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역시 어려운 것이야' 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데 무엇이든 철학이란 말이 붙으면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에 대해서 철학이란 수사를 붙이기 시작했다. 당시 '철학이 없는 지도자는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경제철학이란 말이 나왔고 경제철학이 무엇인가 하고 관심을 갖게 됐었다.
정치 지도자들은 거짓말을 잘한다.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어찌됐던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꼭 마술에 걸린 것처럼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거짓말 한마디에 바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난 도청에 관여한 일이 없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그러나 녹음테이프에서 닉슨 대통령이 한 말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거짓말이 밝혀지고 즉시 대통령직에서 사임을 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김대중 정부의 도청사건이 국정원에서 발표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입원까지 하는 헤프닝을 펼쳤다. 그러나 요즘 보도를 보면 다시 김대중 정부의 도청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왜 미국과 한국은 이렇게 다른 것일까. 미국은 청교도 사상이 생활 속에 뿌리 박혀 있어 그들의 피 속에는 정직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교적 사상에 젖어서 그런지 말 바꾸기쯤은 그냥 웃어넘긴다.
미국이 1980년대만 해도 재정적자로 무척 어려웠다. 그때 레이건 대통령이 경제를 살려보자고 레이거노믹스라고 하는 경제정책을 펼쳤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경제정책 이후 수요창출을 통해서 경제를 이끌어가는 정책이 주종을 형성했다.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이 완성을 보이면서 경제정책의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공급력 확충에 주안점을 둔 정책을 펴면서 경제정책을 과감히 바꿔나갔다. 이때부터 대통령의 경제철학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경제성장에서부터 국가 근대화에 이르기까지 성공을 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 경제철학을 가졌던 것일까. 국민들이 경제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고 나라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보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가지게 되었고 그의 성공 비결이 그리운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철학은 조국 근대화에 있었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수출 제일주의를 내걸었다. 자원이 없고 자본이 부족한 나라에서 경제를 부흥시키는 방법은 수출증대 뿐이었을 것이다. 그때 온 국민들이 힘을 합하고 지혜를 모았던 것이다.
은행잎에서부터 갯지렁이, 가발, 신발, 옷감 할 것 없이 국민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수출로 길을 열었고 수출에 모든 것을 바쳤던 것이다. 신바람이 나면 한국사람들처럼 무서운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을 신바람 나게 만든 지도자였던 것이다.
그후 이 나라에 몇몇 대통령이 있었지만 국운이 없어서인지 신통치 않았다. 그 자리에 주인이 되면 박정희 경제철학을 연구해서 좋은 점은 본받아야 했었는데 엉뚱한 경제정책으로 국민들만 못살게 했던 것 아닌가. 권좌의 자존심인가. 전임의 탁월한 정책은 본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친일파로 몰아 매도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이 땅에 보리 고개를 몰아내고 모두가 잘 살아보자.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역사를 바꿔놓자. 이것이 철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민주주의는 정치적 용어요, 시장경제는 경제적 용어인데, 이 두 가지 화두를 병행시키겠다는 발상은 퍽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경제철학은 생산적이어야 하고 가치 창조적이어야 한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철학은 무엇인가. 어떤 신문을 뒤져봐도 국민들의 가슴에 와닿는 경제철학은 없는 것 같다. 연정이나 지역구도 개편이 경제철학이 될 수는 없다. 하루 속히 노무현 식의 경제철학을 내놓아야 할 시점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