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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이 없는 가우디는 존재하지 않는다!

<본지특파>'꽃보다 중년'의 유럽문화 르포④ 구엘공원-1

강욱 기자 | 기사입력 2014/03/31 [00:52]

'꽃중년' 가우디를 찾다가 구엘공원에서 ‘박구엘’씨를 만나다
 
우리 '꽃중년'팀은 차가운 공기가 머무는 네덜란드를 떠나 본격적인 스페인 문화탐방을 위해 스펜인으로 향했다. 우리 일정과 겹치는 '꽃할배'들을 혹여나 만날까 하는 기대는 어긋났지만 우리가 찾은 스페인 곳곳의 향기는 '꽃할배'를 통해서 지금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중이다.
 
바르셀로나의 공기는 네덜란드와는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디서부터인지는 몰라도 지중해의 따스한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흐느적거리며 옷깃이며 가슴팍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진다. 북유럽인들이 휴가 때만 되면 지중해를 찾아 남으로 남으로 온다는 이야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호텔에서 가벼운 아침식사를 하고 10시에 가우디4D체험전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마침 4D체험장 바로 옆에 구엘공원이 있었다, 아니 구엘공원 바로 옆에 체험장이 있는게 맞겠지. 가우디4D체험전에서 가우디의 놀라운 상상력을 근간으로 그들이 재가공한 무한 상상은 그 기술이나 영상의 탁월함이나 부족함을 논하기 보다는 풍부한 문화컨텐츠를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문화 인프라를 가진 그들을 부러울 따름이었다.
 
11시가 조금 넘어 구엘공원 입구로 갔다. 사람들은 벌써 부터 줄을 서서 표를 끊고 입장을 하고 있었다. 자연을 닮은 건축가, 신이 내린 건축가, 꿈을 빚은 건축가 그가 가진 다양한 별칭의 모든 상징이 모인 구엘공원.
 
Park Guell. 이라는 담벼락에 새겨진 모자이크를 보는 순간, 우리 '꽃중년'은 마치 우편배달부가 집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문간에 붙어 있는 문패를 발견한 듯 반갑기 그지 없었다.
 
한국명 '박구엘' 스페인명 'Park Guell' 
 
▲ 입구에 보이는 ‘Park Guell’이 마치 우리의 문패 ‘박구엘’씨를 찾고 있는 듯하다.     © 강욱 기자
           
우리는 스페인에서 '박구엘'씨를 만났다. 가우디를 있게 하고 그가 가진 수많은 찬사의 언어들이 탄생하게 하고 건축이 자연인 듯 자연이 건축인 듯 물 흐르듯이 바르셀로나 중심부를 내려다 보며 자리잡고 있는 언덕의 한 켠이 지금은 바르셀로나에서 우러러 봐야 하는 지경이 된 구엘공원. 가우디와 구엘의 관계는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과 메디치가문과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구엘이 없었다 가우디가 없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구엘씨가 그려진 문패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구엘공원 산책을 나섰다. 따사로운 햇살을 품고 제일먼저 가게 되는 곳은 다름아닌 박구엘씨의 상징 도마뱀. 그때도 그랬을 것이고 지금도 그러하듯 도마뱀은 적지도 많지도 않은 물을 연신 흘리고 있고 수많은 관광객들은 박구엘씨를 만난 기념을 하기 위해 이 저런 표정과 포즈를 취하면서 셔터를 눌러대기가 바쁠 뿐이었다.
 
 
 
▲구엘공원의 상징 도마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 강욱 기자

도마뱀을 지나 기둥들이 즐비한 통로 같은 곳으로 들어 갔다. 지붕도 그러하거니와 천정에는 그 유명한 깨어진 타일을 활용한 다양한 모자이크 문양이 형형색색 즐비하다. 때론 형상이 드러나 보이기도 하고 때론 아무런 의미가 없듯 대충 만들어 진 듯 보이는 모자이크들은 그래서 더욱 정겹고 아름답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것은 구엘공원의 드넓은 광장이라는 사실이다. 광장에 올라가 보지 않았다면 그 기둥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건 데 자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는가? 계절이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때론 형상이 아닌 색깔로서 때론 색이 아닌 형상으로서 시간을 받아 들이는 자연처럼 가우디의 모자이크는 이미 자연이 되어 있었다. 
 
구엘이 보내준 무한 신뢰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가우디의 건축물들. 구엘이 이 공원을 투자 목적으로 개발을 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가우디가 가진 능력보다도 그가 보낸 신뢰가 이 구엘공원이 탄생되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지금 보아도 어느 건축주가 제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가 공원이나 건물을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공을 들이고 만든다고 할 때 이를 흔쾌히 허락하고 기다려 줄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1일 동대문의 DDP가 문을 열었다. 현시대의 최고의 건축가라 칭해지는 이라크의 자하 하디드가 설계 시공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 직선과 벽이 없는 건축물. 
  
▲ DDP 야경     © 서울디자인재단제공

가우디는 건축에 앞서 주변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삼았다고 한다. 때로는 미망인을 위해서 금잔화나 종려나무가 건축물에 들어왔고 때로는 계곡의 원형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기둥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DDP는 어떠한가? 도무지 주변과의 조화라는 것이 없다. 어떤 거대한 조형물을 뜬금없이 패션단지 안에 넣어 놓고는 패션단지를 찾는 대다수의 중국관광객들에게 조형물을 관람하게 하는 느낌이랄까? 내부는 또 어떠한가? 공간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전시공간을 만들어 놓고는 벽이나 천장에 못질 하나 못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직선을 없앴다는 허울은 결국 어떤 전시를 하려면 모든 벽체나 조명을 새로 달아야 하는 이상한 공간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럴려면 그곳을 무엇 때문에 전시장이라는 제목으로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가? 그나마 본 건물은 그래도 좀 낫다. 이간수전시장과 갤러리문은 더 가관이다. 외부가 어떤 형태로 되었건 간에 내부에는 어느 정도 정돈된 형태로 전시를 위한 배려를 해야 하나 그 어느 곳도 전시를 위한 배려가 아닌 외부 모형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양보하고 덩그러니 남은 공간을 억지로 전시장을 꾸면 놓은 것만 같다.
 
빛은 빛대로, 공간 구조는 구조대로, 면적은 면적대로, 더군다나 사선으로 내려진 기둥은 도대체 왜? 라는 질문조차 구차하다. 구엘의 사선 기둥은 자연과의 조화를 위한 것이었지만, 자하 하디드의 그것은 그냥 직선으로 내리기가 염치가 없어서 그러한 듯 생뚱맞다.
 
▲ 구엘공원의 자연을 닮은 사선 기둥     © 강욱 기자

▲ DDP 이간수전시장의 사선 기둥     © 강욱 기자

갤러리문은 개인전을 하기에도 협소한 그저 인사동의 평범한 갤러리 정도의 느낌이 들 뿐이다. 들이치는 햇빛을 막을 아무런 장치도 되어있지 않고 대관을 하거나 전시를 하려는 자가 스스로 그 빛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내야 만 하는 아주 불친절한 공간.
 
혹자는 그럴 것이다. 가우디가 어디 처음부터 가우디였느냐고? 시간이 흘러 DDP가 가우디의 그것처럼 될 지 어찌 아느냐고?
 
사실 두려운 것은 바로 그것이다.
 
먼 훗날 저 국적 없는 건물이 한국의 물 흐르는 듯한 품격과 인성을 그대로 옮겨 놓은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그런 별칭을 받을 까봐서...
 
어찌되었건 DDP는 문을 열었고, 그 위상이 장대하여 대한민국 서울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탄생한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모쪼록 유연한 사고와 융통성있는 행정으로 DDP가 외관만 덩그러니 자리잡을 것이 아니고 간송전 같은 좋은 전시와 행사들을 많이 유치하여 내실도 튼실히 다져 이런 저런 비난을 비켜 일어나길 바란다. * 다음편에 구엘공원 관람기가 계속 됩니다.

원본 기사 보기:jeju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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