하는 분야가 너무나도 달라 보이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일치한다. 시진핑은 행정업무를 맡고 있고 정치, 철학서적을 읽지만 펑리위앤은 가수이기 때문에 예술과 문학작품에 조예가 깊다. 펑리위앤은 시진핑이 남편으로서의 자상함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어른스러운 면도 자주 보여준다고 한다.
“나이차이 때문인지 몰라도 남편은 항상 저를 여동생 대하듯 해요. 제 생각에 제 남편은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남편이자 모든 딸들이 원하는 아버지 상인 것 같아요. 남편은 항상 남을 위해 배려해서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어요. 가끔씩 제가 남편을 보러 간다고 하면 남편은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회의도 출장도 다 뒤로 미룬답니다. 그래서 괜히 방해가 될까 봐 자주 못보고 있어요. 어쩌다 그를 보러 가면 그를 위해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면서 잠시나마 쉴 수 있게 하죠.” 여느 평범한 여자처럼, 펑리위앤도 시장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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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리위앤은 항상 변치 않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내려오면 무대 위에서의 느낌은 잊어버린다고 한다. “남편이 집에 올 때 정치인이 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저에게 시진핑은 평범한 남편일 뿐이죠. 제가 집에 왔을 때 남편도 그럴 거에요. 저도 남편에게는 스타가 아닌 평범한 아내일 뿐이죠.” 시진핑은 펑리위앤이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자신을 위해 뒷바라지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저는 한 번도 펑리위앤이 밖에서 하는 일이나 평소 생활에 대해서 신경 쓴 적도 없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내가 저한테 그렇게 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아내가 행복하다면 그녀가 집안일을 하든 안 하든 전 다 상관없습니다.”
펑리위앤이 석사학위를 받고 시진핑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 전화했더니 시진핑은 약간의 기쁜 기색도 없이 “그렇군. 빨리 여기로 와봐”라고 말했다. 펑리위앤은 “어떻게 이렇게 기쁜 일을 축하해주지 않을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시진핑은 “겨우 석사학위 가지고 무슨 축하할 일 이라고 그래? 내가 일하는 곳에는 석사학위 딴 사람들이 서로 일하려고 난린데”라고 말했다.
시진핑은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다. 시진핑이 일하는 곳에 펑리위앤이 가도 한 번도 남들에게 그녀가 온 것을 알리지 않았고 부부가 동반할 수 있는 자리에도 펑리위앤과 함께 가지 않았다. 그는 “여기저기 아내와 함께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하고 소문이 안 좋게 퍼지기 마련이죠”라고 말한다. 시진핑은 펑리위앤에게 공적인 면에서는 매우 엄격하다. 그는 그녀에게 “당신은 당 간부의 아내로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절대 공연을 하면 안되오”라고 신신당부했고, 펑리위앤은 여태까지 한번도 그 말을 어겨본 적 없다.
“시진핑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그는 한번도 남들 앞에서 거드름을 피운 적이 없어요. 그의 친구들 중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남편도 그들처럼 부자가 되어 쉽게 살수 있는 기회는 참 많았지만 자기가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는 이토록 험난한 길을 선택한 거예요. 저도 남편 자신만을 위해 고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가졌던 기대를 저버리게 할 수 없어요.” 펑리위앤은 남편을 잘 이해하고 지지해주고 평소에도 남편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해준다.
펑리위앤은 과거 푸젠성에 다녀온 후 남방의 겨울이 추운 것을 알고 베이징으로 돌아오자마자 시진핑을 위해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시진핑의 키가 커서 길거리에서 파는 이불은 그의 발을 덮어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펑리위앤은 고향인 산둥성의 솜이 좋다는 것이 생각나 그곳에서 솜을 사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무게가 6근이나 되는 이불을 만들었다.
때마침 그때 외지에서 공연이 있어 먼저 동베이(東北) 지역에 갔다가 다시 푸저우(福州)로 돌아와야 했다. 펑리위앤은 그 무거운 이불을 메고 선양(沈陽), 창춘(長春), 안산(鞍山)을 돌아다녔다.
펑리위앤이 선양에서 푸저우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뒤에서 두 사람이 커다란 이불을 보고 내기를 했다.
“저 사람 펑리위앤인것 같은데”
“말도 안되, 펑리위앤이 이불을 싸 들고 공연을 다니겠나? 못 믿겠으면 우리 내기나 합세.”
펑리위앤과 동행하는 배우들은 그녀가 선글라스를 쓰고 이불을 메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자 펑리위앤은 웃으며 말했다. “나 펑리위앤이라고 남편을 위해 이불 들고 다니지 못하란 법 있나요?”
푸저우에 도착한 뒤에도 펑리위앤은 계속해서 이불을 들고 덜컹대는 차에서 300km를 더 가서야 닝더(寧德)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 시진핑은 닝더에서 당위원회 서기를 맡고 있었다. 그는 이불을 덮어보더니 계속해서 이불에 감탄했다.
자녀를 늦게 낳는 바람에 펑리위앤의 딸은 그녀의 여동생의 딸보다 어리다. 1992년에 펑리위앤이 출산을 앞두었을 때도 시진핑은 그녀와 함께해주지 못했다. 그 시절도 일 때문에 시진핑은 3일 중 이틀은 지방에 있었다. 하필 그때 닝더지역에 태풍이 찾아와 그때도 시진핑은 가장 앞장서서 하는 위험한 일을 맡았다. 그 때문에 3일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고 병원에 가서 펑리위앤과 새로 태어난 딸을 보러 가는 일은 더더욱 바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펑리위안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때 저는 아들을 원했고 남편은 딸을 원했어요. 결과는 역시나 남편 뜻대로 되었죠. 부녀가 함께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딸은 아빠를 쏙 빼 닮았어요. 그리고 아빠랑 제일 친해요. 저랑 있을 때는 그렇게도 말 안 듣고 까불다가도 아빠하고 있으면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몰라요.”
딸의 이름은 시밍저(習明澤)이지만 평소에 그들은 딸을 무즈(木子)라고 부른다. “딸이 깨끗하고 순수하게 커서 사회에 유용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뒤 펑리위앤은 딸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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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worldbreaknews.com / 정리=배주영 기자 tcpz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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