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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관료 김수팽의 사불삼거(四不三拒)란?

참신하고 청렴한 사람들 등용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

김덕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4/03 [13:25]
요즘 박근혜 새 정부 들어서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지 고위 공직자들의 태도가 점입가경입니다. 도데체가 그런 전력들을 가지고 이 나라의 고위공직을 어찌 맡으려는지 그 뻔뻔스러움이 도를 넘는 것 같습니다.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각종 뇌물, 논문표절, 세금탈루, 병역면제 등등 마치 부정의 종합백화점을 보는 듯하네요. 요즘은 한 술 더 떠 원주의 어느 별장의 성(性)파티까지 아연실색입니다.
 
우리 전통 관료사회에 청렴도를 가르는 기준으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불문율(不文律)이 있었습니다. 4가지를 해서는 안 되고, 3가지는 거절해야한다는 얘기이죠.
 
▲ 김덕권     ©브레이크뉴스
이수광의『조선의 방외지사』를 보면 청빈관료 김수팽의 얘기가 나옵니다. 조선 영조 때 호조 서리를 지낸 김수팽은 ‘전설의 아전(衙前)’이라 불리죠. 청렴하고 강직해 숱한 일화를 남겼습니다. 호조판서가 바둑을 두느라고 공문서 결재를 미루자 김수팽이 대청에 올라가 판서의 바둑판을 확 쓸어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마당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죽을죄를 졌으나 결재부터 해주시기 바랍니다.” 했습니다. 그 서슬에 판서도 그의 죄를 묻지 못했죠.
 
김수팽이 숙직하던 날 밤, 대전 내관이 왕명이라며 10만금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시간을 끌다가 날이 밝고서야 돈을 내주었습니다. 야간에는 호조의 돈을 출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내관이 사형에 처할 일이라고 했으나 영조는 오히려 김수팽을 기특히 여겼습니다.
 
그 김수팽의 동생 역시 아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아우의 집에 들렀는데 마당 여기저기에 염료 통이 놓여 있었죠. “아내가 염색 업을 부업으로 한다.” 는 동생의 말에 김수팽은 염료 통을 모두 엎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나라의 녹을 받고 있는데 부업을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살라는 것이냐?”
 
탁지부(度支部)의 창고에 나라 보물로 저장한 ‘금바둑쇠 은바둑쇠’가 수백만 개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검사할 때에 판서가 한 개를 옷소매 속에 집어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판서가 말했습니다. “어린 손자에게 주려고 한다.” 수팽이 대답하지 않고는 금바둑쇠 한 움큼을 소매에 넣으니 판서가 말하기를 “무슨 연유로 이것을 그렇게 많이 가져가는 게냐?” “소인은 내외 증손자가 많아서 각기 한 개씩을 주려한다면 이것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얼굴빛을 바로하고 말했죠. “이는 나라보물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에 대비하여 충당하려 대대로 이것을 전한 것입니다. 대감이 손자에게 주신다하니 이것은 공적인 물건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대감의 체통으로 크게 옳지 않은 것이며 또 대감이 한 개를 취하시면 참판이 또한 가져갈 것이요, 일부 관료가 각자 취할 것이요, 서리 수백 명이 또한 가져갈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범해서이다.’ 라는 것입니다. 가져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김수팽의 일갈에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청빈한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의 관료들은 ‘사불삼거’를 불문율로 삼았다고 합니다. 고위공직자가 재임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와 꼭 거절하여야 할 세 가지는 무엇일까요?
 
첫째,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四不)입니다.  하나, 부업을 하지 않을 것.  둘, 땅을 사지 않을 것. 셋, 집을 늘리지 않을 것. 넷,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三拒)입니다.   하나,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둘,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셋, 경조사의 부조입니다.
 
청송 부사 정붕은 영의정이 꿀과 잣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잣나무는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 속에 있다’ 고 답을 보냈다고 합니다. 우의정 김수항은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무명 한 필을 보낸 지방관을 벌주었습니다. 풍기 군수 윤석보는 아내가 시집 올 때 가져온 비단옷을 팔아 채소밭 한 뙈기를 산 것을 알고는 사표를 내고 말았습니다. 대제학 김유는 지붕 처마 몇 치도 못 늘리게 했죠.
 
이런 잣대를 우리 공직자들에게 갖다 대보면 어찌될까요? 우리 공직사회에서는 사불이 아니라 사필(四必)이 아닌지요? 요즘 지자체의 군수들을 보면 임기를 제대로 채우는 영감(令監)들이 거의 없습니다. 선거 때 들인 본전생각이 나니 부정을 아니 저지를 수가 없는 것이죠. 소위 옛날의 삼정승 육판서를 자처하는 고위 공직자들은 이 ‘사필’의 네 가지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고위 공직자 후보가 될 자격이 없는 가 봅니다.
 
이제는 높은 사람 거의가 만성이 되어서 그런지 청문회에서 부정이 밝혀진 경우도 어영부영 넘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하기야 그들도 한 통속이나 다름이 없으니 누구를 벌주고 누구를 욕하겠습니까? 코미디가 따로 없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관료들의 청렴은 국가존립의 기본덕목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청렴(淸廉)을 넘어 청빈(淸貧)까지 요구됨에 수많은 청백리를 배출하지 않았던가요?
 
최근 김능환 전대법관이 전관예우의 유혹을 물리치고 공직을 사양했습니다. 그리고 퇴임 후 아내가 개업한 채소가게에서 일손을 도와주는 신선한 충격을 본 적이 있죠. 아직도 이 ‘사불삼거’의 정신은 살아 있습니다. 범법자들에게 이 나라를 맡길 것인가 아니면 이런 참신하고 청렴한 사람들을 등용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가 아닌지요!
 
*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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